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의 사람들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는 듯하다. 뭐, 힘들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겠냐마는, 현대를 살고 있는 나는 감히 포식자에 잡아 먹히던 시절, 마녀사냥이 있던 시절,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절, 세계 전쟁으로 수천만 명이 죽던 시절보다 지금이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시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믿을 구석이 없다.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믿고 싶다, 붙들고 싶다. 하지만 그럴 대상이 없다. 인간은 무언가를 붙들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 없는 존재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보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두터운 공허 속에 있다.
그래서 나도 탱크를 원했나 보다.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김희재 작가의 장편소설 <탱크>를 읽으며 나도 바랐다. 탱크와 같은 공간이 있기를. 있다면 나도 찾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나일 수 있는 공간. 그 어떤 방해도 없는 공간. 그러므로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 나의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그저 떠 있을 수 있는 공간.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공간. 내가 그저 나일 수 있는 공간. 나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어두움 바람 마저 꺼내어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둡둡은 이 공간에 매달렸을 것이다. 오롯이 그일 수 있고, 바랄 수 있으니.
얼핏 종교가 없는 종교 소설처럼 보일 수 있는 <탱크>는 실은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반부를 읽으면서는 계속해서 ‘믿음, 존재, 허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하지만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허무’라는 키워드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핑크빛 미래를 그리는 희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진다는 희망. “모든 미래는 빠짐없이 과거가 된다(267쪽)”는 희망. 살아간다는 희망. 그리고 어떤 식이든, 바람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 그래서 가장 뭉클했다. 강규산이 퍼레이드를 따라 걷는 장면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실체가 있든 없든, 탱크와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말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 흡입력 있게 순식간에 독자를 사로잡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간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던 ‘탱크’와 같은 공간, 내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공간을 바라게 되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힘이 있는지 얼마나 지쳤는지, 지금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쉼이 필요할지 살피게 된다.
한겨레출판에서 진행하는 <탱크> 리뷰단, '탱크단' 이벤트에 뽑혀서 읽게 되었던 책. 이렇게 술술 읽히면서도 유려한 문장을 쓰는 작가님의 능력이 부러웠다. 오랜만에 생각하면서 느끼게 하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