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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어둡고 탁한 느낌이 드는 이 책의 표지는 태양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는 깊은 바닷 속 심해를 연상케 한다. 그 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은 그냥 조그만 물고기가 아니라 고래들이었다.
흔히들 성공으로 가는 길은 나선형으로 이어져 있다고 들었다.
올라가기 위해서는 내려가야 하고 성공과 실패를 겪은 사람만이 진정한 성공을 할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사람의 일생을 원으로, 때론 타원으로 그리기도 한다. 난 어떤 궤도를 그리며 살아왔던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캄캄한 바다 속에 잠든 한마리의 고래가 눈을 뜨고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이 어딘지 눈을 띄게 만든다.
이 책의 플롯은 인생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수 없는 수수께끼로서 삶의 진정한 해답을 갈구하는 젊은이의 방황과 발견이 큰 줄기의 형태를 띤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를 따라 알콜 중독자가 되어버린 발테르, 전쟁의 공포와 잔인성을 되풀이하는 안드레아와 그의 아버지. 두 젊은이 모두 자살하지만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부재에서 존재의 의미를 다시 찾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조연급 등장 인물간의 역할은 주인공과 섬찟하리만큼의 재미있는 갈등을 연출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인물간의 갈등으로 풀어야 할 시나리오가 자칫 우울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는듯한 1인 독백으로 풀어지는 느낌이 다소 강한 느낌이 든다.
특히 이미 죽어버린 안드레아의 유품에서 나온 편지가 그러하다.
왜 줄거리가 그러했었는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듯한 저자의 독백이 길게 느껴졌다.
문학이란 향수에 탐닉하는 네노와 현실주의자 테데리코, 3류작가로 전략하는데 일조하는 오리오와 맛시모, 유부녀 오르사와의 간통과 사랑의 배신이 좀더 진한 갈등과 반목, 배신과 분노를 터트렸으면 어땠을까? 갈등과 대립이 반목하는 가슴두근거리는 액션씬이 다소 아쉽다.
역자의 후기에 줄거리가 대략 소개되어 있지만, 책을 읽은 느낌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복습하자면,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한 주인공 발테르는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와의 갈등을 풀지 못하고 가출이란 정답을 찾아 헤매던 중 안드레아라는 친구를 만난다. 뛰어난 지성을 갖춘 안드레아의 세계관에 흠뻑 빠진 발테르, 그러나 발테르는 그와 일별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불꽃의 인생>이란 책을 출간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은 그를 문학의 열정에서 나락의 늪으로 밀기에 충분한 가난과 사랑의 배신, 저열한 글쓰기 작가로 변신하는데 힘을 싣는다. 치열한 현실 속에서 지친 그는 자살하지만, 죽음에서 되살아난 그는 패배자의 심정으로 임종 직전의 아버지와 화해하고 안드레아를 찾으러 길을 떠난다. 이미 한줌의 흙으로 변한 안드레아와 조우한 발테르, 이레네 수녀의 도움으로 자신이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한마리 고래였음을 지각하게 되고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안드레아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로 정한 것은 닫혀진 지적 사상의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잔인한 전쟁의 공포와 회상이 그를 구석으로 몰아 붙인것은 사실이지만, 진실의 불평등을 자각하기 시작한 순간 광기를 극복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까? 이레나 수녀의 대답 "서로 의지해야 하지요" 가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해답의 실마리에 가까운 느낌이다. 관심은 사슴처럼 서로의 가슴에 기댈수 있어야 가능한 일일테니까.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에서란 책을 인상깊게 읽은 기억을 떠올려보면 인물과 인물간의 갈등보다 자기심리를 암시하는 한 인물의 내적 갈등에 고뇌하는 서사에 애정이 가는 독자라면 이 책에 깊은 흥미를 가질수 있을것 같다.
소설의 전개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불꽃처럼 숙연하게 지는..마치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의 불꽃을 보는 듯 했다. 안드레아도, 그들의 아버지와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레네 수녀도 그들 자신만의 수레바퀴를 갖고 있었다.
내 젊은날의 고뇌와 진정성이 살짝 금이 간 유리병에서 다시 활활 불타오르는 느낌이 든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영감성.. 난 이런 여운이 느껴지는 소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