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지성사
엔초 트라베르소 지음,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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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라는 단어를 나는 이전과는 다른 확연한 변화로 이해한다. 역사를 보면 혁명이라고 칭하는 것들이 그러하듯 -농업혁명, 산업혁명 같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들로 인하여 삶의 양태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볼셰비키 혁명은 뭔가 불편함을 가져온다. 아마도 내가 대척점에 있는 진영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의 말살, 핍박, 착취 등의 이미지가 공산사회주의에는 덧씌워져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편견이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 <혁명의 지성사>가 알려주었다. 전통을 부정하고 각 개인의 정체성을 지우고 오직 하나의 역할과 사념체로 기능하게 한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처음 그들이 내세웠던 유토피아적 상상을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점이 그러했다. 저자는 다양한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이러한 사례를 오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실패한 정치체제를 비판하기만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벌어진 아픈 역사를 양분으로 삼아 좀더 나은 혁명을 향해 나아가야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의 지성사>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지난 역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거의 100페이지에 달하는 참고 문헌과 각주가 이를 뒷받침한다. 유명한 역사학자 E.H.카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엔초 트라베르소도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혁명사를 통해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 그 대화는 지난 날을 되짚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희망적이고 굳건한 의지를 독려한다.

혁명은 좀더 나은 사회, 좀더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나아가려는 진보적 성향을 가지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실패한 역사는 아쉽게도 좋은 취지의 시작 역시도 변질되어 종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뼈아픈 경험을 우리의 뇌리에 심어주고 말았다.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는 나약한 나와 같은 민중의 피로는 극에 달하고 있지만 달라질 게 없다는 패배감에 취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다르고 싶다는 바람, 좀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희망은 버릴 수가 없다. 이걸 버리는 순간 우리는 하루하루 생존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그 옛날의 삶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연 이걸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혁명은 일정을 잡을 수 없으며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그 때가 되면 이 실패한 역사가 온전히 기억되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양분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하며 자체의 경로가 거듭 중단된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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