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그야말로 음침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다. 우리를 경계로 창살 너머 어딘가에 침울한 눈동자로 쳐다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제목 ZOO는 이 책에 소개된 단편 소설들 중의 하나인데, 짧은 이야기로 이어진 서로 다른 스토리는 인간의 어둠 속 본능을 살며시 스며들게 하는 투명한 아픔이 느껴질 정도다.

이미 오츠이치의 데뷔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통해 그의 가공할만한 스릴러물에 한번쯤 익숙해진 터인데도 어둠 속 공포와의 터치에 쉽게 적응이 되질 않는 느낌이랄까. 내면의 잔혹함을 떠올리게 하고 과거의 침울한 기억을 새삼 우려내어 마치 한번쯤 별난 생각을 해봤을 이상한 세계에 온 느낌 또한 들었다. 특히 <Seven Rooms>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란 영화와 닫힌 사각형 공간, 큐브란 영화의 상호 합작한 듯한 익숙한 괴기스러움이 진눅하게 풍겨진 느낌인데 매시간마다 한사람씩 살해되고 남매에게 들이닥친 죽음의 시간, 동생에게 빠져나갈 틈을 주고 살인자와 한방에 갇히는 공포는 어딘가 본 적 있을것 같은 친밀한 공포다.
매일 한명씩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매가 직면한 죽음의 운명 앞에서 누나의 희생으로 살아난 동생. 닫힌 밀실에 웅크리고 앉아있는건 어둠 속 투명한 거울에 비치는 또다른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소름이 진하게 돋은 시작의 전주곡이다.

<SO - far >는 공포를 우악스럽게 자아내는 스릴러물이라기보다 영화 식스센스처럼 특유의 반전을 노린 작품이다. 저자가 명명한 약자 SO는 친밀한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로 엄마가 죽은 아빠의 세계와 아빠가 죽은 엄마의 세계에 소통하는 나, 그리고 엄마의 세계에서 살길 바라는 꼬마의 의식은 어른들이 만들어 낸 험악한 욕망의 결과란 점이 무척이나 뼈아프게 느꼈다. 이 소설의 반전은 시작에서 아이가 유령을 볼수 있는 특이한 재능을 가진 것처럼 인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령은 어른들이 만들어 낸 허울이었고 아빠와 엄마를 헤어지지 않게 하려는 아이의 연출이었다는 점이었다. 무서움을 툭툭 건드리는 공포보다 스멀거리는 아픔이 잔잔한 사회상을 그렸다.

<ZOO> 어느날 자신의 우편함에 배달되는 매일 한장의 사진, 100일 넘게 모은 사진을 영상 편집하여 초당 12 프레임으로 정지화상이 움직이기 시작한 연출은 살해 당한 젊은 여자의 사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충격적인 동영상을 보면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하는 주인공, 허나 주인공 스스로 치정에 얽인 살인이었음을 초반에 밝히는 바람에 싱거운 연출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범인이므로 잡을수 없는 범인을 잡겠다고 결심하는 젊은 남자는 매일 밤마다 여자를 살해한 ZOO로 가서는 그녀의 썩은 사체를 바라보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선 자신의 우편함에 갖다놓길 반복한다. 인적이 드물어 장사가 안된 ZOO가 사라진 어느날 마음의 평안을 찾은 남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러 경찰서에 찾을 결심을 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난 브래드피트,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영화 파이트 클럽을 떠올렸다. 인간의 내면을 치밀하게 탐험했던 그때의 인식은 숨은 자아를 까발리기 꺼려하는 젊은 남자의 무언가에 가려져 있었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떠올리게 하고 현실의 부정이 잠재된 자아의 이지를 떠올리게 했던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처럼 추억을 상실당한 남자의 열쇠는 바로 ZOO에 있었던 것이다.
저자 오로이치가 전달하고자 한 이미지는  "난 매일밤 죽었고 매일밤 다시 태어났다".. 가 아니었을까? 파이트 클럽의 엔딩을 장식했던 Where is my mind를 찾아 감상하며 ZOO를 보았다.

<양지의 시> 죽음을 소재로 전달하는 단편 스토리 중에서 잔잔한 연민과 아픔이 느껴진 작품이자 가장 기억의 끈을 오래 갖고 싶은 아름다운 노래였다. 병원균으로 모든 인류가 죽고 마지막 남은 어느 한 사람은 자신의 사후를 관리할 책임자로 로봇을 만든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로봇은 자신의 주인과 살면서 죽음이란 공포와 정지에 가깝다는 사실은 인식하게 되고 애정스런 토끼의 죽음을 목격하며 죽음이란 상실감에 가깝다는 인간의 마음을 배워 나간다. 인류가 멸종한지 오래전이고 주인은 인간이 애정을 담아 사랑했던 로봇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 로봇, 모터가 움직이기를 정지한 그 순간 그의 독백이 마음 속에 진한 여운을 더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언덕에 펼쳐진 초원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새 둥지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일도, 커피의 쓴맛에 얼굴을 찌푸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세상의 빛 하나하나와 닿는다는 것은 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일까요. 훨씬 전에 사라진 인간 아이들도 부모에 대해 비슷한 모순을 안고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사랑과 죽음을 배우면서 자라고, 세상의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400페이지 남짓 두꺼운 책인데도 귀신 홀린듯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재미나게 읽으면서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연신 소름 돋힌 팔을 비비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요란하고도 신명난 상상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10여편의 단편 묶음집을 보면서 13일의 금요일을 연상케하는 제이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가 하면 학원가에서 돌고도는 언젠가 한번 들어봄직한 괴담도 생각난다. 영상을 시청하듯 선명한 줄거리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짧은 스토리를 담은 단편집 모음이지만 섬짓한 반전과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플롯의 힘이 느껴진다. 수수께끼 미로처럼 풀기 어려운 실타래를 기가 막힌 반전으로 요리한 명랑, 발칙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을 즐겁게 기다리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