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열 외 8인 창비청소년문학 85
이은용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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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청소년 소설이고 난리법석, 다사다난한 내용일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제목과 표지. 어린 시절 23명의 가족에 둘러싸여 자란 내겐 안 읽어봐도 이미 읽은 듯한 내용인 듯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에 더욱 술술 읽혔다. 재미있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서가 아니라 모든 과정이 좋았고 끝도 좋았다. 특히 11장이 좋았다.

다만 '외 8인'이 '외 10인과 1견'일 줄은 몰랐지만 정말 읽는 내내 키득거렸다. 청소년 문학과 아동 문학을 두루 애정하는 나는 자문했다. 왜 이 분야에는 유독 여행하는 내용이 많을까?

주인공 맹준열이 애독하는 데미안에도 답이 있고 준열이의 독백에도 답이 있다.

" 한동안 우리는 게임을 하듯 돌아가면서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 했다. 막상 시작하자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무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공간들. 마치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불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소들이 응집되어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고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유목민들과 하룻밤을 묵고 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부족과 춤을 추고 갑자기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계가 엘리베이터만큼밖에 안 되는 기분이었다.

문만 열면 갈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는데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살아가는 나란 존재란." (166쪽)

자신이 속한 알을 깨고 나와 자아를 찾아가기 위해 여행이란 정말 멋지고 딱 들어맞는 과정이다. 이 소설이 2박 3일의 이야기라는 게 맹가네 가족만큼이나 독자들도 믿어지지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과 시간들. 시간을 들일수록 색과 향과 맛이 숙성되듯이 맹가네 가족들은 각자 성숙해지고 있었다.

너무 잘 아는 곳이라고 해도 그곳을 찾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혹은 누구와 동행했는지 홀로 갔는지에 따라 여흥이 달라질 것이다. 대가족에 소속되어 거기서 벗어나 오롯이 홀로이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간절했던 준열이의 마음과 늘 순탄하지 않은 그 가족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읽어봤자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읽고나니 역시 읽어봐야 했다 싶고 읽기를 잘했다 싶고 읽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책이었다.

11장이 너무 좋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가족들이 나타났다." (214쪽)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나의 모든 감각과 기억과 존재에 깃들어있다. 홀로일 때도 홀로이지 못한 이유는 그들과 내가 서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준열이의 마지막 독백과 달리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속할 세계는 분리되지 않고 엮여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오롯이 되살려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울까. 청소년보단 나같은 어른들에게 더없이 적격인 소설이다.

"여행을 떠나면서 처음 알았다. 엄마의 기대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별것도 아닌 일을 그토록 바란다는 게 시시하게 느껴지다가도 엄마가 꿈꾸는 그림에 나는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해졌다." (76쪽)

"대부분 그런 거 아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랑 상대방이 원하는 건 다르니까" (153쪽)

"비로소 가족들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 내내 내가 가장 원하던 일, 원하던 순간. 이 순간을 위해서 그토록 애를 썼건만 막상 '외 8인'을 벗어났는데도 나아진 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어디인지 모를, 덥고 먼지 나는 길을 걷고 있을 뿐."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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