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파 몽상가들의 꿈

  
민규동(영화감독) 

 

 안녕, 커피진주.

   그토록 바라던 봄이 찾아왔건만, 암울한 현실에 빼앗긴 마음의 들판에는 봄이 안 오는 법인지, 우울함이 가시질 않네. 지구촌의 풍경은 진화의 여러 국면 중 여전히 겨울로 느껴지거든.

   요즘, 영국의 그래피티 작가인 뱅크시의 팬 사이트에서는 한국 사회의 기이한 어느 현상에 대해 마구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어. 얼마 전, 애국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일치의 흔들림도 없는 한 검사가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렸다가 잡힌 사람에게 ‘우리 국민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의 꿈을 빼앗고 강탈한 죄’로 징역 10개월을 구형했거든. 낙서의 죄에 그 정도 형벌이 합당하다면, 나머지 무수한 파렴치한 죄들에겐 대체 어느 정도의 형벌을 줘야 하는 걸까. 그런 글로벌한 개그콘서트를 연출함으로써 국제적 망신과 함께 국격에 큰 허물을 입힌 그 검사에게는 어떤 형벌이 적당한 걸까. 그런데 검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이 예술가의 최후진술이 뭔지 알아? “…전 이제 아무것도 안 하겠습니다.” 이 냉소와 두려움과 저항과 전향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말 속에는 공포를 통해 전체주의의 천국을 꿈꾸는 한 국가와 당신들의 천국과는 다른 신세계를 꿈꾼다고 대항하는 한 예술가의 집요한 전투가 엿보였어. 이 꿈의 차이는 인류가 사회를 형성한 이후 벌여온 끝없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전형적인 양상이야. 그 예술가가 변함없이 건재하길 기원하지만, 그 마지막 씁쓸한 탄식 속엔, 올곧게 품은 개인의 이상 따윈 안중에 없는 무서운 현실의 패악이 뼈저리게 느껴져. 맞아.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니! 허무의 극치로 우리를 몰아대는 정치인들의 배신과 비열한 폭력의 퍼포먼스들. 수십억, 수백억, 끝없는 돈의 비리들. 어버이날 목매 자살하는 부모들. 두 아이와 함께 베란다 너머로, 다리 너머로, 지하철 철로로 뛰어드는 가난한 엄마들. 부모를 패고, 불사르고, 파묻는 자식들. 입시에 짓눌린 학생들의 자살. 암 발생률, 자살률, 교통사고율, 성폭행률, …율,…율, 불행지수의 세계 정상을 달리는 이 암울한 통계의 나라. 이 잿빛 세상을 뭐라 부를 수 있을까, 이렇듯 영화를 압도하는 현실, 그야말로 천국의 대극점에 존재하는 세계, 지옥이 아닐까?

   너도 알겠지만, 최근에 묘한 대비가 되는 판결이 있었어.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죽여 물탱크에 숨겨놨던 잔혹한 범죄자에게 무기징역이라는 합법적 판단이 내려졌고, 저 멀리 파키스탄에선 테러리스트의 수장이라고 불리던 은둔자가 실시간 동영상 감상의 전쟁 게임 속에 초법적으로 처형됐어. 어떤 게 맞는 판결일까. 왜 뻔한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오답일 수도 있는 주관적인 징벌이 변함없이 반복되는 걸까. 인간에게 법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최선의 행복이고, 어떤 게 다수를 위한 공리일까. 과연 인간을 위한 절대적인 시스템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오랜만에 명상에 잠겨 질문해 봤어. 아예 이런 고민 자체가 불필요한 세상은 없을까? 아, 그런 세상 있다면, 그날이 오면… 그렇게 혁명을 꿈꾸며 낭만파 몽상가로 살았던 20대 시절의 꿈을 되짚어 봤어. 그래, 그땐 우리, 정말 아름다운 꿈을 꾸었었는데.

   플라톤이 2500년 전에 <국가론>를 통해 훌륭한 철학자가 지배하는 새 세상의 비전을 꿈꿨듯이, 16세기 영국인 토머스 모어도 어느 날 명상에 잠겨 나처럼 질문했을 거야. 이 지옥 같은 현실의 저 반대 대극점에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하고 말이야.

   모어는 당시 매일 좀도둑들을 수십 명씩 처형하는 상황을 비판했어. 부자들은 도둑질을 없애려면 도둑들을 죄다 잡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모어는 굶어 죽으나 도둑질하다 잡혀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더더욱 도둑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되묻고, 왜 보통 사람들이 도둑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따졌어. 인구의 상위 1%가 전 국토의 99%를 소유하는 빈부격차의 현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어. 모어는 소수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는 현실이 있는 한, 도둑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어. 그러면서 사유재산이 없는 세계를 상상한 거지. 누구나 똑같이 일하고, 필요한 물건은 언제나 공동창고에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는 곳. 도둑질도 사기도 살인도 일어날 턱이 없는 곳 말이야.

   그렇게 모어는 불멸의 아이콘을 만들어냈어. 이른바 “유토피아”를 찾아낸 거야. 그가 꿈꿔본 세상은 이런 곳이야.

   평일 하루에 총 6시간을 일해. 오전에 3시간, 점심 먹고 2시간 휴식, 오후에 3시간 더 일하고 저녁 먹고, 8시에 잠들고 8시간 잠자. 나머지 시간은 자유로운 여가 활동 시간이야. 하지만, 전국민이 일하기 때문에 생필품은 늘 넘쳐 부족한 게 없어. 그래서 재산을 축적하려 애쓰지 않아. 살아있는 어떤 생명체든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결코 탐욕을 부리지 않는 법이니까. 병원은 늘 열려 있고 탁아소가 완벽해. 빈손으로도 어디든 여행할 수 있어. 모든 게 평등하게 분배돼서 부자와 거지가 없어. 인생을 즐기는 일, 즉, 쾌락이 최고의 목표이고, 거꾸로 건강한 것 자체가 최고의 쾌락인 곳이야. 안락사도 허용되고 평생교육도 보장돼. 부당하게 취한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또 값싸게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온갖 속임수와 편법을 생각해내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아. 원하는 건 뭐든 사람들과 교환할 수 있으니까, 열등감과 박탈감이 없고, 결국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호화로운 옷차림도 없고, 다들 똑같은 옷을 입는 것에 불만이 없어.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민 장식들은 노예나 범죄자들에게 채워지는 수치스러운 상징이니까. 재산이나 지위에 매달리지 않고 욕망의 수레바퀴에 깔려 허덕이지 않아. 이름하여 돈이 없는 곳이야. 명랑함, 마음의 평화, 근심 걱정으로부터의 자유보다 더 큰 재산은 없다는 확신에 찬 곳. 돈이 사라졌기 때문에, 일상적인 징벌로는 막을 수 없는 온갖 유형의 범죄가 사라진 곳. 두려움, 긴장감, 과도한 업무, 불면의 밤에 대해서도 작별 인사를 한 곳.

   그래, 이곳이 바로 유토피아야. 그리스어의 ‘없는(ou-)’이랑 ‘장소(toppos)’를 결합해서 만든 말. 곧, ‘그 어디에도 없는 곳’이니까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뜻이고,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가장 고귀한 꿈이 실현돼서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게 제거되고, 욕망과 그 성취 사이에 그 어떤 긴장과 대립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곳이란 뜻이야.

   사실 인류는 늘 현실 너머의 피안을 꿈꿔왔어. 꿀과 포도주가 흐르고 성과 노동에서 해방된 무한 쾌락의 환락 향인 코카인부터, 거기에 도덕적 절제가 첨가된 아르카디아, 중국의 3황5제 시대 같은 목가적인 자연 상태의 황금시대, 에덴동산 같은 지상낙원,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한 예수 재림 후 지상에서 펼쳐지는 천년왕국 밀레니엄, 도교의 무릉도원, 불교의 극락정토, 네버랜드, 환타지아, 신세계, 파라다이스, 율도국, 과학기술로 세운 기독교 나라인 베이컨의 <새 아틀란티스>,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로우의 <월든>의 모험까지. 모어는 우리가 끊임없이 욕망해온 바람직한 사회상을 ‘유토피아’라는 멋진 단어 하나로 통합해버리는 솜씨를 발휘했는데, 베이컨의 주장처럼 어떻게 하면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는 얘기하지 못했어. 사실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을’보다 ‘어떻게’이잖아?

   진보에 대한 모어의 이 낙관주의는 ‘공산주의’라는 인류 최고의 영감을 후대에 진하게 남겼고, ‘어떻게’를 깊이 사유하던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을 실천에 옮겨봤어. ‘코뮌’이라는 공동체 건설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었지만,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아저씨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고, 레닌이나 모택동, 카스트로는 목숨을 걸고 인류 최초의 유토피아를 향한 집단 모험극에 도전했었어. 이상 실현을 향한 그 프로메테우스적 모험의 결과가 유토피아에 가까우냐면, 거기엔 누구도 동의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나라 곳곳이 어떤 체제를 취했든, 우리가 앞으로 진전 중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 왜냐면, 현실 속에 남아 있는 부조리와 불평등은 언제든 새로운 메시아적 열망을 부활시킬 거니까.  

 마르크스의 생각처럼 공평한 조건에 인간을 놓아두면 사리분별에 맞게 살아갈 거라는 순박한 전제는 실패했어. 그렇다면, 인간의 자율성이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될까? 유토피아가 정녕 몽상에 불과하단 것일까. 그래서, 혹시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 해버리면 유토피아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더 큰 꿈을 꾼 사람들도 있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제5막에서 미란다가 외쳐.

   
  아아,얼마나 신기한가! 여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군요! 오,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  
   

 
이 말에 영감을 받은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25세기를 그려냈어. 완벽하게 자발적인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에선 실험실에서 배양되고, 개성을 말살하는 ‘소마’라는 반인격 약을 먹고 사회에 효율적으로 봉사하는 인간을 그려. 호화사치품이 넘쳐나고 부족한 물질이 없는데다가, 각종 오락과 무제한적 섹스를 누릴 수 있고, 조금이라도 슬퍼 보이면 바로 다양한 기쁨이 제공돼. 하지만, 누군가 또 질문해. 아픔과 고독뿐이라 할지라도, 정신적 고통 역시 나의 일부니까, 거기서 벗어나는 건 행복을 위한 거지만, 동시에 나를 버리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야. 빅 브라더의 대답은 무서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만 찾고 있군그래. 늙고 추악해지고 성불구가 되는 권리는 말할 것도 없이, 매독과 암에 걸리는 권리를, 내일은 어떻게 될까 하고 끊임없이 걱정하는 권리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으로 괴로움을 받는 권리를.  
   

    그는 오랜 침묵 후에 이렇게 대답해.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저는 불행해지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체의 완벽한 행복과 안정을 위해 개별성을 포기하는 삶. 그것은 또 다른 불행의 결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야. 오웰도 <1984>에서 유토피아로부터 한 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바로 도달하게 되는 디스토피아의 단면들을 예언했었잖아. 나치, 일제, 파시스트들 등,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그 사회 자체를 최고의 지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빅 브라더들의 지나친 의지의 결과들. 그것은 현대인이 더 잘살게 되었는데, 왜 더 불행해졌는지. 그 진보의 역설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느냐고?

   
   문학은 나의 유토피아다.
                                                                            -헬렌 켈러-
 
   

 
난 이렇게 단순하게 대답하지 못하겠어. 역사를 들여다보면, 계급의 모순은 영원할 것이고, 인간의 자율성은 신뢰할만하지 못하고, 완벽한 시스템은 비인간적이다는 건데, 그렇다면, 인류에게 유토피아의 가능성이 없다는 말인지도 모르잖아. 물론 너도 알듯이 나의 20대는 이렇게 비관적이진 않았어. 그러니, 커피진주, 나의 오랜 유토피아여, 제발 날 달래줘. 무정부의자이며 무종교주의자로서 평화와 이상향을 꿈꿨던 존 레넌의 노래가 허망한 게 아니라고. 진정…….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천국도 없고
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오직 위에 하늘만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노력해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상해 봐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국가라는 구분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렵지 않아요
죽이지도 않고, 죽을 일도 없고,
종교도 없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 보세요.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날 몽상가라고 부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소유물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요
당신이 상상할 수 있을까요
탐욕을 부릴 필요도 없고
굶주릴 필요도 없고, 인류애가 넘쳐나요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을 상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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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 유경희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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