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문제적 인간 1
장 마생 지음, 최갑수 머리말, 양희영 옮김 / 교양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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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프랑스에서 도덕이 이기주의를, 정직이 체면을, 원칙이 관행을, 의무가 관례를, 이성의 지배가 관습의 독재를, 악덕에 대한 멸시가 불행에 대한 멸시를, 자부심이 무례함을, 관대함이 허영을, 명예 대한 사랑이 돈에 대한 사랑을, 어떤 사람인가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공로가 음모를, 타고난 재능이 범용한 재주를, 진실이 화려함을, 행복의 매력이 쾌락의 권태를, 인간의 위대함이 위인들의 옹졸함을, 관대하고 강력하고 행복한 민중이 친절하고 경박하고 비참한 민중을, 다시 말해 공화국의 모든 덕성과 모든 기적이 군주정의 모든 악덕과 조롱거리들을 대신하기를 원합니다."


- 이 책, 533쪽.


로베스피에르가 그렸던 세상은 아마도 유토피아였는지 모른다. 그가 그린 이상향을 위해 로베스피에르는 유혈낭자한 공포정치를 주도했고, 그 공포정치의 와중에 자신의 피 역시 쏟아냈다. 사가(史家)들에 의해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로베스피에르, 그가 신념과 청춘을 불살라 이룩하고자 했던 이상적 공화국은 아마 숭고한 이상주의자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이상에 동조하는 자는 그를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겠고, 반대로 그 이상을 허황된 소리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은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터.

혁명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공포와 유혈로 점철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혁명은 과연 그렇게 외적인 것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 더 불길한 징후는, 결계에 속박되어 헤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아예 그 결계 안에서 안주함으로써 만족하려는 복종의 심리, 그것이 아닐지. 그렇다면 혁명은 자기 외부의 피를 불러오기 전에 자기 스스로의 피를 먼저 흘려야 가능할 것이다. 그것만이 주술에 묶여 있는 봉인을 풀어 결계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성장이라는 환상과 거기서 소외될까 전전긍긍하는 공포가 운명처럼 결계를 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 흑마술의 봉인을 깰 수 있는 방법은, 결계 밖으로 몸을 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어디에 숨어 있을까. 로베스피에르는 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면서 내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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