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어카 목마


어릴 적에, 아마도 유치원 다닐 때거나 더 어릴 때, 일주일에 1회 정도 트럭 아저씨가 리어카 목마를 끌고 아파트 단지에 오곤 했다. 목마는 (사실 목마가 아닌) 플라스틱제로, 색색깔의 것이 한 대여섯마리 리어카에 묶여 있고 느슨한 스프링에 매달려서 위 아래로 튕기는 장난감이었다. 어린애들이 백원인가 이백원인가 내고 십분씩 목마를 타고 있으면 아저씨가 동요를 틀어줬다. 나는 그걸 정말정말 좋아했다. 매일 베란다를 내다 보고, 엄마 목마 언제 와, 라고 묻곤 해서 가여웠던 모양인지 결국 엄마가 1인용 목마를 사줬다. 근데 그건 스프링이 너무 짱짱하고, 노래도 안 나와서 몇 번 안 타고 구석에 쳐박아두게 되었다.


후에 몸이 더 커져서 더이상은 탈 수 없게 되었을 때 엄마는 그걸 갖다 버리려고 현관문 앞에 내놓았는데, 때마침 엄마한테 잔뜩 혼나고 집에서 쫓겨났다가(엄마는 당시 '그럴 거면 나가!' 라는 말을 꽤 자주 했었는데 나는 보통 자존심이 상해서 진짜 나가버리곤 했다) 갈 데가 없어서 말에 앉아 있었다. 근데 그게 너무 재미나서, 내 처지도 잊고 한참이나 그걸 타고 놀아버린 것이다.

한 이삼십분쯤 지났을까 초조해진 엄마가 (초조해할 거면 쫓아내지 말았어야 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빼꼼 문을 열어봤다가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말을 타고 바운스 바운스 하고 있는 나를 보고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던 일이 있었다. 왠지 나는 이 기억이 소중하다.



2. 그림 복사기


초등학교 앞에서는 때때로 신기한 것을 팔았다. 핑크거나 초록으로 염색한 병아리도 팔았고, 달고나도 팔았고, 그리고, 그림 복사기도 팔았다. 병아리나 달고나는 꽤 자주 찾아왔지만 그림 복사기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6년 동안 단 한 번만 찾아왔다. 


그림 복사기는 내가 붙인 이름인데, 그 뒤로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정확한 명칭이 뭔지 모른다. 그것은 약간 자바라 옷걸이처럼 생긴 까맣고 가오리연 만한 정체불명의 것이다. 그림 복사기 판매상이 학교 앞에 좌판을 깔아놓고 앉아서, 세일러문 그림 같은 것을 출력한 것과 백지 한 장을 나란히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잘 구경하지 않는 편인데, 그 날은 애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어서 나도 휩쓸려 들어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는 세일러문 위에 그림 복사기의 한쪽 발을 고정해놓고, 백지 위에 나머지 발을 놓은 뒤, 세일러문 위에 놓았던 발을 연필처럼 쥐고 그림 위를 트레이싱했다. 그랬더니 글쎄 다른쪽 발이 이 자의 손놀림을 그대로 따라하며 백지 위에 세일러문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었다. 


나는 예로부터 그림을 잘 못 그리는 것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던 터라 순식간에 그 마법같은 도구에 마음을 빼앗겼고, 주머니에 있던 돈을 홀랑 털어 그것을 사가지고 왔다. 집에 돌아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화책을 펼쳐놓고(아마도 백조의 호수였을 것이다. 엄청나게 예쁜 오데트 삽화가 있는 동화책이었으므로) 판매상이 했던 것과 꼭 같이 그림 복사기를 설치했으나


...


이것이 내가 당한 생애 첫 사기다. 이 기억은 하나도 소중하지 않다. 지금까지도 원통하다.



3. 두부 아저씨


집집마다 저녁을 지을 때 쯤 되면 두부 트럭이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아저씨는 트럭에 매달린 종을 짤랑 짤랑 쳤다. 그 종소리는 귀에 거슬리지도 않으면서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엄마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 소리를 금방 알아듣고, 두부 한 모 사와, 또는, 콩비지 달라고 해, 라면서 천원을 쥐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초조해졌다. 고정된 주소를 가진 가게가 아니라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두부 트럭 아저씨한테서 천원과 두부를 맞바꾼다는 것은 아주 불안정한 일로 생각되었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큰 미션을 내게 주다니! 나는 운동화를 꺾어신고, 복도를 가로질러 들려오는 종소리를 하나 하나 헤아렸다. 백 번 치고 가면 어쩌지, 오십번만 치고 가면 어쩌지, 열번만 치고 가면 어쩌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너무 천천히 오는 것 같으면 나는 죽기 살기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두부를 못 산다고 별 일이 생기는 게 아닌데도, '두부 사오기'는 아주 중요한 도전이 되어 나를 몰아붙인 것이다. 나는 그 어릴 적에도 이미 실패를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두부 아저씨는 신의 깊은 자였다.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내가 숨을 헉헉 몰아쉬며 손에 꼭 쥔 천원을 내밀 때, 서두르는 법 없이 연하늘색 반투명한 봉지를 휙 뜯어 두부 한 모를, 아니면 트럭 옆에 매달아둔 콩비지 주머니를 하나 톡 뜯어 내밀곤 했다. 그 두부가 마트표 두부보다 특별히 더 맛있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두부였다. 그래도 나는 그게 더 좋았다. '마트에서 두부 사오기' 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천만한 과정을 통해 획득한 성공의 맛이었다. 



4. 분유 도둑질


동생이 태어났을 때, 엄마는 애기가 먹을 분유를 몇통씩 한꺼번에 구매해서 집에 쌓아놓았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때나, 엄마가 애기랑 같이 낮잠잘 적에 몰래 분유를 한 숟갈씩 퍼먹었다. 거의 하루에 두 세 숟갈은 먹었을 것이다. 분유는 약간 프리마 같은 느낌으로, 달달하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풍부한 지방의 맛을 가졌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에 먹어 봤다가, 생각 외로 너무나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 것이다. 나는 왠지 다 큰 게 분유를 먹는다는 게 부끄러워서, 당당하게 먹을 생각은 못하고-아마 당당하게 먹었다면 제지 당했겠지만-맨날 그렇게 몰래 훔쳐 먹었다. 그래도 속으로는 엄마가 알 거라고 생각했었다. 애기 혼자 먹는데 그렇게 분유가 빨리 줄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최근 엄마랑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몹시 경악한 얼굴로, 아니 그럼.. 니 동생은 뭘 먹고 큰 거야..... 라고 놀라했는데, 당시 분유가 소모되는 속도가 육아서적에 나오는 그것과 꼭 같아서 엄마는 애기가 딱 표준치만큼 분유를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만약 동생새끼가 왜소하게 자랐다면 이 사실을 알고 나는 몹시 죄책감이 들었을 것이나, 이 놈은 지금 산적같은 체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아마 내가 좀 뺏어먹어서 이 만큼 큰 거지, 안 뺏어 먹었으면 과도하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5. 팔베개


아빠는 아침에 일찍 나가고 밤에 늦게 들어왔다. 그래서 평일에는 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이였는데, 가끔씩 주말에 엄마가 외출을 하면 아빠가 나를 책임져야 됐지만 자꾸 피곤한지 조금만 놀아주다가 꾸벅꾸벅 졸고는, 아빠랑 낮잠 잘래? 하고 꼬시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보통은 그런 제안을 용서치 않았으나, 어느날은 눈에 졸음이 가득한 게 좀 불쌍해서 같이 낮잠을 자주었다. 아빠는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곯아떨어졌는데, 나는 아빠가 내준 팔베개를 하고서 한참이 지나도 전혀 잠이 오지 않아 괴로웠다.


한참 나무토막같이 누워있다가, 더이상은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자 나는 살금살금 아빠의 품을 빠져나왔다. 문득 방을 나서려다 생각해보니 아빠가 혼자 잠에서 깨면 외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곰인형 하나를 팔 위에 얹어 놓았다. 내 백일 사진에 같이 나온 흰곰돌이를.


평소에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지만 나의 이런 기특한 배려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묻지 못했다. 내일 물어봐야겠다. 아마 나 같은 딸이 있다면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다...



6. 델몬트 병


옛날에는 집에서 보리차를 끓여 먹었다. 펄펄 끓여가지고 델몬트 유리병에 넣어서 한김 식혔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는 것이다. 평소 보리차를 마시다보면 맹물은 비린내가 나서 잘 못 먹게 된다. 지금은 맹물이 더 좋다.


델몬트 병 밑바닥에 보리차가 찰랑찰랑 깔릴 쯤이 되면 불안해졌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 아주 목이 말라질지도 모르는데 남은 물이 반 컵 분량뿐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냉장고를 열었을 때 델몬트 병마다 새로 끓인 보리차가 꽉 차 있고, 아주 차갑게 식어서 이슬이 겉면에 송골송골 맺혀 있으면 그렇게 안심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델몬트 병은 굉장히 무겁고, 크고, 어린이가 한 손으로 다루기에는 아주 힘든 구조를 갖고 있었다. 어느날 귀가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고, 나는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다. 한여름이었다. 차가운 보리차가 세 병이나 꽉 들어차 있었다. 기분이 몹시 좋아서, 서둘러 그걸 꺼내다가 보기 좋게 떨어트리고 말았다. 델몬트 유리병은 아주 잘 깨진다. 장판에 떨어지면서도 와장창 산산조각이 났다. 가득 들어있던 보리차의 물결을 타고 유리조각이 부엌과 거실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내가 발 딛고 선 자리 빼고는 온통 보리차와 유리조각 천지였다. 


나는 충격받아서 한참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한테 혼날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감과, 당장 몸을 피할 수 없다는 괴로움이 몰려들어 눈물이 비죽비죽 나왔다. 날씨가 더워서 곧 등허리에 땀이 찼는데, 선풍기를 틀러 갈 수도 없었다. 느끼기로는 한 12년쯤 지나서 엄마가 귀가했고, 내가 그러고 서 있는 꼴을 보더니 아이고! 큰 소리를 냈다. 나는 엄마가 곧 신경질을 부리겠지, 생각하면서 계속 울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도 정말 괴로울 만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엄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아주 불쌍해하면서, 얼마나 겁을 먹고 오래 서 있었니, 하면서 나를 번쩍 들어 식탁 의자에 올려놓고서는 금방 거실을 다 치워버렸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그 때 그 사건이 엄마가 나를 말만이 아니라 진짜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첫번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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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8-07-1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랍도록 선명하고 반짝반짝한 기억들이네요. 리어카 목마가, 두부 아저씨가, 달고나 아줌마가, 찬 이슬이 송골송골 맺힌 델몬트 병이 선연합니다. 향수에 젖어있는데.. 제목을 너무 늦게 봤다. ㅎㅎ 돈 내고 보래도 얼마든지 그럴만큼 값진 추억입니다.

그림 복사기는 뭔지 모르겠지만, 저도 비슷한 사기를 당한 경험이 떠오르는군요. 거짓말 탐지기..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