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홍민정이 쓰고 김재희가 그림창비 2020년'고양이 해결사'라니. 평범하고 뻔한 전개가 예상되지만 김재희님이 그리신 깜냥이 너무 귀여워서 펼쳤다가 예상 외의 재미에 깜짝 놀랐다. 전공이 아동학이다 보니 워낙 많은 동화와 그림책을 즐겼는데 최근에 읽어본 동화 중에서 손에 꼽힐만큼 재미있었다. 2020년의 대한민국 중산층 가정의 형편이나 사회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반영되어서 동화지만 단맛, 신맛, 짠맛, 씁쓸한 맛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서 더욱 잘 읽혔다. "원래 ~하지 않는데"가 말버릇인 도도한 아기 길고양이 깜냥은 전형적인 츤데레이다. 위풍 당당하지만 철이 없거나 매정하거도 무례하지도 않고 식사 때는 식사 예절을 갖추고 잠을 잘 때도 자기 만의 방식이 있는 똑부러지는 고양이다. 깜냥은 비가 쏟아지는 어느 밤, 아파트의 경비실을 무작정 찾아가 하룻밤을 신세지겠다며 드러눕는다. 이 동화는 그 하룻밤 사이 일어난 에피소드들이다. 자겠다고 드러누웠으나 아파트 경비실의 인터폰이 얼마나 요란하게 그것도 자주 울리던지 깜냥은 도대체 자기 뜻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청원을 충실하게 들어주며 하룻밤 만에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솔직히 이 동화를 읽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그 이유는 각 에피소드를 읽으며 다른 동화들이 연상되어서 간만에 다른 책을 다시 들추고 동영상을 찾아서 듣고 중고책방을 검색하길 반복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올 때까지"를 읽으면서는 "Owl Babies"(Martin Waddell 씀)가 떠올랐는데 두 아기들이 엄마를 기다리며 깜냥과 보내는 시간들이 애잔하고 귀여워서 가장 인상에 남는다. 엄마는 그 어린 것들을 집에 두고 늦도록 일하며 마음과 몸이 얼마나 고되셨을까 싶었다. 아가들을 돌보아줬으니 엄마로서는 아기 길고양이라도 참맬로 든든했을 것이여. "형제는 깜냥이 읽어 주는 그림책에 폭 빠져들었어. 깜냥은 이야기를 듣는 형제의 표정에 쏙 빠져들었고. 인터폰 누르지 말라고 야단치러 온 것은 벌써 까맣게 잊어버렸지." (나도 폭 빠져서 읽어부렀어) 경비실 인터폰으로 들려오는 민원들은 하나같이 짜증이 섞인 원망이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깜냥과 함께 귀를 기울여 듣자고 제안하는 듯 하다. 듣기 시작하고 보기 시작하면, 분명 문제의 이면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정들이 있으니 조금만 더 다가서자고 다정하게 부르는 듯 하다. 김재희님의 귀여운 일러스트도 이 동화책의 매력 중 하나다. 길고양이로 여기 저기 신세를 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돕기도 하며 깜냥이 받은 선물과 그 선물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쭈욱 나오는 엔딩에서는 '고양이 해결사 깜냥2, 깜냥3, 깜냥4'를 기대하게 했다. 귀엽고 똑부러지는 고양이 경비원 깜냥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황지영님이 쓰시고 애슝님이 그리심.애슝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좋아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솔직히 말하겠다. 그만큼 표지가 맘에 들었다. 모두를 뻥 날려버리는 기운 넘치는 여자아이가 분명 도개울일 것이었다. 도개울, 이름도 얼마나 멋진지!! 그러고보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도씨를 가진 분이 누구 누구였나 떠올려보기도 했는데, 도씨라는 특이한 성이 개울이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개울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아니었고 이름도 귀엽고 정겨운 '구수구수 구수아' (앗, 수아야 미안해. 수아는 이 별명을 너무나 싫어한다 ㅠㅠ 입에 착착 붙는 귀여운 별명인데 내가 수아였다면 나도 치를 떨며 싫어했을 것이다.) 아니, 초등학생 '한수아'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수아에게는 지독하게도 싫은 악당같은 짝, 유찬이가 있다. 수아가 부끄러움이 많고 겁이 많고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여자아이라서 너무도 나와 닮았고 유찬이도 나의 국민학생 시절에 자주 출몰하곤 했던 악당같은 남자아이를 닮아서 수아의 심정에 공감하기가 너무도 쉬웠다. 수아의 반에 목소리도 엄청 크고 정수리에 머리를 질끈 묶은 '도개울'이 전학을 오고 수아의 용기를 낸 부탁에 개울이가 수아의 짝이 되어 두 사람은 친해지게 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국 전래 동화와 대한민국의 2020년을 씨와 날로 엮어놓은 것처럼 펼쳐진다. 표지의 그림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개울이는 멋지고 용기 있는 아이였지만 뭐랄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 위장을 하고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점이 안쓰럽기도 했다. 솔직히 이 동화에 내가 (표지만 보고서) 걸었던 기대는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페미니즘, 성평등, 걸크러쉬가 펼쳐지는 내용이었지만 이 동화에선 조금도 그런 모습은 없다. 대신 '이 시대에? 아직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야기에서 구수하고 정겨운 우리 고유의 맛이 나는 듯 익숙해서 미소가 났다. 시종 내내 엄격하고 권위적인 모습만 보이던 수아의 담임 선생님이 마지막에 보이신 모습에서 나도 수아와 함께 웃었다. 메밀묵이 땡기는 구수한 동화. 그리고 애슝님의 일러스트는 여전히 귀엽고 앙증맞다.
소제목이 '강릉에서 제주까지 정성으로 차린 밥상'이다. 한솔 수북의 '지식이 잘잘잘' 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얼마나 많은 손품, 발품이 들었는지 책을 다 읽고 나면 든든한 한 끼를 먹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고 뜨듯해진다. 우리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살고 있음에도 우리 땅의 먹거리와 우리 땅에서 쓰이는 언어에 친숙해지기가 힘든 시대에 살고 있으니 나이와 무관하게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이 얇지만 알찬 그림책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특히 대한민국의 작은 시민들에게 더없이 필요한 책이다. 각 페이지마다 전국 곳곳에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먹거리를 성실하게 일구고 다듬는 손길들이 그림으로도 생생하게 펼쳐지고 각 지역의 언어로도 생생하게 들린다. 바닷가의 짠내, 땅에서 올라오는 매운 마늘냄새, 고소한 삶은 콩냄새, 막 지은 밥에서 올라오는 따끈한 향기도 그림에서 솔솔 올라오는 것만 같다. 가능하다면 QR코드 같은 것이 있어서 각 지방의 언어를 더 생생히 들을 수 있다면 말맛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에 첨부된 남한과 북한의 지도는 스티커를 붙이고 떼기에 좋은 코팅지라서 배려가 돋보이고 남한 뿐 아니라 북한의 지명과 먹거리까지 어린 독자와 함께 찾아보고 스티커로 붙일 수 있게 해주어서 유익하다. 책 안에 가득한 온갖 먹거리들을 다듬고 요리하는 분의 손길도 얼마나 멋지던지. 반찬 투정이나 식사를 거부하는 어린 시민과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나도 먹을래. 나도 이렇게 깨끗하게 다 먹을테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과 접시들이 이 땅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의 사랑과 정성에 답하는 가장 적당한 인사일 것이다. 이렇게 먹으며 자라난 사람은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하고 멸치 한 마리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기에 어느 하나 허투로 대하지 않을 것만 같다. 얇지만 알찬 책을 듣고 보고 맡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