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희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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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람들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는 듯하다. 뭐, 힘들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겠냐마는, 현대를 살고 있는 나는 감히 포식자에 잡아 먹히던 시절, 마녀사냥이 있던 시절,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절, 세계 전쟁으로 수천만 명이 죽던 시절보다 지금이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시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믿을 구석이 없다.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믿고 싶다, 붙들고 싶다. 하지만 그럴 대상이 없다. 인간은 무언가를 붙들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 없는 존재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보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두터운 공허 속에 있다.

그래서 나도 탱크를 원했나 보다.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김희재 작가의 장편소설 <탱크>를 읽으며 나도 바랐다. 탱크와 같은 공간이 있기를. 있다면 나도 찾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나일 수 있는 공간. 그 어떤 방해도 없는 공간. 그러므로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 나의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그저 떠 있을 수 있는 공간.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공간. 내가 그저 나일 수 있는 공간. 나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어두움 바람 마저 꺼내어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둡둡은 이 공간에 매달렸을 것이다. 오롯이 그일 수 있고, 바랄 수 있으니.

얼핏 종교가 없는 종교 소설처럼 보일 수 있는 <탱크>는 실은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반부를 읽으면서는 계속해서 ‘믿음, 존재, 허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하지만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허무’라는 키워드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핑크빛 미래를 그리는 희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진다는 희망. “모든 미래는 빠짐없이 과거가 된다(267쪽)”는 희망. 살아간다는 희망. 그리고 어떤 식이든, 바람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 그래서 가장 뭉클했다. 강규산이 퍼레이드를 따라 걷는 장면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실체가 있든 없든, 탱크와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말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 흡입력 있게 순식간에 독자를 사로잡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간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던 ‘탱크’와 같은 공간, 내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공간을 바라게 되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힘이 있는지 얼마나 지쳤는지, 지금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쉼이 필요할지 살피게 된다.

한겨레출판에서 진행하는 <탱크> 리뷰단, '탱크단' 이벤트에 뽑혀서 읽게 되었던 책. 이렇게 술술 읽히면서도 유려한 문장을 쓰는 작가님의 능력이 부러웠다. 오랜만에 생각하면서 느끼게 하는 독서였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런 뿌리 없는, 종교도 아니고 작정하고 사람을 홀리는 사이비도 아니고 딱히 자기계발도 아닌, 그야말로 뭣도 아닌 것에 계속 현혹되어 있을 리가 없다. 말이 좋아 자율적 기도 시스템이지, 종교에 자율이 어딨단 말인가. 학습 중에서도 효과가 가장 떨어지는 것이 자율 학습 아니던가. - P50

사람들이 그 공간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텅 빈 공간에서 기도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죠. - P65

컴컴한 공간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과 뿌리 없는 스스로의 상태가 끝도 없이 마음을 괴롭히곤 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울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흐느낌 정도로 시작한 울음은 어느새 오열이 된다. 자의로 울음을 멈추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나중에는 무엇 때문에 울기 시작했는지 잊을 정도로 우는 데 집중하게 된다. 다행히 우는 것도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스트레스 해소와 마음 정리는 기본이고 덤으로 왠지 홀가분한 기분, 정말 힘든 일은 다 지나갔다는 느낌이 바로 그 효과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탱크 안에 있는 사람도 나름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 P83

특별하다고 생각한 관계는 사실 둡둡이 ‘정상’적인 범주 내에 있을 때만 가능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둡둡을 끝없이 괴롭혔다. - P91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그렇게 믿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떤 믿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반드시 붙들어야 하는 문제였다. - P106

그런 생각을 하며 사흘 밤을 새운 끝에 양우는 단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결국 떠난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들을 통해서 기억되고 회자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와 어떤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아니, 어쩌면 삶과 죽음을 통틀어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그뿐이다. - P162

언젠가 너는 물었지. 정확히 뭘 믿는 거냐고. 그때 나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는다, 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네가 또 물었어. 그러면 탱크는 왜 필요한 거냐고. 나는 기도를 올릴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지. 그러니까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니. 너는 그게 나만의 생각이라고 했지.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믿는 게 아니라 탱크를 믿는다고.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잘못된 숭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야. - P181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어떤 미래는 오고 그 미래의 모양은 매우 익숙해서 주인공은 그것이 누군가의 꿈이었고 바깥이었던 것을 알아차린다. - P195

"늘 그랬듯 모든 미래는 빠짐없이 과거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쓴다." - P204

이제 손부경은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탱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탱크가 특별해진 것은 탱크가 꼭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탱크는 없어져야 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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