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청소년 소설이고 난리법석, 다사다난한 내용일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제목과 표지. 어린 시절 23명의 가족에 둘러싸여 자란 내겐 안 읽어봐도 이미 읽은 듯한 내용인 듯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에 더욱 술술 읽혔다. 재미있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서가 아니라 모든 과정이 좋았고 끝도 좋았다. 특히 11장이 좋았다. 다만 '외 8인'이 '외 10인과 1견'일 줄은 몰랐지만 정말 읽는 내내 키득거렸다. 청소년 문학과 아동 문학을 두루 애정하는 나는 자문했다. 왜 이 분야에는 유독 여행하는 내용이 많을까? 주인공 맹준열이 애독하는 데미안에도 답이 있고 준열이의 독백에도 답이 있다." 한동안 우리는 게임을 하듯 돌아가면서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 했다. 막상 시작하자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무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공간들. 마치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불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소들이 응집되어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고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유목민들과 하룻밤을 묵고 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부족과 춤을 추고 갑자기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계가 엘리베이터만큼밖에 안 되는 기분이었다. 문만 열면 갈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는데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살아가는 나란 존재란." (166쪽)자신이 속한 알을 깨고 나와 자아를 찾아가기 위해 여행이란 정말 멋지고 딱 들어맞는 과정이다. 이 소설이 2박 3일의 이야기라는 게 맹가네 가족만큼이나 독자들도 믿어지지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과 시간들. 시간을 들일수록 색과 향과 맛이 숙성되듯이 맹가네 가족들은 각자 성숙해지고 있었다. 너무 잘 아는 곳이라고 해도 그곳을 찾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혹은 누구와 동행했는지 홀로 갔는지에 따라 여흥이 달라질 것이다. 대가족에 소속되어 거기서 벗어나 오롯이 홀로이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간절했던 준열이의 마음과 늘 순탄하지 않은 그 가족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읽어봤자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읽고나니 역시 읽어봐야 했다 싶고 읽기를 잘했다 싶고 읽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책이었다. 11장이 너무 좋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가족들이 나타났다." (214쪽)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나의 모든 감각과 기억과 존재에 깃들어있다. 홀로일 때도 홀로이지 못한 이유는 그들과 내가 서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준열이의 마지막 독백과 달리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속할 세계는 분리되지 않고 엮여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오롯이 되살려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울까. 청소년보단 나같은 어른들에게 더없이 적격인 소설이다. "여행을 떠나면서 처음 알았다. 엄마의 기대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별것도 아닌 일을 그토록 바란다는 게 시시하게 느껴지다가도 엄마가 꿈꾸는 그림에 나는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해졌다." (76쪽)"대부분 그런 거 아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랑 상대방이 원하는 건 다르니까" (153쪽)"비로소 가족들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 내내 내가 가장 원하던 일, 원하던 순간. 이 순간을 위해서 그토록 애를 썼건만 막상 '외 8인'을 벗어났는데도 나아진 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어디인지 모를, 덥고 먼지 나는 길을 걷고 있을 뿐." (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