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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1 ㅣ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홍성필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 1.
어떻게라는 게 뭔가요? 그건, 편식을 고칠 수 없으면서도 탕수육 폐지 반대에 손을 드는 학생과 같지 않나요? 강제력이 없는 지금의 우리는 매우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한 가지 메뉴가 이렇게 사라지는 허무함을 그나마 학생들이 느끼도록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뭔가를 싫어한다는 이유가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마음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하지만 싫어하는 쪽도 마음 편하진 않을 거에요. 뭔가를 싫어하는 것도 나약함의 일부죠. 그런 나약함을 들켜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버릴 거예요.
내가 아는 어떤 선생님의 이야기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배웅하는데 한 남자애가 선생님을 불러 세웠단다.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수업 시간에 개인적인 의견을 너무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말아달라고 했다고. 그 얘기를 들은 선생님은 "그래, 내가 조금 좌편향 되어 있긴 하지?" 하며 털레털레 웃었다는데.
선생님이란 게 그런 직업이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시대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렇다. 개인적인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교육의 범위가 매우 매우 좁아졌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제는 교과서에 들어있는 지식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살아보니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더라, 이럴 땐 이렇게 하면 좀 쉽게 터널을 통과하게 되더라, 하는 둥의 이야기들은 먹히지도 않고 먹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민음사에서 다케토미 겐지의 만화 [스즈키 선생님]을 보내줄테니 리뷰를 해달라고 해서 슬쩍 검색을 해보았다. 솔직히 내 구미에 당기는 그림체도 아니었고 내용도 '병맛'일 것 같았다. 그래서 택배가 왔다고 받아놓고도 한 이틀인가 뜯지 않고 쇼파 위에 던져 놓았었다. 그러다가 어제 새벽 가까워 잠도 안 오고 슬렁슬렁 시간이나 죽이고 싶어서 1권을 펼친다는 게 보내준 4권을 모두 읽고 말았다.
# 2.
새로운 세대에서 유행하는 나쁜 풍조는 대부분 전 세대 나쁜 풍조에 대한 안이한 극복이다.
내 주변의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는 고등학교때 문학 선생님. 방송국에서 피디 생활을 하다가 늦게 임용을 보고 교사가 되었다던 그 선생님과 나는 방송부 활동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문예창작학과 애들을 앉혀놓고 소설이나 시를 가르치면서도 전혀 감수성 풍부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던 그 선생님이 아직까지도 내 맘에 남아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함께 보냈던 수업 외 시간들 때문이었다. 문학쌤은 수업이 모두 끝나면 다른 선생님들을 모아 운동장에서 발야구를 하곤 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고 그 불빛을 조명 삼아. 야구가 끝날 즈음에는 배달시킨 치킨과 생맥주가 왔다. 나는 그 때만을 기다리며 방송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선생님들이 발야구를 하는 걸 구경하곤 했다.
후라이드 치킨과 생맥주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방송부 애들 몇몇과 나와 선생님들. 학생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었지만 분명히 배움이 있었던 시간. 그런 시간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진짜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 3.
근육의 발달은 그 조직이 적절히 파괴될 만큼 부하를 거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의 반복으로 촉진되지. 정신도 마찬가지.
[스즈키 선생님]에서 스즈키는 대안을 제시한다. 교육의 범위를 고민하고 어떤 식으로 어디를 '가리킬지' 고민한다. 제일은 학생과 상호작용하는 것.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학생들과도 계속해서 소통하는 것. 만화를 읽는 내내 학생이나 스즈키 양쪽 모두 서로에게 집중하고 반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교사는 학생의 한 모습만 보고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데, 스즈키가 그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매우 노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스즈키 선생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여타 만화들이 선택하는 패러디나 개그와는 다르다. 오히려 문제상황에 정면으로 들어가 인물의 갈등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때문에 만화를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읽는다는 느낌이 든다. 인물들의 표정이 다소 우중충하고 우울하게 그려져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껄끄러운 문제를 만나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 교사가 가져야 할 진짜 태도가 아닐까.
# 4.
자신들에게 귀찮은 일이 닥치는 게 싫은 걸 은폐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육적 지도'를 설득력 없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강요하는데다 그걸 멋지게 일도양단해 주는 것 같은 말까지 함부로 늘어놓다간 아이들은 얼마든지 어른들이 이끄는 길에서 벗어납니다!
사람은 다양한 '체험'을 통해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장한다. 이건 뭘 먹느냐에 따라 육체가 성장해가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다. 아니, 마찬가지다. 인간이 입에 넣은 먹을거리의 양, 그것이 체험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몸은 입에 넣은 것의 영양을 전부 섭취할 수는 없단다. 영양은 컨디션과 음식과의 궁합, 또는 먹을거리의 종류와 조리방법 등 다양한 조건 아래 육체에 흡수되어 몸의 일부가 되는 비율은 아주 크게 바뀐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물론 먹은 양이 아니라 섭취한 양이겠지? 이 섭취한 영양의 양, 그것이 경험이다.
다케토미 겐지의 이 만화를 읽고 나서 교사나 교육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국정교과서로 교육의 관점이 단일화되고 입시위주 커리큘럼으로 교육의 범위가 좁아지는 우리 한국에서 더더욱 만화 [스즈키 선생님]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스즈키는 듣는 학생의 정서가 얼마나 불안한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정론'만을 준비해 쏟아놓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상명하달식으로 전달되는 '교육적 지도'가 귀찮은 일이 닥치는 게 싫은 꼰대들의 교육방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100% 동의는 할 수가 없다. 교사로서의 한 개인이 완벽한 인격을 가질 수가 없는 마당에 개인적 가치관을 가지고 교육하게 되면 어떤 위험부담에 빠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다케토미 겐지의 [스즈키 선생님]이 문제적 작품으로 거론된 것은 아마도 오늘날의 교육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아쉬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