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영어나 한국어, 또 아주 가끔은 일본어에 대해서 고민한다. 다른 언어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싶어질 때가 있기는 하지만 고민할 만큼 아는 언어가 저 뿐이다. 아무튼, 언어를 고민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단어가 도대체 생각하기도 어려운 정교한 규칙을 통해 고리를 맺는다. 가끔씩 느린 속도로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 내 소소한 취미이다.


오늘은 the young에 대해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용사 앞에 the가 붙는 용법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형용사 앞에 the가 붙으면 그것은 사람이 된다. 우리는 the young을 젊은이로 번역한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the는 명사 앞에만 붙고 그리고 또 보통 ‘그’ 하는 뜻을 지니는 정관사가 아닌가 말이다. 왜 형용사와 손을 붙들면 그 덩어리는 형용사적 기질을 갖는 인간이 되고 마는가? 


나는 영어를 꽤 오래 배웠는데, 아직도 the가 어렵다. the를 써야할 때와 그러지 않아도 되는 때를 숨 쉬듯 구분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the를 옳게 사용하는 일이 단지 문법적인 문제에 그친다면 몰라도, 실제로 the가 존재하는지 아닌지가 어감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때도 많으니까 고민이 된다. 단어에 the가 더해지면서 명사는 특별한 힘을 얻는다. 어떤 공고한 법칙에 따라 the를 집어넣어 보려고 시도한 적도 없지는 않은데, 남의 모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꽤 곤란한 일이라 신경 쓸 일이 한 두 개가 아니어서 나는 곧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냥 내 마음대로 하고 있다. 한국어도 마음대로 쓰는데 영어라고 꼭 정확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리고 마음대로 써야 마음이 잘 드러날 것 같다. 이건 좀 핑계다.


그렇다면 나는 the를 넣을지 말지 여부를 결정할 때 어떤 느낌에 주목하는가? 지금 잘 생각해보니 그것은 지정하는 느낌이 좀이라도 있나 없나인 것 같다. 명사가 the와 함께 쓰이는 용법이 몇 가지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해당 명사가 특별함을 지니고 있는가’ 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하기로 한 것이다. the를 앞세우고자 하는 명사가 지금 나의 글이나 말에서 어느 정도라도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서, 다른 무엇과 구분되는 경향성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게다가 순전히 내 입장만 반영하기 때문에 청자에게 그게 특별한지 아닌지는 별로 고려하지 않고 the를 남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언어 세계에서는 the young이 어색하고 또 오묘하게 뒤틀려 보인다. 지금 말하려는 젊은이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특별하다고 할 특징을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더라도 young 앞에 the가 붙는 순간 나는 버릇처럼 그것이 어떤 의미로라도 특별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young이 그러한 특별함을 갖는 순간 갑자기 형용사는 사라지고 젊은 속성을 지닌 사람이 나타난다. 형용사가 내게 특별해지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세상과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거리에 대해 생각한다. young의 속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주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를 붙이면 이것은 인간이 된다. 그러니까 화자인 내게, young한 것 중에서도 특히 지정할 필요가 있는 의미 있는 young함은 사람 속에만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the를 주로 사용하는 버릇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내게 주입된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공을 들여 지정할 만한 young이 사람에게만 있다는 생각이 무척이나 그럴싸하게 생각되어서 나는 놀랐다. 애초에 형용사 앞에 the를 입히는 용법을 아주 쉽게 외웠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the와 형용사가 함께 쓰이는 문법은 지금 그것을 사용하는 내가 사람이라는,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을 특별히 여길 수밖에 없다는 외침이다. 그런 외침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객관적인 사고를 한다는 생각을 과감히 포기한다. 그리고 어쩌면 적어도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으려나 하는 의심도 하게 된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the young이 젊은이로 간단히 번역되는 현실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내게 the young이란, 젊다는 속성을 가진 바로 그것, 젊다는 속성을 가진 많은 것들 중에서도 바로 바로 그것, 우리가 말 안 해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젊은 것 중에서도 진정한 의미로서 젊은 바로 그것, 을 축약한 말이기 때문이다. 


Begin again의 삽입곡인 Lost stars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 ’ 


젊음은 우리가 젊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바로 그것에 낭비된다. 


언어란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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