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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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고 싶은 날은 마늘을 깐다.

     마늘 까는 일에도 엄연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악몽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나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손에 밴 마늘 냄새처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늘도 맵지만 사는 건 더 맵다. 지난 몇 달을 돌아보면 코끝이 찡해진다. 화장실 같은 곳에 숨어서 남몰래 울고 싶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떻게 참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사람들은 동물원에 가서 무엇을 볼까. 동물원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은 '동물을 본다'고 대답할 것이다. 동물원에 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나라면 '인간에 의해 야생을 거세당한 동물을 본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동물원을 좀 더 자주 가고 그 안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강태식이 쓴 소설 [굿바이 동물원]은 그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남자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부업으로 마늘을 깐다. 부업 브로커인 '돼지엄마'가 소개시켜준 덕이다. 며칠 마늘을 까다가 봉제인형 눈 붙이기로, 인형 눈에서 바비인형 속눈썹 붙이기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종이학과 공룡알 접기로 업종을 바꾸어가며 부업을 하던 남자가 비로소 동물원 일을 소개받는다. 출근 첫 날, 남자는 동물원에서 자기가 하게 될 일이 '고릴라'임을 알게 된다. 고릴라 탈을 쓰고 고릴라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12미터 높이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있다. 이 빌딩을 타고 올라가면 부저가 있다. 부저를 누르면 5천원. 갑근세 3.3%을 제한 4,835원을 버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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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후우후"

     세상이 밉다. 사람들이 밉다. 울분에 찬 가슴을 두 주먹으로 두드린다. 성격 따위 삐뚤어질 테면 삐뚤어져라. 어차피 이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면 성격 같은 건 그냥 삐뚤어지는 거니까. 역시 세상이 밉다. 사람들이 밉다.

     "정말 잘 지내는 거지?"

     옆에 누운 아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아, 나는 과연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남자는 동물원의 고릴라로 출근을 하고, 아내는 캐셔를 그만두고 부업을 시작했다. 아내가 마늘을 까다가, 봉제인형 눈을 붙이다가, 바비 인형 속눈썹을 붙이고, 그리고 종이학과 공룡알을 접기 시작한다. 마늘을 깔 때는 알몸의 마늘에 짓눌리는 악몽을 꾸고, 인형에 본드칠을 할 때는 본드에 취해 눈이 풀린다. 남자가 겪은 그대로다. 남자는 아내가 본드에 취해 눈이 풀려 침을 흘리며 실실 웃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기가 겪은 그대로다.

     '행복한 인생 통장'은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다 개설되는 계좌다. 문제는 그 통장에 차곡차곡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 통장'의 잔고를 보며 비참하다.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에 나오는 사람들 역시 비참하다. 자신의 통장이 보잘것 없이 초라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살기에도 너무나 빠듯한 삶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원하면?

     깐 마늘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면 다음은 봉제인형과의 사투다. 이 사투로부터 지켜내야 할 것은 지구도 아니고 사랑하는 아내도 아니다. 돈이다. 남자는 봉제인형이 돈을 씹어 삼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본드량을 한 큰술에서 다섯 큰술로 늘려도 봉제인형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낙법 훈련을 하고 외제차에 뛰어들어도 봉제인형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올라 자기 몫으로 주어진 버저를 눌러도 마찬가지다. 버저를 누르다 떨어져 크게 다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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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이 맵네."

     아내는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운 건 마늘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마늘 때문이 아니다. 사는 게 맵다. 매우니까 눈물이 난다. 한때는 나도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안다. 마늘보다 사는 게 백배쯤 맵다는 걸. 그리고 마늘을 깐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지도.

     마음이 아팠다. '행복한 인생 통장' 따위가 뭐라고. 그런 통장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그러니까 마늘 같은 거 까지 말라고 탕탕 큰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미안하고 초라하고, 마늘을 까고 있는 아내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했다.

    

     내 옆에도 '행복한 인생 통장'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있다. 엄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엄마는 나한테 말했다. 앞으로 너는 월급을 이만큼 벌어야 하고, 그 첫 단계를 위해 지금 학교에 가는 중이라고. 처음 사귄 남자친구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그랬다. 니가 앞으로 벌어올 돈이 이만큼이라는 것을 알아야 남자친구를 보는 눈이 달라질 거라고. 나는 그 때마다 엄마의 상처가 돈에 의해 난 것이라고 알았다. 그 얇은 한 장의 종이가 사람을 저렇게 깊이 벨 수도 있구나 했다. 나는 차라리 '행복한 인생 통장'의 계좌를 포기함으로서 그 상처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 땐 그런 생각이 쉬웠지만 지금은 또 다르다. 지금 나는 '행복한 인생 통장' 안에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채울 수는 없는지 고민 중이다. 그건 의자를 책상이라고 부르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혹은 '행복한 인생 통장'이 오로지 돈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개인이 정말 행복해지고 싶을 때, 그것이 왜 하필 돈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심은 언제나 한다. 혹은 한 개인이 정말 돈을 벌고 싶을 때, 왜 그 일이 비참의 긴 통로를 헤매는 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도.


     사람들은 동물원에 가서 무엇을 볼까. 아프리카 초원을 맹렬히 달리는 꿈같은 사자는 이제 없다. 대신 달리기에 지치고 서열 싸움에서 밀린 사자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배를 타고 건너와 구직을 하고 돈을 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원은 그 자체로 인간상의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구획을 나누는 것도, 구획을 통제하는 것도, 돈을 지불한 사람들과 그 돈을 월급으로 받을 동물들 사이에 있는 확실한 경계도 지금 우리들이 놓인 공간에 완벽히 치환된다. 동물들에게 그 울타리는 넘봐서는 안 될 울타리이지만 구경 온 사람들에게 울타리는 재밌게 넘볼 수 있는 울타리다. 이 아이러니가 비참한 감정을 낳고 그 감정이 돈으로부터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동력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고 마무리하는 것은 조금 촌스러운 시대가 됐다. 그래서 전부 다 포기해버렸다고 마무리하는 것은 작가적 직업유니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 [굿바이 동물원]에는 그 사이에서의 긴장감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작가의 몫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몫이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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