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성장하는 어린 밤나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쌀쌀한 요즈음, 마음이 훈훈한 책을 만났다.
할아버지 밤나무의 보살핌 속에서 어린 손자 밤나무의 꾸밈없는 성장과 대화를 통해 나무의 베푸는 소명과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찌릿한 감동이 온몸을 적시는 책이다. 저자의 경험과 기억을 보다듬어 태어나고 자란 집에 커다란 밤나무를 떠올리며 쓴 글이라서 소설처럼 허구를 양식으로 대용하거나 화려한 문체를 양념으로 삼지 않아도 나무를 그리워하고 친우처럼 오랜 우정을 쌓아갈수 있음을 나무를 사랑하는 이들과 한마음으로 소통할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느꼈다.

저자의 후기에서 작가로서 어떤 글을 썼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내 글에 몸을 바칠 푸른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글을 쓰면 좋겠다라는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진정 나무를 사랑하는 이로서 할수 있는 말이 아닌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자신의 몸을 갈무리하며 슬슬 겨울을 준비하는 요즘, <나무>는 비단 나무를 좋아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나무의 삶을 통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투영해볼수 있는 시간이 될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나무를 무척 좋아하지만 알고 있는 지식이 미천했음을 깨달았고 그 조약한 지식의 한계에서 나무에 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음과 무관심에서 비롯된 나무 사랑하기를 실천하지 못했음이 아쉽고 미안했다.
할아버지 밤나무와 어린 밤나무의 대화를 통해 밤나무, 매화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참나무 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알게 된 정도만큼이나 이젠 더욱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겨울이 잦아들고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 중에서 매화나무가 재빨리 꽃을 피웠다. 어린 밤나무는 혼자 잘난 척 일찍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를 시샘하자 할아버지 밤나무의 충고로 눈과 추위속에서 당당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의 나무다움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된다.

어린 밤나무가 과수나무의 수명이 짧음을 한탄하자 할아버지 밤나무는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서 자기 다음에 올 나무를 생각하게 마련이란 충고를 던진다. 과실나무의 수명이 짧을수 밖에 없음을 매해 가지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게 하려니 그럴 수 밖에 없단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밤을 먹는다는 사실에 집착하면 밤나무의 수명이 다하는 것을 보지 못하니 비단 밤나무의 문제일 뿐이랴. 

처음부터 자신의 소명을 아는 사람은 없겠다. 어린 밤나무 역시 처음부터 밤나무로서의 소명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 밤나무의 애정어린 충고를 무시하고 거센 풍랑에 열매를 지키기 위해 고집 피운 어린 밤나무를 위해 수십 개가 넘는 밤송이 달린 가지를 희생한 할아버지 밤나무를 보면서 일찌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따뜻한 정이 느끼며 그리웠다.
어린 밤나무를 가르치며 그렇게 할아버지 밤나무는 고단하지만 행복한 삶을 마감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아들이 된다.."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한 대사의 일부인데, 난 <나무>를 보며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나무는 나무를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는다.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온갖 치열한 노력을 하는 나무의 삶을 보면서 삶의 지혜를 체험한다.

아들이 크면, 같이 밤을 주으며 오늘 느꼈던 밤나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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