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말로 제 취향저격하는 명작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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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페이지 요리책
듀자미 지음 / 렛츠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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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먼저 귀가 솔깃했다. 원 페이지 요리책이라니. 달랑 한 페이지. 그만큼 단순하고 간결하게 각 요리의 포인트를 딱 집어줄 요리책을 예상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바람은 아무리 도전해도 내 입에 맞지 않아 늘 실패했던 요리들을 원 포인트로 한 눈에 정리해서 지금까지 해온 숱한 실패들을 줄여보고 싶어서였는데 이 책의 의도와는 무관한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대략 110여 페이지의 이 요리책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림이 있긴 하지만 단촐해서 각 요리의 포인트가 되는 재료 하나 정도이다. 개인적으로는 공백이 많아서 내가 이 레시피(라고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는)대로 요리를 하다가 겪은 시행착오나 나만의 계량법을 적기에는 적합해 보인다.

다만 커버가 다소 두꺼운 종이이고 한 번에 펼치기에도 어려워서 이 책을 보며 요리를 하려면 무거운 것으로 페이지를 눌러야하는 불편함이 예상된다.

다른 특징들을 들자면, 재료의 계량이 없다. 몇 분 정도를 익혀야하는지도 대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과정이 문장으로만 적혀 있으므로 요리를 하는 분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셔야 한다. 이 정도는 이 책의 의도("실패를 두려워 말고 자꾸 만들다 보면 감이 생깁니다.")를 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요리를 처음하는 분들에게는 당황할만한 순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기본 재료에 적힌 밀가루가 강력, 중력, 박력 중 무엇인지, 간장은 진간장, 국간장, 양조간장, 맛간장 중 무엇인지 적혀있지 않다. 국수나 파스타를 삶을 때의 대략적인 양에 대해서 전혀 감이 없는 분들도 부족한 양을 삶거나 많이 삶은 후 남은 양을 버리거나 처치가 곤란한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초보자분들이 알아야할 기본 식재료나 필수적인 도구에 대해 따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부분들은 유익하지만 몇 재료에 대해서는 설명이 생략되어 있는 것도 아쉬웠는데 예를 들면 마늘이 그 중 하나이다. 마늘이 가진 항암성분 중 하나인 알리신을 극대화하려면 마늘은 통으로 먹거나 편으로 먹을 때보다 찧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미리 갈아두는 것보단 끓이거나 볶거나 무치기 10분 전에 찧어두는 것이 마늘이 가진 맛과 영양을 극대화할 수 있다. 찧거나 간 마늘을 소분해서 냉동했다가 써도 되지만 해동 후 오래 두면 알리신의 효과나 맛도 줄어든다. 또 너무 오래 가열하면 맛과 효과도 감소한다.

내가 이 책에 호감을 가졌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유명한 요리 블로거분들 중 어떤 분들은 "이 레시피에는 **사의 ****액젓만 써야합니다. ##사의 ##간장, @@@사의 다시마를 써야합니다. 다른 것을 써서 맛이 없다고 하지말고 레시피 대로 하시오. 맛이 없다고 툴툴 댈거면 시작을 마시오." 라는 말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하게 단촐해서 요리초보자의 실패를 줄여줄 의도가 전혀 없다는 부분에서 이 책은 나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특히 1인 가구인 경우, 실패한 요리는 버리는 것도 경제적인 부담이요, 버리지 못해 먹는 요리는 스트레스와 서러움이 되고, 나의 경우는 실패한 요리는 또 다른 실패로 이어졌다. 실패가 쌓이면 다신 도전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고 두려움만 남겼다. 요리는 감으로 한다는 말은 내겐 참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요리는 100% 과학이라는 게 요리에 대한 나의 신앙이기 때문인데 화학적인 작용을 우리의 감각으로 체득하기까지는 감수해야할 시간과 비용,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리 초보자분들에게 "요리는 감이고 할수록 늘어요. 실패를 두려워말고 너무 많은 것을 갖출 필요없이 부담없이 시작해봐요"라는 시도는 좋다. 너무 많은 틀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거나 요리 자체가 엄청난 부담으로 여겨지는 분들에게는 정말 군더더기없고 깔끔한 내용과 편집이다.

초보자라면 꼭 알아야할 계량법과 재료 명시에 좀 더 충실했더라면 하는 바람이 맴돈다. 나같이 요리를 해온 시간은 오래되었지만 실패만 잇는 사람에겐 이 책의 첫 레벨 첫 요리조차 다소 높은 레벨이기에 레시피(그토록 단순명료하다니)를 보고 놀랐다. 내겐 결코 그리 만만한 요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소심하고 예민하셔서 실패가 두려운 분들은 서점에서 살펴보신 후 구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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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준열 외 8인 창비청소년문학 85
이은용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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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청소년 소설이고 난리법석, 다사다난한 내용일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제목과 표지. 어린 시절 23명의 가족에 둘러싸여 자란 내겐 안 읽어봐도 이미 읽은 듯한 내용인 듯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에 더욱 술술 읽혔다. 재미있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서가 아니라 모든 과정이 좋았고 끝도 좋았다. 특히 11장이 좋았다.

다만 '외 8인'이 '외 10인과 1견'일 줄은 몰랐지만 정말 읽는 내내 키득거렸다. 청소년 문학과 아동 문학을 두루 애정하는 나는 자문했다. 왜 이 분야에는 유독 여행하는 내용이 많을까?

주인공 맹준열이 애독하는 데미안에도 답이 있고 준열이의 독백에도 답이 있다.

" 한동안 우리는 게임을 하듯 돌아가면서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 했다. 막상 시작하자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무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공간들. 마치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불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소들이 응집되어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고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유목민들과 하룻밤을 묵고 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부족과 춤을 추고 갑자기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계가 엘리베이터만큼밖에 안 되는 기분이었다.

문만 열면 갈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는데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살아가는 나란 존재란." (166쪽)

자신이 속한 알을 깨고 나와 자아를 찾아가기 위해 여행이란 정말 멋지고 딱 들어맞는 과정이다. 이 소설이 2박 3일의 이야기라는 게 맹가네 가족만큼이나 독자들도 믿어지지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과 시간들. 시간을 들일수록 색과 향과 맛이 숙성되듯이 맹가네 가족들은 각자 성숙해지고 있었다.

너무 잘 아는 곳이라고 해도 그곳을 찾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혹은 누구와 동행했는지 홀로 갔는지에 따라 여흥이 달라질 것이다. 대가족에 소속되어 거기서 벗어나 오롯이 홀로이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간절했던 준열이의 마음과 늘 순탄하지 않은 그 가족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읽어봤자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읽고나니 역시 읽어봐야 했다 싶고 읽기를 잘했다 싶고 읽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책이었다.

11장이 너무 좋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가족들이 나타났다." (214쪽)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나의 모든 감각과 기억과 존재에 깃들어있다. 홀로일 때도 홀로이지 못한 이유는 그들과 내가 서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준열이의 마지막 독백과 달리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속할 세계는 분리되지 않고 엮여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오롯이 되살려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울까. 청소년보단 나같은 어른들에게 더없이 적격인 소설이다.

"여행을 떠나면서 처음 알았다. 엄마의 기대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별것도 아닌 일을 그토록 바란다는 게 시시하게 느껴지다가도 엄마가 꿈꾸는 그림에 나는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해졌다." (76쪽)

"대부분 그런 거 아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랑 상대방이 원하는 건 다르니까" (153쪽)

"비로소 가족들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 내내 내가 가장 원하던 일, 원하던 순간. 이 순간을 위해서 그토록 애를 썼건만 막상 '외 8인'을 벗어났는데도 나아진 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어디인지 모를, 덥고 먼지 나는 길을 걷고 있을 뿐."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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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 Studioplus
존 클라센 그림, 맥 버넷 글,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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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책 모서리를 보면 주독자가 유아라는 걸 알 수 있다. 커다란 눈의 무표정한 세모가 주인공인데 세모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세모는 자신과 닮은 세모 모양의 집에 살고 집 근처에도 세모만 보인다. 집 입구가 세모 모양이고 집 안에 세모 액자가 있다. 어느 날 세모는 그 작은 발로 총총 거리며 세모 모양의 동네를 지나고 이름 없는 모양들의 동네를 지나 목적지인 네모 모양의 동네에 이른다.

길을 떠나온 목적은 네모 동네에 사는 네모의 집에 도착해서 네모에게 장난을 치려는 것이었다. 네모 모양 동네에서 네모난 출입구에, 네모 액자가 걸린 네모난 집에 사는 네모는 세모의 장난에 깜짝 놀라 아주 무서워한다. 그런 네모를 집 밖에서 엿보던 세모는 웃느라 숨이 막혀서 더 이상 장난을 치지 못한다.

네모와 세모 모두 내내 무표정이지만 독자들은 어떤 표정일지 볼 수 있고 세모의 슷슷,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네모가 오돌오돌 떨었을 모습도 볼 수 있다. 무표정이기 때문에 매 페이지에서 네모와 세모의 표정을 독자의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장난에 성공한 세모는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달리고 그 뒤를 네모가 쫓아가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 이런 장난과 추격전이 잦았을 것이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에 누군가는 이 장면에서 웃을테고 나같은 성인은 이랬던 시절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의도했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어리숙한 네모의 복수 이후로 네모가 어찌됐을지 생각해보면 이 둘 사이의 장난은 계속 이어졌을 것만 같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장난을 치고 서로를 쫓는 것이 가능했던 그 시절이 이 책의 주독자들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겠다. 내게도 이런 장난을 칠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나를 곤란하게 할지가 유일한 고민이라고 했던 친구. 나도 네모처럼 늘 어설픈 복수를 하다가 바보가 되곤 했다.

끝 장면에서 세모가 가득한 동네에서 세모 모양 집의 세모 모양 입구에 끼여 매달려 있는 네모를 보자니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게, 네모야, 무작정 달려들 게 아니라 조금만 생각을 해보지 그랬어. 누군가는 둘을 사랑스럽다고 하던데 사랑까지는 아니었고 잔망스런 둘이 귀여웠다. 비슷한 수준의 어리숙함을 가진 둘을 보니 동질감이 느껴져 몇 번을 더 보았던 책이기도 했다. 근데 아이들도 세모와 네모의 무표정한 얼굴을 좋아할까 아니면 무서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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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고양이 창비아동문고 294
김중미 지음, 이윤엽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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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노랑색 바탕에 투박한 판화 일러스트의 고양이를 표지로 이런 가슴 아픈 내용을 담고있을 줄은 몰랐다. 인간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생명력도 약하지만 "우리도 여기 있어요, 우리도 생명이에요."라고 이야기하는 책.

로드킬이나 유기견, 유기묘, 강아지공장, 입양과 파양이라는 것에 대해 내 감정이 얼마나 메말랐고 버려지고 죽어가는 생명들에 대해 얼마나 당연시했던가를 깨달았다. 나 하나도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겨우 살아남는데 버려지는 사람 뿐 아니라 버려지는 동물들까지 어떻게 신경을 쓸까, 나라도 살아남자,라는 생각이었다. 그게 얼마나 악한지를 깨닫게된 동화들이었다. '옳지 않다, 좋지 않다'의 정도가 아니라 내겐 나의 무심함이 '악하다. 아주 나쁜 것이다.'로 여겨졌다.

덮어놓고 모든 생물의 가치가 같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인간은 홀로 살지 않고 살지도 못한다. 동물과 식물과 함께 지구 위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지구를 보존하고 가꾸며 모든 생명체와 공생하며 배워야할 숭고한 가치들에 대해 네 편의 동화들은 어떤 기사나 통계, 보고서가 주지 못할 울림들을 주었다. 때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때론 뼈가 보일만큼 앙상한 몸에 온갖 상처를 가진 채로, 두려움과 외로움이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화들은 어떤 강요나 압력도 없이 현실을 담담히 들려준다.

단지 감상에 젖고 동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소소하게 해보자고 결심하게 하려면 내겐 동화라는 방법이 적절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이별하게 되어 있단다. 살아 있을 때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그 다음엔 아무리 슬퍼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해. 네 덕분에 행복했어. 너도 행복해야해."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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