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페리온 을유세계문학전집 11
프리드리히 휠덜린 지음, 장영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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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물과 작가뿐만 아니라 시대를 읽는다는 벅찬 감동이 있어 좋다. 하지만 그런 만큼 고전(古典)은, 고전(苦戰)을 면키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휘페리온>은 아직도 미지의 고전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을유세계문학전집은 많이 알려진 고전 위주에서 벗어난 행보를 걷고 있다. 왜냐하면 잘 알려진 고전을 통해 안전한 길을 가기보다는, 조금은 덜 알려진 고전을 출판함으로 힘든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든 만큼의 귀한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괴테, 실러와 동시대 인물이면서도 그들처럼 인정받지 못했으며, 생애의 반평생은 정신착란에 시달렸던 불행한 시인이다. 그러한 횔덜린이 20세기 초반에야 주목을 받고 있다. 횔덜린은 릴케와 첼란과 같은 현대 시인들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철학자 하이데거에 의해서 “시인의 시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처럼 횔덜린은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의 소설을 통해 횔덜린은 재탄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가 특별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어렵기는 어렵다.

<휘페리온>은 횔덜린의 처음이자 마지막 서간체 소설이다. 이 책에 대해 “일종의 실험적 소설”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쉽게 읽혀지고 이해되는 책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철학 소설, 교양 소설, 예술가 소설, 정치 소설, 애국 소설의 독특한 요소를 두루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휘페리온>은 책의 주인공인 휘페리온이 친구인 벨라르민과 연인인 디오티마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묶은 서간체형식을 취한다. 벨라르민의 답신은 담겨 있지 않고, 디오티마의 답신은 그 양이 휘페리온이 디오티마에게 보내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책 전체는 휘페리온 자신의 고백들로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휘페리온은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연인인 디오티마에 대해 고민하며, 친구인 알라반나와의 관계에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경험하는 흔들리는 존재이다. 휘페리온의 모습은 유약하지만 강건하고,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때론 결연한 여러 가지 내면의 모습을 가진, 바로 나와 같은 인간의 모습, 그리고 내 옆에 있을 법한 한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휘페리온>을 읽으면, 누구나 장중하고, 깊이 있는 시적 표현들에 잠시라도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냥 바라보는 태양에 대해서, 바다에 대해서, 공기에 대해서, 나무나 바위에 대해서 어쩌면 그토록 표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작가의 깊은 사색은 읽는 독자들을 한번쯤 그 자리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오, 인간은 꿈꿀 때는 하나의 신이지만 생각에 젖을 때는 거지이다.”

“아! 인간의 거친 가슴에게는 어떤 고향도 가능하지 않다. 태양의 빛살이 자기가 피게 한 대지의 축복을 다시금 시들게 하듯이 인간은 자신의 가슴에 활짝 피어난 감미로운 꽃들, 친근함과 사랑의 기쁨을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희망이 없다면 삶은 도대체 무엇일까? 음침한 계절에 한순간 윙윙 소리를 내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점 바람결을 우리가 듣는 것처럼, 목탄으로부터 피어올랐다가 꺼져 버리는 한 점의 불꽃처럼 삶도 우리에게 그러하단 말인가?”

“나는 화끈거리는 상처에 바른 향유처럼 아침 공기의 산들거림을 느꼈다.”

고전을 잘 읽고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 자체로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아닌 이상, 고전을 한번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은 작품 해설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책은 번역자 장영태 교수의 작품 해설을 담고 있어, <휘페리온>을 이해하는데, 많은 유익을 준다.

사실 필자는 평범한 독자로써, <휘페리온>을 해설의 도움 없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작품 해설과 함께 책을 접하게 되니, 횔덜린과 휘페리온이 바로 내 곁에서 숨 쉬는 듯 가깝게 다가왔다. 

 

<상상서평단>-파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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