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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밤 되세요 ㅣ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평점 :
우선, 솔직히 말할 게 있다. 거의 25년 가까이 난 소설을 읽지 않았다. 언젠가 어디선가 어떤 계기로 누군가가 왜 소설을 읽지 않냐고 물었을 때, 난 어거지로 이유를 갖다 붙였다. 하도 딱딱한 책만 보다보니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진실한 답변은 아니었다.
난 어쩌다가 보는 티비에서 어린 아이들이 아픈 모습이 보이거나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치면 그냥 티비를 꺼버린다. 그 모습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서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난 언제부턴가 소설 속의 상황에 감정이 이입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티비에서 가슴 저린 사연을 보았을 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하게 활자로 그려진 어떤 상황이 내 자신의 모습으로 전환되는 것이 두려웠다.
원래 나는 소설을 무지하게 좋아했었고, 한때 문학소년이었다니까... 소설을 쓰기도 했었고, 소설로 날밤을 지새기도 하고 소설에 술을 쏟아붓기도 했다. 공장에 다닐 때만 해도, 장길산은 각 권마다 소주 몇 박스씩은 좋이 퍼부었었고, 벽초의 임꺽정이며 헌책방을 돌며 찾아낸 태백산맥이며 기타 등등 장편소설에 갖다 부은 술이 월급의 절반은 될 거다.
시도 그랬다. 출판을 되지 않았지만 난 내 시만 모아 제본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안상 본가의 구석구석을 뒤지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수많은 시집들에 소주잔 좋이 갖다 부었다. 특히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백무산의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그 한 페이지마다 소주 열 댓병씩은 쏟아 부었을 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난 시며 소설의 내용에 내가 전이되는 것이 두려웠다. 어떤 순간에 감전된 듯 어떤 상황이 종이를 떠나 내 가슴에 들이 박히면 때론 몇날 며칠을 잠을 못자기도 했다. 난쏘공 같은 경우엔 그냥 몇날 며칠을 소설의 주요 장면들이 그대로 꿈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웃기는 건 이제는 난쏘공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난 소설이며 시며 문학의 장르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소설이 어떻게 생겨먹은지 까먹을 지경에 이르렀던 거다.
물론 중간 중간 소설을 아예 안 본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어 손을 뻗은 경우는 없고,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읽은 소설들은 그닥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 소설들 중에는 깨나 이름 있는 작가의 이름 있는 소설도 있었는데, 소설이 수준 낮아서가 아니라 진짜로 내가 소설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 기억이 나질 않는 거다.
노정의 "달콤한 밤 되세요"는 어쩌면 의리때문에 손에 쥐게 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손에 쥐기까지의 여정을 이렇게 중언부언한 건 뭐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솔직히 소설에서 멀어진 이유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일 뿐이다. 아무튼 그렇고. 그래서 일단은 그 의리로 손에 쥐게 된 건데, 역시나 난 또다시 지면에서 튀어나온 활자와 싸움질을 하며 노정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전이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말았다.
문제는 나의 그러한 노력이 노정의 "달콤한 밤 되세요"에서 번번이 무너졌다는 거다. 그 의리의 전제가 된 공통의 기억이라는 것이, 이 소설 여기 저기에서 나에게 속삭인다. 너도 알잖아, 그 때 그 일을. 너도 느꼈잖아, 그 때 그 감정을... 그러므로 너는 벗어나려고 하지말고, 그냥 받아들이렴. 그 고통을 다시 상기하라고, 그 고통을 다시 느끼라고, 그 고통에 다시 몸부림쳐보라고. 넌 정말 고통스러웠던 거야? 넌 정말 힘들었어? 나만큼? 왜 너는 나만큼 힘들지 않았는데? 왜? 왜? 왜?
그 죽음은 누구의 책임이었나를 집요하게 묻는 대목에서 난 그 질문의 화살끝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 이 노작가가 지금 그를 아는, 그리고 어떤 죽음을 아는 모든 이에게 난사를 하고 있는 거다. 왜 모른척하냐고, 왜 잠자코 있냐고. 너희들도 각자의 소명서를 작성해보라고. 벌써 잊지 않았다면, 차라리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아프다. 난 어디서부터 그 책임의 일단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
처음에는 정말 가볍게, 아주 즐겁게, 내가 아는 누군가의 첫 소설을 축하해주는 마음과 함께 읽어내려 했다. 하지만 중간을 넘어가면서 한 페이지 넘기기가 너무 어렵다. 많이 어렵다. 참으로 오랫만에 이렇게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마치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듯한 버거움을 느껴본다. 그렇게 책장 넘기기가 고역이 될 무렵, 마지막장 '내일은 내일의 캐셔가 온다'까지 왔다. 글쎄, 왜인지 모르겠지만, 책 한 권을 지나오면서 숨이 가빴는데, 마치 작년 신정 다음날 심장에 스탠트를 집어넣어야만 했던 그 가슴의 통증마저 느꼈었는데, 이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뭐랄까, 해원(解寃)이랄까... 그런 심정이 들고, 뭔가가, 가슴에 막현던 그 뭔가가 스윽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통한의 어떤 상념이 녹아내리는 그런 심정이 이런 걸까나...
자, 그리하여 다시금 용기를 내서 처음부터 돌아간다. 2회독은 1회독보다 쉽다. 아파야 할 것을 이미 다 아파버렸기 때문일까. 3회독에 들어가니 글들이 보인다. 그리고 피식피식 웃음도 나오고, 눈물도 나오고, 울음도 나오다가, 다시 피식피식 웃게 되었다. 그래 뭐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지. 울다 웃으면 X꼬에 털난다고 하지만 나야 뭐 이미 무성한 걸. 하... 너도 참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 아픔을 같이 나누지 못했구나. 하지만 말이야, 아마 너와 같이 그 시간을 지냈던 모든 이들이, 그 사건을 함께 겪었던 모두가 크든 작든 아직 그 상처를 다독이며 살고 있을 거야. 내가 그렇고 또 누군가가 그렇고.
조금은 슬픔과 흥분이 가라앉은 후 다시 들여다본 "달콤한 밤 되세요"에는 저 가슴 밑바닥 어딘가를 툭툭 건드리는 말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대충 뽑아보자면.
젊어서는 프런트에서 캐셔 하지, 늙으면 청소팀 하면 되지. 호텔이 바로 '평생직장'이다, 너어. 34쪽.
안 잠기는 건 둘째 치고 문이 닫히질 않는다고요! 호텔이 뭐가 이래! 엉! - 50쪽.
자누임 니가 애새끼 셋 딸린 가장의 고충에 대해 뭘 아니. 느이들은 퇴근하면 잘 수 있지? 나는 못 자아. 계속 여행사 일정 잡고 영업 뛰고, 집안일 보고. 내가 삶이 참 고달퍼. - 56쪽.
리재는 죽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서성거립니다. 나는 죽음에 대해 더 이상 거리를 두지 못합니다. 무심해지지 않아요. - 113쪽.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인생은 원래 시간차 공격이니까! - 122쪽.
사람 목숨을 갖고 겁박을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너 죽여버리겠다거나, 아니면 나 죽어버리겠다거나. 언어는 늘 실질보다 과잉이라서 인류가 진적 멸종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 147쪽.
죽도록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이 죽어버리고 난 뒤에, 그들을 죽도록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까요. - 158쪽.
아직 애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면 잠시 너의 상실에만 집중하렴.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살아. 우리 모두 그래도 돼. - 1667쪽.
바닥을 보고 싶지 않으면 노조 같은 건 꿈에도 생각지 말아요. 지옥을 맛보게 될테니까. - 193쪽.
착한 사람들만 늘 이렇게 당하고 산다고. 세상사가 원래 좀 그래. 느이들은 그렇게 살지 마라. 사람이 좀 못돼먹어야 잘 살아.- 214쪽.
마케팅 측면에서 고찰해보자면 드림초콜릿은 '메인' 고객층의 '니즈'를 정확하게 '타겟팅'하는 성공적인 '네이밍'에 해당한다. - 223쪽.
일부일처제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쓰레기 분리수거 지침도 무너지고, 심지어 물탱크와 문짝까지 무너지는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기이한 일이었어요. 이 호텔은 나에게 이렇게 호통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것이 세계의 민낯이다! - 261쪽.
왜 이 문장들이 눈에 박혔는지는 또 생각을 해봐야겠다. 서평을 쓸정도로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보니, 나는 그저 내 사변적 이야기를 내 생각에 버무려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이야기하기 좋은 문장들이 저 문장들이었나보지 뭐. 아무튼 그렇고.
가만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호텔문짝이더냐... 데이트 폭력을 둘러싼 경찰과 캐셔의 서로 다른 입장도 그렇고, 리재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입장도 그렇고, 라쇼몽 패러디인가... 아, 다시금, 이 소설에서 문짝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처럼 보인다. 어쩌면 우린 모두 나름의 문짝을 열기 위해 아둥바둥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게 '드림초콜릿'의 문짝처럼 언제 내려앉을지, 언제 키가 고장날지, 언제 아구가 틀어져 닫히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열 어떤 문짝에 매달려 신음하는 존재가 우리 자신이 아닐지. 그러고보면 나명이나 리재가 아닌 문짝이 주인공인 것이 맞다고 본다.
어쨌든 간에, 내년 노벨문학상후보에 이 소설의 작가가 올라갈지 모르겠다. 미리 축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