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이의 딸
마리 니미에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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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다섯 살 때 사망한 아버지. 다섯 살, 세상이 뭔지도 모를 나이다. 이제 겨우 대화를 하고, 글을 띄엄띄엄 읽을 만한 어린 아이.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 이후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면 부재의 고통을 잊기에는 충분한 시간일 텐데... 아버지가 사망한 지 40여년이 흐른 후에도 작가는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 때문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보낸다. 그것이 책을 읽다보면 느껴지는, 너무도 예민한 작가의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상처가 마음 깊은 곳까지 박혀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한번쯤 울며 소리를 질렀을 것 같다. 아버지로서의 정을 보여준 적도 없고, 엄마가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끔 만들고, 가족들에게 상처밖에 남기지 않은 아버지면서, 왜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아버지를 깊이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글에서는 그런 원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간혹 절필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보이기도 한다.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아버지, 소리 내어 말을 하지 못했기에 아픔이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더 큰 상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조차 숨이 막힐 만큼 힘들었다는 작가가, 이제까지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하려 했던 주제를 힘들게 꺼내놓았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글을 쓰면서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생존을 위해’, 아버지의 망령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고 글을 완성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젠 그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히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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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1 - 태양의 공주
앙투안 B. 다니엘 지음, 진인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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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잉카 소녀의 눈빛에 어쩌면 매혹당했을까.

다 늙으막에 페루의 안데스 산지로 의료봉사를 떠난 선배가 떠올라서였을까.
잉카-안데스 음악에 푹 쩔어 지내던, 안데스 고원지대에 대해 갖는 나만의 어떤 환상의 귀착점일까.
 
어쨌든 덜컥, 세 권을 한꺼번에 주문해놓고
왜 하필 잉카인 게냐, -_-^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혼자 갸우뚱한다.
미지의 낯선 세계를 향한 동경? 이 또한 오리엔탈리즘의 오류겠지만.
세계의 오지 구석구석, 투어 관광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곳이 없는 데에서 오는 삐뚤어짐의 심리, 뭐 그런 영향이 클 게다.
 
 
강가에서 황금의 모래알로 목욕을 했다는 잉카의 처녀들.
신라왕국에선 원숭이도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고 기록한 서구의 어느 탐험가처럼,
무슨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사는 것도 아닐 테고,
그만큼 황금에 대한 정복자들의 탐욕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다.
잉카인들이 수많은 태양신전들 벽체에 황금을 입힐 때 실은, 합금을 이용했다고 하니.
 
우리가 황금에만 앵글을 맞춰 잉카 제국의 문명을 바라보는 것 또한,
에스파냐 약탈자들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유의미성을 갖는다.
태양신과 마추픽추, 황금의 제국, 180명의 오합지졸 스페인군에 남미의 대제국이 무너진 황당한 오역의 역사로 요약되는, 잉카 제국에 대한 그간의 오독을, 우리의 시선을 교정해줄 수 있겠다.
 
스포일러를 저어하며,
그래도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쯤은 밝혀도 좋으리.
푸른 눈의 신비 소녀 아나마야보다 13대 잉카 왕 아타우알파에게 훨씬 더 끌렸다.
더이상 바위 위로 뛰어오르지 못하는 퓨마처럼 그의 처연한 죽음 앞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운명에 맞부딪치는 자, 그를 왕이라고 했던가.
 
인간의 운명과 비극의 역사, 그 기저에 무의식의 강처럼 흘러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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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에게 키스하지 마! - 추한 개구리를 멋진 왕자로 오인하는 눈먼 그녀들을 위한 신랄한 지침서
마릴린 앤더슨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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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의 멋진 왕자님이 짠~ 하고 나타날 거야!"
얼마나 낭만적인가. 세상 모든 소녀들처럼 나도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자랐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동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히 멋진 왕자님을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를...

혹 <개구리 왕자> 동화를 기억하는가?
사악한 마녀의 주술에 걸린 개구리 왕자가 공주의 키스를 받고 다시 왕자의 모습으로 변해서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이야기를 지어낸 작자는 남자임이 틀림없고,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못생긴 얼간이였을 것이라는 거다. 흠, 그럴듯한 논리다.

이 책은 이 개구리 왕자 동화를 남녀관계의 은유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세상에는 자기에게 키스해줄, 즉 자기와 함께 자줄 여자를 꼬시기 위해 오늘도 맹렬히 작업 중인 수많은 개구리 남자들이 있다. 유부남 개구리, 대부 개구리, 마초 개구리, 골초 개구리, 도박사 개구리, 마마 개구리, 몸짱 개구리 등등. 남자의 속물적 특성을 콕콕 잘도 집어낸다.

마릴린 앤더슨의 거침없는 입담은 후련하다 못해 포복절도할 만큼 유쾌하기조차 하다.
남자가 침을 질질 흘리거나 혹은 퉤퉤 뱉는다면 그는 키스 빵점인 개구리다, 차버려라! 유부남 개구리는 결코 자기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이실직고하는 법이 없다, 언능 차버려라! 당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겠다며 사고 싶은 게 있으며 뭐든 고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가게는 '천냥하우스'다. 윽! 인색한 개구리는 냅다 차버려라!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동물인 남자에 대한 신랄하고 재미있는 통찰이 가득하다.
여자라면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남자라면 자신의 애처롭고 비참한 자화상을 바라보며
외마디 비명을 지를 것이다."

신현림 시인이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는(절대 상상이 안 가지만...) 이 책은,
장난스럽고 냉소적인 앤더슨의 입심에 킥킥대고 한참을 웃다가도 내 남친과 내 여친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의외로 따스한 애정을 한가득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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