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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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데 장장 5일이란 시간을 바쳤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소설 책인데 읽어나갈수록 부피는 얇아져가고 소설의 깊이는 깊어져갔다.
읽을수록 아쉬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며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사실 100페이지,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해 84페이지에서 "나는 어머니를 살해하는 장면을 머리속에 떠올렸다"란 글을 읽고서야 이 책을 더 읽을 것인가, 말것인가 그런 고민에서 말끔히 벗어났다.
84페이지 전까지는 사실 무료했고 따분했다.
태어날때 노인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진다는 설정은 분명 흥미로운 것이었기에 계속 책을 붙들수 있었다. 

첫 시작하는 구절은 이렇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난 이것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이 말이 던지는 가슴 뭉클한 뉘앙스를 이 책의 후반에서 느꼈기에 텁텁한 심정으로 책을 다시 돌이켜 보았을때 시선에 들어온 이 글귀는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시작은 의문투성이다.
선생님의 노트를 훔쳐 일기 형식으로 쓰는 소년. 예순이 다 된 노인이라고 설명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렇다면 새미는 누구지? 어린 시절 새미와 함께 침대를 같이 쓰며 어머니라고 부르는 렘지부인을 앨리스라 사모하는 그의 필적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복잡한 궁금증이 풀린 것은 당연히 책을 읽어가면서였다.
서술적인 상황 묘사가 특기인 이 책은 사건 중심의 스토리 위주로 읽는데 익숙한 내게 익숙하지 않은 책이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의 재미는 정확히 96페이지에서 시작됐다.
"이교도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묘사된 부분이 그러했다.
늙은이라고 부름을 받는데 익숙한 주인공 티볼리씨는 앨리스와 그의 모친을 은근슬쩍 돕게 된다.
나도 한때 그러했던 앳된 느낌과 조우한 글을 만나 밑줄을 쳐봤다.

"바람이 불자 그녀의 모자 아래서 머리카락 한 가닥이 날리더니 내 아랫입술에 달라붙었다. 낚시줄처럼 착 달라붙었다. 문득, 낚싯바늘이 내 입술을 찔러, 그곳에서 몽글 솟아난 피가 내 입으로 흘러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입술에서 떨어질까봐 전정긍긍했던 티볼리씨의 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며.. 어릴적 순박했던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궁상거리가 됐다.

109페이지 '늙은 몸을 타고 난 젊은이',
아, 그제서야 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자 슬픔이기도 한 모던한 감정을 찾는데 익숙해져갔다.
앨리스의 어머니, 레비 부인과 정을 통한 티볼리씨, 그의 이름은 어느새 막스가 되었다.
휴이와 헤어진 앨리스, 그녀의 작은 손가락에서 꺼낸 담배가 나오자 어느새 밑줄 모드가 되었다.

"나는 잠자코 당신이 담배 연기 속에서 또 다른 여자를 만들어내도록 내버려두었소"

난 이 말이 참 인상적이라 여겨졌다.
슬픈 앨리스를 위로하고 싶은 막스, 그녀를 사랑하는 연정을 가슴에 꼭꼭 숨긴채 그녀와의 첫키스,
"당신의 입 안에서 채 빠져나가지 못한 마지막 담배 연기를 맛보았지.. 어느 한 단어 '예'라는 단어와 같은 맛이었소.."

185페이지는 이 소설이 주는 한껏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바로 미망인 앨리스와의 재회가 시작된 부분이었고 몰라보게 젊어진 막스는 그를 알아채지 못하는 그녀와의 만남에서 아스가르 반 달러씨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하는 여인 앨리스와 결혼하고 신혼 첫날밤을 보낸다.
티볼리씨이자 막스이자 아르가스 이기도 한 그의 일기장에 첫날밤에 대해 밝힌 짓궃은 표현은 사뭇 얄밉게 느껴진다. 내심 19금을 바랬건만, 야속하게도 나의 소원을 저버렸다. 안심하시라. 이 책은 미성년자 관람가이므로.
그의 병을 알지 못하는 앨리스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숨겨야 했던 반 달러씨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309페이지에서 끝장난다. 막스를 저주하는 앨리스에게 그의 사유였던 '1941' 목걸이를 발견했던 것이다.

1부에서는 티볼리씨, 2부에선 막스, 3부에선 아르가스였던 주인공은 4부에서 리틀 휴이가 되어 그토록 사랑하는 앨리스와 운명의 재회를 하게 된다. 친구인 휴이의 아들 행사를 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은 그의 마음을 보며 이토록 애절하고 절실한 느낌이 감도는건 왜 그럴까?
더이상 발기 할수 없는 육체적 한계를 리틀 휴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물개 새끼처럼 털 하나 없이 미끈한 조그만 달팽이 모양으로 줄어든 나의 물건. 나는 그것이 살아 있도록, 팽팽하게 늘어날 수 있도록 기를 썼다"

더이상 남자일수 없는 자신의 몸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역행하는 자신에게 어떤 저주섞인 말을 늘어놓았을까? 그런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은 이기적인 그의 사랑을 누가 욕할수 있단 말인가.
4부의 이야기를 흝으며 그제서야 수수께끼같았던 1부의 아리송한 전말이 깨끗이 클리어 이해됐다. 휴이와 어린 막스의 대화가 내 감정을 뒤흔든다.

"넌 이제 남편이 될 수 없어! 아버지도 못 된다고!" "쉬잇! 난 아들이 될 거야. 잠시 동안이라도."

샛강 갈대숲 사이를 떠돌던 작은 배에서 죽음을 마감하는 리틀 휴이의 인생 이야기를 보며 순간 숙연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시간을 거슬러간 남자, 티볼리이자 막스, 아르가스이자 리틀 휴이로 평생을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숭고한 죽음을 택한 그의 결단에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막스, 그의 아들 새미와 사랑하는 여인 앨리스와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하는 장면을 떠올려봤다.
꿈속에서도 늘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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