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별. 난 어쩐지 머리가 좀 아파. 나 감기 걸릴 것 같니? 그런데 너 눈 구경은 했니? 난 취재 다녀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 이정표도 가로등도 없는 공사 중인 구간에서 눈을 만났어. 길이 어디서 뚝 끊어질지 알 수가 없었어. 평소라면 눈이다! 좋아했을 텐데 무서우니까 눈이 꼭 변기통의 화장지 빨려 들어가듯 내리는구나! 이렇게 생각될 정도로 심통이 났지. 어둠과 펄펄 날리며 덤벼드는 눈 속의 파헤쳐진 길을 최대한 느리게 가다 보니까 마침내 환한 불빛이 나타났어. 너무 반가워서 간판을 봤어. 글씨가 아주 선명하게 써 있었어. 장. 례. 식. 장!
생텍쥐페리와 동료 프레보는 사하라 추막에서 추락해. 시속 200킬로미터의 속도로 땅을 들이받지. 살아났다는 게 불가사의할 정도의 추락이었어. 아!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프레보가 울어. 생텍쥐페리는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해. “끝장난 거면 별수 없지, 뭐.” 그러자 프레보가 대답해. “내가 우는 게 나 때문인 줄 아나…….” 생텍쥐페리는 그 말을 이해해. 그는 아내의 눈을, 동료의 눈을 생각해. “나를 기다리는 눈들이 보일 때마다 나는 불에 덴 듯 고통스럽다.”
마실 물 한 방울 없이 이슬만이 희망인 사막 한가운데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조난자가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조난자라고 생각해. 이 관점은 생텍쥐페리가 구조되는 그 순간까지 일관되게 유지돼. 조난자는 내가 아니다. 조난자는 우리의 실수로, 우리의 부재로, 우리의 침묵으로 위협받으며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외쳐. “침묵의 순간에 일 초씩 흐를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조금만 참아다오! 우리가 간다! 우리가 구해 주겠다!” 그리고 생텍쥐페리는 지난주에 말한 것처럼 다시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 “애수는 사회적인 관계 안에서만 발생한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이들을 안심시켜 주지 못하는 우리의 무력함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책임을 지기 위해, 돌아가기 위해 생텍쥐페리는 피로와 갈증 속에서도 길을 나서. 그리고 인간의 발자국은 발견하지 못하지만 사막여우의 굴을 발견해. “내 작은 여우야. 나는 지금 절망적이란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절망적인데도 네가 어떤 성격일지 관심이 생기니 말이야.” 이 장면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이지만 지금은 건너뛸게. 생텍쥐페리는 추락 후 사흘이 지나자 신기루를 보고 탈수 증세로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해. 곧 죽을 거라고 느껴지는 순간 다시 이런 생각을 해. “그대들의 고통을 제외하면 나는 아무것도 후회스럽지 않아……. 만일 내가 돌아갈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려고 무진 애를 써.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려 한 것은 아니야. 그럼 누구에게일까?
“나와 동류인 모든 인간들에게.”
그리고 마침내 발자국 하나를 발견해. 모래 위에 찍힌 기적과도 같은 인간의 발자국 하나를. 또 환영일까? 이번엔 아니었어. 정말로 저기 언덕 위에 베두인족 한명이 낙타를 가고 있었어. 하지만 생텍쥐페리와 프레보의 성대는 말 라버렸어.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어. 베두인족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어. 잔인한 악마가 그들에게 베두인족이자 인간인 그를 보여 주고는 소리 없이 다시 데려가려고 하고 있었어. 베두인족은 아주 천천히 멀어져 가지만 생텍쥐페리는 달릴 수도 없었어. 또 다른 아랍인의 실루엣이 보였어. 둘은 팔을 마구 휘저어. 그 팔짓은 세계 전체를, 허공 전부를 휘저을 수 있어야 했어.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그래서 그 베두인족은 여전히 오른쪽만 바라보고 있어. 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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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천천히 그가 4분의 1쯤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그는 이미 우리 몸에서 갈증도 죽음도 신기루도 지우고 있을 것이다. 그가 4분의 1쯤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벌 써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는 단지 상반신만을 움직임으로써, 단지 시선을 옮기는 것만으로 생명을 창조한다. 그가 나에게는 신처럼 보인다. 이것은 기적이다. 그는 바다 위를 걷는 신처럼 모래 위를 걸어 우리에게로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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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지난주에 말한 상반신과 고개를 돌리는 세계 문학사상 최고의 명장면이야. 난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한숨을 쉴 수밖에 없어. 안도감 때문일까? 뭐라고 표현하든 누군가 나를 본다는 것의 의미의 거대함에 대해서 일단은 한숨을 쉬고 볼 수밖에 없어. 누군가 나를 본다는 것은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기적 아닐까? 보는 사람과 보길 원하는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시선의 왕복 운동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뭐 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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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베두인족이여! 우리를 구해 준 당신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의 구세주였음에도 당신은 내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영영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인간이 다. 그래서 나에게는 당신이 모든 사람의 얼굴과 동시에 나타난다. 당신은 단 한 번도 우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없는데도 진즉부터 우리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형제다. 그러니 때가 되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모든 사람들 속에서 알아볼 것이다. 당신은 고귀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내 모든 친구들, 내 모든 적들이 당신을 통해 나에게로 걸어온다. 그러니 이제 세상에 적은 단 한 명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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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 바로 이 부분 말이야. 나라면 이렇게 인사했을지도 몰라.
“(돈이 있을 경우) 베두인족이여. 감사합니다. 언젠가 당신의 댁을 방문해 낙타를 몇 마리 선물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비행기 내 옆자리에 특별히 태워드리겠습니다.”
“(돈이 없을 경우) 베두인족이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마룻바닥을 일주일 동안 닦아드리고 낙타를 일주일 동안 목욕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생텍쥐페리는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 대신 그는 “세상 모든 인간의 얼굴을 통해 당신의 얼굴이 나타납니다.”라고 했어. 이젠 생텍쥐페리가 이 글을 쓴 이유가 명백해졌어. 그러니까 생텍쥐페리는 이 글을 몇몇 사람의 빼어난 용기와 고귀함을 칭찬하려고, 혹은 비행사로서의 특이한 경험을 감동적으로 전해 주려고 쓴 것이 아닌 거야.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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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늘에서의 밤, 사막에서의 밤, 이런 것들은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드문 기회다. 하지만 그 상황이 다가오면 다 똑같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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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이 되면 너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란 이 말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봐. 나도 누군가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잖아. 나도 미처 파악 못 하고 지금은 그저 잠만 자고 있지만 때만 만나면 훨씬 더 고결하고 위대하고 인간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이 부분은 내겐 예수가 메마르고 지친, 가난한 군중을 앞에 두고 한 산상수훈만큼의 충격을 내게 줘. 그래서 스피노자가 예수를 두고 한 말이 지금 이 순간 생각나.
“그는 법에 예속된 제자들을 법으로부터 해방한 대신 그들이 마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영원히 예속토록 만들었다.”
난 이것이 생텍쥐페리가 말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해. 끝없는 선택의 순간마다, 책임을 져야하는 순간마다 다른 무엇이 아닌 마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예속되어 선택하는 것 말이야. 이런 예속이라면 예속이 아니라 인간 해방이고 사랑일 거야. 이것이 내가 생텍쥐페리에게 배운 하늘에서 본 시선이야.
지구 밖 어딘가에는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으로 가득 찬 별이 있다고 들었어. 생텍쥐페리도 그 소문을 혹시 들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이 지구를 바로 그런 방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의 용기, 그의 책임감, 그의 인간과 지구에 대한 신뢰, 그의 행동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인간의 대지』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프랑스에서 해고되어 폴란드로 돌아가는 노동자 무리를 만나. 그들 중에는 완전히 지쳐빠져 잠든 부부 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끼어 잠들어 있는 것은 황금 사과처럼 예쁜 어린아이였어. 생텍쥐페리는 그것을 절대 놓치지 않아. 그리고 우리 인간들이 비참과 나태함과 무관심에 절대로 안주하지 않기를, 저 황금 사과 같은 아기를 구해 내기를 , 그래서 우리 모두 저마다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 내길 바라. 그는 지구가 황량한 곳이고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러니 동쪽별, 나도 너를 상반신을 돌려 고개를 돌려 본다. 본다. 그리고 그날 밤의 장례식장 불빛 말이야. 그 불빛이 한번 나타나자 그다음부터는 많은 빛들이 차례로 나타났단다. 난 무사히 돌아와서 이렇게 글을 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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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 / 윌리엄 리스 해설 / 허희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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