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상처 받았니? - 말은 기술이 아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개정판 … 상처 받았니? 시리즈 1
상생화용연구소 엮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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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글쓰기 시점에 무슨 글을 적었는지 되돌아갈수 있는데, 말하기는 언제 무슨 말을 하였는지 기억하기가 참 어렵다.
특히 기억을 되돌려야 하는 강제성에 놓였을때 그렇고, 부부싸움하다가도 과거에 언뜻 무슨 일을 기억해서는 서로 유리한 고지에 오르고자 했을때도 그렇다.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거나 심기를 상하게 하는 원인이 되니, 말하기는 더욱 조심스러워 해야 할 일이다.
말이란 상황과 장소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를수 있고 말하는 사람간의 관계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수 있는게 말인데 이런 말들을 패턴별로 정리를 했다는 작업의 효과성에 의아해했고, 예제 하나하나가 참 공감하고 생활에서 많이 부딪칠수 있는 상황이라서 실속있는 책이란 느낌이 와 닿았기 때문에 놀랬다.

책의 속표지를 보니 상생화용연구소 라는 곳에서 공동저술의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집필진 모두 초등학교 교사로서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어서 적어도 질적으로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믿음을 갖고 책을 읽을수 있었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무심코 말하기, 배려하며 말하기, 상황 바꾸어 말하기, 한국인의 말하기 편으로 크게 나누어 각각의 상황별로 어울리는 소재의 이야기를 엮었는데, 이런 패턴이 그리 낯설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한창 유행했던 패턴식 영어 공부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대부분 공감하고 이해가 갔지만 아래 소개하는 세편의 에피소드는 달리 생각해 봄직도 하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친구가 잘 못 찬 볼때문에 현수가 태민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했다.(72쪽)
교사: 그래, 내가 어떻게 해주랴? / 태민: 내일 현수 좀 혼내주세요 / 교사:_______________________

1) 선생님께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할수 있어.
2) 잘 모르고 한 말이니가 신경 쓰지 마라.
3) 친구 간에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4) 친구를 조금만 이해하면 안 될까?

그리고는 빨간 색 글씨로 해법을 제안한다. "알았어. 내가 혼 - 내 줄께" 라고.
실제 교사는 체벌을 하지 않았고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같은 상황에 다양한 장면이 연출될수 있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고자질 했다는 사실을 다른 친구들이 알았을 때 태민은 친구들에게 따돌림 신세가 될수도 있고, 현수가 다음 체육시간때에도 계속 현수을 빈정거릴수 있다. 어릴적 내 경험이 그랬는데 나를 몹시 괴롭히는 친구를 선생님에게 알려 도움을 청했는데, 선생님은 알았다고만 했지, 실제 어떻게 하지 않아서 지금 생각해도 제법 섭섭한 추억으로 남고 있다.
그래도 내가 선생님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꽤 고민된다.

책에서 설명한 예제와 비슷한 상황이 내게도 발생한 일이 얼마전에 있다.
공연 관람 후 아이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교사A가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83쪽)
교사B가 A에게 뭐라고 말해줄수 있었을까?
1) 정신을 어디 두고 있었어?
2) 할수 없지 뭐, 잊어버려
3) (추궁하듯) 잘 생각해봐. 어디 다른데다 놓은거 아냐?
4) 아이들 데리고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5) 비싼 공연 봤다고 생각해야지 어떻게 하겠어?

나는 가족들과 함께 멀리 여행을 다녀왔고 밤12시 넘어 집에 들어온 순간, 카메라 가방이 없어졌단 사실을 알게됐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를 타기전까지는 내가 메고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카메라를 누가 메고 있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비싼 카메라도 문제였거니와 열심히 찍은 추억의 기록들이 모두 날라갔다고 생각해보라. 위에서 내가 들은 말은 1번과 3번이었는데 추긍하듯 위엄이 서슬한 표정으로 닥달하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더욱 정신없이 허둥대는 상황만을 연출케 했다. 이번 일이 실마리가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의 막막한 심정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상대의 입장이 되어 위로하는 일이 큰 일이란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학창시절에 유달리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이 책에서 잭 웰치도 어렸을때 말을 몹시 더듬었다고 하는데 조금의 위로가 된다.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잭 웰치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123쪽)
잭: 엄마, 왜 저는 친구들처럼 말을 잘 하지 못하고 더듬을까요?
엄마:_________________________
1)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도대체 넌 뭐가 문제여서 그렇게 말을 못하는 거니?
2) 너는 아직 어려서 그래.
3) 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도 많잖니. 걱정하지 말아라
4) 열심히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고쳐진단다.
5) 어제보다 많이 좋아졌는데? 계속해서 좋아질 거야

어릴 적에 샐수도 없이 어머니한테 많이 물었던 생각이 난다. 내가 들은 말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서 그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라고 얼버무리셨다. 만약 이 책에 나왔듯이 "너는 너무 머리가 좋아서 혀가 머리를 못 쫓아가는거야" 라는 말을 들었으면 어땠었을까? 어릴적부터 열등감에 시달려 내성적으로 자라온 추억을 되돌려보면, 마냥 유쾌하지만은 못하지만, 내 자식에게 만큼은 단점을 '자부심'으로 가져야 할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책의 맨마지막에 잘못 걸려 오는 전화를 계속 받을때 전화에 응수하는 매너와 언어습관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내경우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그날그날 다른게 사실이다. 기분좋은 일이 있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때면 운전도 부드럽게 하고 내 앞에 들어오는 차는 무조건 양보하지만, 기분이 언짢을때 전화 응대를 부드럽게 한다는 게 힘든 일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어디까지나 내 입장만 고려한 이기주의적인 처사란 생각이 든다. 내가 기분이 나쁠수록 상대방을 더욱 기분좋게 만들어 나 자신도 같이 기분 좋아지는 '상생화용(서로를 살리는 말하기)'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오늘을 마감하면서 나의 화법을 되돌아보며 몇 점인지 기록하는 것도 좋은 피드백이 될것 같다.

올바른 소통은 말하기가 부담없고 편안하고 기분 좋은 관계를 말한다.
상생이란 너 살고 내가 사는 일이다. 그런데 잘못된 대화의 습관이 너를 무시하고 기분나쁘게 하고 심지어 화나게 한다. 그럴 의도가 아닌데 상대방이 나의 말을 오해하고 곡해하려고 하는 것도 잘못 키운 습관이 부른 화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의 진정성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서로의 오해를 덜고 화목한 대화를 열어나가는 시초일것이다. 이 책을 오래전에 읽고 또 꺼내어 읽어보았는데 어떤 상황에서는 내 고집만을 고수하며 계속 다른 사람의 심기를 불편케 했으리라 짐작되는 표현들이 눈에 띄였다. 말이란 한번 내뱉고 나니 다시 번복하기에 때론 힘들때가 많다.
습관이란 더욱 무서운데, 지금부터라도 상생화용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 내게 이 책을 접한 행운이 날라갈것 같다.

이 책을 좀더 보완한다면 말하는 관계와 듣는 관계를 서로 분명하게 선을 그어 보는 것이 좋겠다. 다행히도 뒷 표지를 보니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간에, 그리고 선생님과 제자간에 상처받았니? 시리즈를 출간할 계획에 있다고 한다. 한 해에 딱 한권을 출간하는데 철저한 검증과 연구작업을 거친다고 하니 책의 신뢰도 면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인다.
호주머니 쏙 들어갈 포켓수첩이라도 만들어서,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떤 장소라도 '서로 기분좋게 말하기' 를 연습할 수 있도록 해보는것은 또 어떨까? 부록이라도 나온다면 정말 좋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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