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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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은 최근 한국에서 상당히 각광을 받은 저자이다. 이전에 번역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바가 있다.


이 책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는 그래서 기대가 있었다. 기대만큼의 책이다. 내용은 뭐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글 자체가 과거에 냈던 칼럼들 등을 엮은 것이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다. 그냥 읽으면 된다.


다만, 그가 책 전반을 통해 내려고 의도했던 결론인지는 모르겠으되, 최근 내가 고민하고 있는 어떤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누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누가 그 줄거리를 쓰는가, 그 줄거리가 바뀌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늘 던질 수 있다."(90쪽)


이미 많은 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법에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과는 별개로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법이 형평을 잃었다는 것을 매번 실감하면서 분노함에도 또다시 일이 생기면 법에 의존한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하지만, 리베카 솔닛이 제기한 저 문제의식은 여전히 법에 적용된다. 법을 말하는 자가 누구인가, 누가 법을 만드는가, 법이 바뀌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리베카 솔닛이 책 전반에서 언급하듯, 문제는 정치다. 하지만 그 정치는 리베카 솔닛이 말하든 투표의 중요성이라든가, 투표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상태를 어떻게 개성할 것인가라든가 하는 것에 한정될 수는 없겠다. 오히려 근본적으로는, 어떤 말이 결국 말 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제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 확인의 작업으로서 정치가 필요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내 고민이 출발하는 지점은, 즉 법을 누구의 입으로 말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출발하는 지점은 누가 정치의 주체가 될 것인지로 소급된다.


어떤 책이 문제의식과 함께 결론까지 제공할 것을 바라는 건 일종의 욕심이다. 이것은 마치, 누군가가 혼자서 병원균을 발견하고 치료약을 만들고 백신까지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 이 책은 어쩌면 공자가 이야기했던 '정명'과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명확한 결론을 유도해주는 건 또 아니다.


하지만 결론을 찾고 그 결론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건 여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내 몫으로 남는가? 아냐, 난 이제 좀 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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