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회 -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홍경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더워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한 건 1994년이었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할 정도인데, 추우면 뼈골이 시리다는 걸 알게 된 후엔 둘 다 싫어졌지만, 그래도 더워서 기절하는 저질체력은 아니었더랬다. 1994년 여름은 한창 팔팔할 때였는데도 힘겨웠다. 실연당한 동생놈 하나가 술과 함께 더위를 처먹는 통에 기절하면서 혼을 뺀 후, 그리고 그 와중에 같이 더위 먹고 실신 직전까지 간 후 더위의 무서움을 체감했더랬다.


올 2018년 여름은 그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맞은 더위라서 더 혹독했는지 모르겠으나, 1994년 여름보다 더 더운 여름은 내 생에 없을 거라던 예상은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옆을 지켜줬던 짝지가 없었더라면 아마 올 여름 이후 책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줄을 놓기 직전, 관찰하고 있던 짝지가 혹서탈출을 감행해주었기에 이후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이토록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에 손에 잡힌 책이 '폭염사회'였다. 더위에 기진맥진해져 있던 때에 이 책도 짝지가 사다 주었다. 제목이 바로 피부에 와닿는지라 순식간에 들쳐보게 되었다.


최근 들어 '~사회'라는 제목의 책들이 얼마나 많이 출간되었던가? 번역본도 그렇고 국내 저작들도 그렇고, 무슨 유행처럼 '~사회'라는 책들이 나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다양하게 사회를 정의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더욱 놀라운 건 어떤 형태로 이 사회를 분석하든 간에 결론은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다름 아니라 개인에게 발생한 모든 문제는 죄다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마거릿 대처가 '사회는 없다'고 했다지만(물론 이 말은 따로 곱씹을 앞뒤 문장의 함의가 있다. 그냥 잡지 인터뷰 카피로 나왔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대처의 발상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긴 어렵다. 이 부분은 또 기회 있을 때), 실제로 모든 현상은 사회라는 시공간 안에서 수다한 관계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폭염사회' 역시 이런 측면에서 도식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 결론을 유발한 원인이 폭염이었던 것이다. '폭염사회'는 2장 "인종, 장소, 취약성: 도시의 이웃과 지원의 생태학"과 3장 "재난의 상태: 권력 이양기 도시의 복지"에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시카고를 덮친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그 많은 죽음들은 오로지 폭염 그 하나의 원인으로 사망의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관계망'의 존부를 통해 밝힌다. 즉,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 어떻게 편향되느냐에 따라 폭염이라는 재앙이 닥칠 때에 사람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갈림길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1995년 폭염으로 인해 시카고에서 발생한 사망은 경향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관계망이 파괴되어 있는 상태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 이전의 사례와 비교할 때, 공동체는 사망자들이 기댈 수 없을 정도로 느슨해졌으며, 사회안전망은 취약해졌다. 하다못해 과거에는 더우면 집 밖에서 잠으로써 더위를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집 밖에 두려워 집 안에서 쪄죽는 걸 감수해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에릭 클라이넨이 거듭 소개하고 있는 사회적 부검은 바로 이러한 죽음들이 관계의 해체로 인한 것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미국에만 국한된 것일까? 기실 양극화가 심화되는 모든 사회는 이 책이 고발하는 취약함을 가지고 있다. 아니 양극화의 심화와 비례하여 이러한 취약함 역시 심화된다. 초자본과 고위권력이 구성한 이너서클의 강고한 유대 속에서 폭염에 의한 사망은 기이한 일이 되겠지만, 그 외의 배제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상이 되어버린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사회적차원의 관계망 재구성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아주 간명하지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아주 강렬하게 드러낸다. 에필로그의 제목 자체가 "마지막은 함께"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공동체의 태도가 죽은 사람의 존엄을 최후까지 지켜줄 수 있는 정도의 관계 형성을 은유하는 것이다. 무연고자 시신을 처리하던 장례 노동자의 말을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 그런 의도겠다. 그리고 그 장례 노동자의 말은 책을 덮기 어렵게 만들 정도로 많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대로, 우리는 이렇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404쪽)


내 곁에 누군가가 있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맺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된 2018년 여름이 지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