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즈키 선생님 5 ㅣ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이연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
지금의 학교 교육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손이 안 가는 아이들의 마모되는 마음으로 떠받치고 있다고요.
그래요. 지금의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 상대건 간에 손이 모자라는 상태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문제아에게, 예를 들어 10만큼의 힘을 써야 한다면, 얼핏 봐서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 학생에게도 하다못해 5 정도는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챙길 필요 없는 아이가 뒷전으로 밀려나서 불쌍하다는 평등론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는 편이 결과적으로는 문제아를 포함해 학교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노림수도 되지요.
지난 주, 학원 일을 마무리하면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니 특별히 더 눈에 밟히는 애들이 있다. 유난히 더 까불고 뺀질거리던 애들이 아니라 조용하고 성실한 애들이다. 그 중에서도 동그랗고 좁은 이마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뒤통수 정도만 겨우 눈에 익은 이제 중학생이 된 여자아이가 있다.
어느 날인가 테스트 내내 남자애들 몇몇이랑 여자애들 몇몇이 거의 길길이 날뛰다시피 떠들어서 애를 먹었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남아 가방을 싸는 학생이 있어 가까이 다가가 괜히 말을 걸었다. 시끄러워서 어쨌냐, 미안하다 뭐 그런 내용의 두서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학생은 되려 내 어깨를 두어 번 톡톡 두드렸다. 위로하려는 것처럼.
공교육에서뿐 아니라 성장기 학생들의 교육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손 안 가는 아이들의 마모되는 마음으로 떠받쳐지고 있다. 스즈키의 말마따나 교사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 스즈키는 문제아가 모범생을 시기하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부러움을 지적하면서 반대로 모범생 역시 문제아를 미워하는 한 편 부러워하고 있음을 역설함으로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청소 당번을 맡은 아이들 중 문제아와 모범생이 각각 섞여 있다고 하자. 모범생은 문제아가 청소를 안 하고 매번 도망가는 것에 대해서 민폐라고 생각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편, 자기에게도 남들이 인정해줄 만 한 '도망 자격 요건'이 충족되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나도 마음이 심란해서 오늘 청소를 할 기분이 아닌데. 그래 오늘은 나도 도망가는거야.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왜 어떤 아이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다양한 물쌀들을 이겨내고 청소를 해야 하고 또 왜 어떤 아이는 그 물쌀들에 못 이기는 척 청소를 도망가도 되는가? 스즈키 선생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교사들이 충분히 오랫동안 고민해보기를 원한다.
#
둘 다 '평범'해. 둘 다 '훌륭'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극히 당연한, '사람인데 어쩔 수 없지.'로 해결될 정도의 문제다. 이런 일로 하나하나 야단을 맞으면 답이 안 나올 거다. 그래서 나는 되려 지금 야단칠 생각은 없어. 다만, 한 가지 말해 주자면... 둘 다 오늘 같은 '평범'한 상태로는 다음에도 반드시 또 평범한 사람끼리 몇 번이고 싸우게 될 거다. 어른들도 지극히 평범하게, 그렇게 서로 싸우며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서로 기분을 해쳐 가며, 때로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거나, 피까지 흘리기도 하면서. "어쩔 수 없어, 그런 게 사람이지." 하면서 자신을 바꾸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혹시, 말다툼이 싫다는 생각이 들거든, 예를 들면 방금 말한 것처럼 자신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평범' 이상이 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조금 '훌륭'한 사람이 말이다.
다케토미 겐지의 [스즈키 선생님]을 선물하고 싶은 데가 많다. 얼마 전 임용을 마치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내 친구에게, 그리고 기간제 교사로 이미 교편을 잡고 있는 또 다른 내 친구에게 가장 먼저 선물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곧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친구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한창 중학생이 될 기대에 부푼 사촌동생들에게도.
아마 이 만화는 교육자와 학습자를 따로 정해두지 않은 교육 만화일 것이다. 교육자가 꼭 선생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 만화를 바로 읽은 게 맞다면 나는 언제든 어느 상황에서든 스즈키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언제든 어느 상황에서든 스즈키의 학생들 중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깊게 감명받은 지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나는 요 근래 바른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어느 한 쪽이 '정치적 폭력'을 사용해 다른 한 쪽을 교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아는 누구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람 둘 이상이 모인 곳은 정치적인 공간이 된다고도 했다. 교사가 학생에 대해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둘 사이에 존재하게 된 정치적 폭력의 힘이 교사에게 더 기움으로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학생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 대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냥 그가 담배를 피우도록 두어야 할까? 왜 미성년자에게 담배가 불법인지를 스스로 깨닫도록? 다케토미 겐지의 [스즈키 선생님] 5~8권에는 교사로서의 스즈키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물론 1~4권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5~8권에서는 뭐랄까, 학생들이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중구난방으로 소리지르고 자기 의견에 대해서 고집하는 모습을 보고는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이전의 가르침을 기억해 내 현재 안건에 새로이 적용시킬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스즈키의 교육 철학은 교사가 나서서 '담배를 피우지 마라'하고 지시하는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
제가 스즈키 선생님의 학급 토론은 허가하면서 다루코 선생님의 파업 대결이라는 지도를 부정하는 것은 파업이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해결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폭력성을 가진 행위를 전부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는, 폭력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그것을 '악'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는, 한층 어렵습니다. 세상에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끝내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가 어떤 말도 듣지 않고 폭력적으로 자기 쪽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폭력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교육이라는 것은 교사가 해당 학생에게 한시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이야기만을 한정적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즈키가 늘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내가 감명받은 지점이기도 한, '진짜 교육'은 교사가 해당 학생과 그 주변의 학생들에게 한시적으로 그러나 그 시점 이후로는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계속 떠올려지고 되새겨지고 변용되고 응용되면서 체화되는 것. 그렇게 보통을 넘어서 조금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평소에 책 읽기가 조금 힘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혹은 오랜 고시준비가 끝나고 시간의 여유가 생긴 사람에게. 혹은 늘어날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혹은, 잘 모르겠다. 누구라도 선뜻 읽어봤으면 좋겠다. 읽을수록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만화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 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