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겨울 에디션)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24세 청년이 컨베이여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스물 네살... 그 나이를 듣는 것만으로 눈물이 흐른다. 


아직도 '신성한 노동'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는 교조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내게, 일 하지 말자거나 일터를 탈출하자거나 하는 말은 상당한 거부감을 동반한다. 그러한 발화들은 나름의 맥락이 있겠지만, 일 하지 않으면서 영위되는 삶의 앞뒤양옆위아래에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이 있어야만 하고, 그 노동이 있어야만 일하지 않으면서 영위되는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다보니, 일단 일 없이 살자는 말에 호감이 먼저 들리가 없는 거다.


그런 차원에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 제목은 선뜻 호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물론 책의 내용은 열심히 살지 말기를 당부하기보다는 그 '열심히'라는 것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문장은 가볍고 삽화도 가볍지만 그 뜻이 가볍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아무튼 이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저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접했다. 이 죽음이 전해지던 시간에, 국회에서 어떤 국회의원은 "싸구려 노동판"이라는 말로 상대 당의 의원들을 야유했다. 통곡을 할 일이다. 


이런 저런 일들이 우연하게 겹치면서, 마음이 영 좋지 않은 터에, 리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즈음 정말 가슴에 담고 살던 심정을 비슷하게 언급한 책의 내용이 있어 그대로 옮겨보려 한다.


"노동의 가치를 갂아 내리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노동이 진짜 기치 있고 신성하다면 값을 잘 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될 때가지 일해서 우리가 받는 액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것이 신성한 노동의 가치란 말인가. 더 환장할 노릇은 노동에 값어치를 매기는 사람, 우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자본가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노동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야 받는 돈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현실이 이러니 노동이 신성하다, 가치 있다 찬양하는 건 노동자들을 더 값싸게 부려먹으려는 자본가계급의 세뇌교육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아니면 노동자들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소리거나. 아차,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계급토쟁(?)이나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모독할 생각은 없다. 그냥 돈 버는 게 너무 힘들어서 소설 한번 써봤다. 우리 사회는 평등 사회이고, 신분이나 계급 같은 건 엇다는 거 다들 아시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번다. 그런데 돈 버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데도 간신히 삶을 유지하고 사는 정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도 없고, 내가 좋아흔 것에 몰입할 시간도 없고, 심지어 다시 일하기 위해 재충전할 시간도 없이 일을 한다. 아니, 그래야만 돈을 준다. 내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건지, 이쯤 되면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게 형벌처럼 느껴진다. 노동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 이 형벌을 끊을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저자의 이 문제제기는 학술적인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니라,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 땅의 모든 장삼이사가 공히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전문적인 이론으로 이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가?


스물 네 살 청년의 영정을 보면서 '열심히'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왜 살려고 일하는 사람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일을 해야 하는가? 이게 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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