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 명이 다리 아래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다리를 먼저 건너고 나서 다리가 추락하기 직전에 이마를 닦고 있었던 주니퍼 수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러한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만약 이 우주에 미리 예정된 어떤 계획이 있다면, 만약 인간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느닷없이 절명한 저 다섯 사람들에게도 밝혀져야 하는 어떤 숨겨진 신비로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나 죽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섭리에 의해 태어나 정해진 섭리에 따라 죽게 되는 것일까? 주니퍼 수사는 그 순간 허공으로 떨어지고 있는 다섯 사람의 비밀스러운 삶을 조사해보기로 하고, 그들의 추락 이유를 밝혀 내기로 결심한다. 6년동안 리마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바삐 움직였던 주니퍼 수사의 노력의 결과 엄청나게 두꺼운 책으로 나오게 되지만, 이 책은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워진다. 그러나 은밀히 돌아다니는 복사본이 있었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산마르코대학교의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주니퍼 수사는 그들 다섯 명의 삶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서술했지만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니퍼 수사는 마리아 부인의 삶의 핵심적인 욕망도 피오 아저씨의 핵심적인 욕망도, 에스테반의 핵심적인 욕망도 알지 못했다.

 

일단 간략히나마 그 다섯명의 인물들을 살펴보도록 해야겠다. 못생기고 말을 더듬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은 미인으로 태어난 딸 클라라를 강박적으로 사랑했다. 클라라는 자신에 대한 엄마의 집착을 견디지 못하고 결혼을 빙자하여 멀리 스페인으로 도망친다. 결국 후작부인은 오로지 편지를 통해서만 딸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작 부인은 수녀원에서 자란 고아 페피타를 통해 편지란 용기없는 사람들의 교류 수단이며 자기가 딸에게 보낸 편지 또한 자신의 위안과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글쓰기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페피타 역시 자기를 키워준 수녀원장에게 자신의 외로움과 불행을 편지로 대신하려다 불태워버리는데 용기있게 직접 대면하면서 말하거나 자신이 변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돌아오던 길에 두 사람은 다리가 붕괴되어 죽게 된다.

 

또 다른 수녀원에서 태어난 에스테반이라는 사내는 마누엘과 쌍둥이로 태어난 몸이었다. 에스테반은 페리콜이라는 여배우를 사랑하게 되었고, 마누엘 역시 페리콜을 사랑했다. 페리콜은 글을 잘썼던 마누엘을 자신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는데 이용할 뿐, 실제로는 돈 안드레스라는 총독과 관계를 맺고 총독의 아이를 낳아 신분상승을 시도한다. 실의에 빠진 마누엘이 쇠붙이에 무릎을 다쳐 상처가 덧나게 되고, 자꾸 정신을 잃으면서 동생인 에스테반을 원망하는 말을 지껄이게 된다. 그리고 죽는다. 에스테반은 마누엘의 죽음에 심한 비탄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게 되지만 항해를 제안하는 선장 알바라도를 만나 마음을 다시 잡기로 한다. 그리고 항해를 떠나기 전 자신을 키워준 수녀원장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리를 건너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다리에서 죽은 나머지 두 사람은 페리콜을 발굴해 배우로 성공시킨 피오 아저씨와 페리콜의 아들 돈 하이메이다. 총독의 정부가 된 페리콜은 배우에 뜻이 없어져 피오 아저씨를 멀리하게 되고, 천연두로 얼굴이 얽은 다음부터는 더욱이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자 피오 아저씨는 페리콜의 아들 돈 하이메를 자기가 교육시켜 성공시키겠다고 페리콜을 졸라 둘이서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다리를 건너던 중에 죽게 된다.

 

이들은 언뜻 다른듯하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수녀원이라는 곳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아였던 페피타가 그러했고, 에스테반 역시 그러했다. 또한 페리콜은 에스테반과 피오 아저씨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후작부인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피오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언급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목의 '다리'가 의미하는 것처럼 삶이라는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보이고자하는 장치라고 여겨진다.

 

사실, 쉬운듯하면서도 쉽지 않은 다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지만 가장 현재에 가까운 시점의 사고를 언급하여 이야기를 더 해보고자 한다. 얼마전에 인천대교에서 공항리무진 버스가 전복하여 15명의 사람이 이승과의 이별을 고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인터넷과 뉴스에서 연일 보도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왜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은 잘들 사는데, 착한 사람들은 이렇게 빨리 죽어야 하나요?" 보통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말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사주 팔자에 입각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들의 명이 거기까지였다"고. 신은 정말 어떤 사람의 명을 45세까지라고 정했을 때 정말 어떤 날짜에 어떤 사건을 만들어서 그 사람을 데려간단 말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확실하게 단정지을 수 없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이 건너다 죽었던 그 다리에 있던 사람들이 특별한 인물이 아닌 그저 평범한 인물들이었던 것처럼 우리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제 나와 환하게 웃으면서 함께 했던 사람이 내일 갑자기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죽도록 미워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 세상을 등지게 되면서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내 자신이 따스한 이 세상의 아름다운 공기를 어느 날 갑자기 마시지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살아야 하는 것이고,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감싸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수녀원장이 하는 말이 그런 의미에서 참 인상깊다. "우리는 곧 죽게 될 것이고, 그 다섯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을 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사랑을 하고 싶은 모든 충동은 그런 충동을 만들어낸 사랑에게 돌아간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유일한 생존자이지 유일한 의미인 사랑!" 그렇다. 결국 작가는 수녀의 입을 빌어 한 이 말을 통해서 온 마음을 다해 베푸는 사랑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대목을 읽자니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이 죽기 직전에 꼬제뜨에게 했던 말을 떠오르게 했다. "하느님께선 높은 곳에서 우리들을 모두 보고 계신다. 그리고 커다란 별들 사이에서 자신이 하시는 일을 알고 계신다. 자, 너희들 나는 이제 가련다. 언제까지나 서로 깊이 사랑하거라. 서로 사랑한다는 것, 이 세상에 그 외의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故장영희 교수가 그토록 번역하고 싶어했던 바로 그 책! 문장가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20세기 최고의 영미 소설이자 1928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이 책은 숀턴 와일더라는 작가가 격동의 1920년대 말에 아직 20대를 채 벗어나지도 않은 시기에 썼던 책이다. 이보다 더 늦게 출간된 책들도 고전문학 반열에 올라있는데 상당히 늦게 알려진 듯한 느낌이 든다. 많은 이들이 읽고 또 색다른 의미를 캐치하면서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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