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참으로 오랜만에, 소설읽느라 밤을 샜다.
여기까지 쓰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이때까지 소설을 읽기 위해 밤을 샌 적이 있었던가?

김훈이 이걸 쓰기 위해서 2년동안 칼만 봤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과거의 한 사람이 남들의 입에 다시 오를때는 이야기 하는 사람의 복화술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구한말에 '봐라, 이렇게 일인들을 이겨낸 사람이 있었다'는 피울음 속에서 이순신을 그렸고, 그렇게 이겨냈던 구국의 영웅, 전설 속의 무장으로 이순신을  견고하게 만들었던 것이 학교 숙제로 누구나 한 번씩 읽었음직한 노산 이은상 선생의 이순신 전기이다. 이 글은 많은 자료와 착실한 번역으로, 그를 정말 광화문 앞 동상의 장군으로 , 굳혀 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순신장군이 광화문 동상처럼 내 마음 속에 버티고 서있는 상태에서, 이 책 안의 또다른 이순신은 '허깨비'인 내부의 적과, 안개 너머의 왜적 사이에서  포장되지 않은 '죽음'을 늘 준비하는 한 사내가 되어 걸어왔다. 작가의 설명대로 하자면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마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가 그였다.
평소에 내가 일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른 모양으로 내 앞에 걸어왔을 때 '잘못 그렸다' '그 사람 아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이상했다.
<B>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조선 수군들은 물위에 떠다니는 아군들의 시체를 갈고리로 찍어올려서 갑판 위에서 목을 잘랐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교서 아래서 잠깨는 새벽마다 어둠 속에서 오한이 났고 식은땀이 요를 적셨다. 종을 불러서 옷을 갈아입을 때, 포구에 묶어둔 배들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가 들렸다.
-송여종은 여수에서 의주에 이르는 그 멀고 먼 길 위의 일들을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살아서 돌아왔다. 그는 서른 다섯살의 장년이었다. 그가 진을 묻고 있었다. 나는 되물었다.
-군법을 집행하던 날 저녁에는 흔히 코피가 터졌다. 보고서쪽으로 머리를 숙일 때,뜨거운 코피가 왈칵 쏟아져 서류를 적셨다. 코피가 터지고 나면 머릿속에서 빈 들판이 펼쳐지듯이 두통이 났고 열이 올랐다.종을 불러서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누우면, 실신하듯이 밑 빠진 잠이 쏟아졌다.나는 바닥없는 깊이로 떨어져 내렸고,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에는 식은땀에 젖었다. 의식이 다시 돌아올 때 나는 어둠속에 걸린 환도 두 자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제자리를 찾아서 박혀있었다. 오랜만에 갑옷을 멋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팔다리가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몸은 희미했고 몸은 멀었고,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B>
평소 알던 이순신의 육성인 '난중일기'의 구절들과 교묘히 섞인 이러한 복화술들은, '국물'과 '밥'같은 말로 대표되는 표현 속의 실감과 섞여서 더 많이 느껴져왔다. 그래서 맨 마지막 구절을 읽었을 때는, 이 이야기 속의 이순신이 피흘리며 뚜벅뚜벅 걸어와 "내가 나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순신이 '구국의 영웅' '성웅인 무장'에서 좌표이동을 했다는 충격때문에라도 더, 이 이야기는 저릿저릿하고  허무하고 슬펐다.(2권 말의 평론 제목이 <역사를 초월한 절망의 깊이>인걸 보니 슬픈 건 나만이 아니었나보다...)
그런데 김훈은 여기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고 한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라는 조건이 붙었기에, 그 새로은 희망의 싹이란 걸 좀 이해는 할 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아름다우나 허무하다' '허무해서 슬프고, 그래서 아름답다'라는 생각만 날 뿐이지 그 새로운 희망이 눈에 보듯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가짜 희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 이제 그가 다른 사람, 다른 사건 속에서 이 이야기를 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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