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직업상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세 부류 있다고 한다. 의사, 목사, 그리고 변호사. 어차피 천국엔 아픈 사람이 없으므로 의사는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는 지옥을 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천국엔 회개하고 선한 사람들만 있으므로 목사는 죄짓고 회개치 않은 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 변호사는? 천국과는 달리 오직 지옥에만 변호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 넘치기 때문에 변호사 역시 지옥엘 가야 한다는데.


실상 이런 류의 농담은 이들 직업군에 대한 오래된 불신에서 비롯한다. 비록 변호사로 대변되지만 법의 집행이나 법적 판단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 대한 장삼이사의 불만과 의구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그런데 이런 불신은 법 다루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초한 바가 크다. 이것 역시 동서고금을 불문한다. 이 책,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는 바로 이러한 사법에 대한 불신의 연원과 그 내막을, 미국의 1930년대를 배경으로 설득력있게 드러낸다.


본인이 로스쿨 교수였던 프레드 로델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듯 이 책을 썼다. 기실 비판법학(이 책에서는 번역자는 '법현실주의'로 국한했는데)은 실증주의에 집착한 문헌학 위주의 법해석론에 대해 반발하는 경향이었는데, 프레드 로델의 논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 본인이 1939년에 책을 내면서 서문에 아예 "법률가들은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정할 정도였으니...


법을 다루는 법관들이 법현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그 구성원들을 계도하는 선지자의 위치에 서서, 문헌의 도식을 교조적으로 적용하는 태도에 대해 프레드 로델은 사정없이 비웃음을 날린다. 예를 들면,


"'과연 법관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당연한 질문이 뒤따른다. 극히 보기 드문 정직한 법관이 최근에 이에 답했다. "법관이란 주지사와 잘 아는 법률가다""(57쪽)


비록 미국의 법관선출제도가 한국과는 현격하게 다른 바가 있다고 할지라도, 저 인용문이 말하는, "법관이란 주지사와 잘 아는 법률가다"라는 말을 한국적으로 적용한다면, 작금의 사법농단 사태를 염두에 둘 때, "법관이란 대통령과 잘 아는 법률가다"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을까?


역자가 후기에서 설명하듯,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 이래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뉴딜정책이 보수적 사법부에 의해 빈번히 가로막히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당시까지 보수주의의 중핵이 되는 '자유방임주의'가 법정에서 작돋한 결과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에 대한 비판자들의 분노가 가히 상상을 절하는 수준이었던 듯 하다. 


한편 21세기 한국의 사법농단을 보자면, 이 농단세력들이 가진 생각의 핵심은 1930년대 미국 법관들과는 사뭇 다른 듯 보인다. 한국의 인민이 가지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분노 또한 1930년대 미국과 다를 바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분노가 가르키는 방향이 다른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보수적 법관들은 자유방임이라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사수하고자 하는 철학적 원칙이라도 있었겠지만, 21세기 한국의 사법농단 세력들은 오로지 개인적 안위를 일선에 올려놓은 외에 어떠한 철학적 원칙이라도 있었는가?


그러다보니, 물경 80년 전에 프레드 로델이 제시한 충격요법이 아주 그럴싸하게 설득력을 갖게 된다. 프레드 로델은 법률시스템 자체를 붕괴시켜버리자고 주장한다. 법률이라는 고답적인 형식을 해체하고, 제도적 용어용례를 아주 편하게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으로 바꾸고, 당연히 그렇게 되면 누구나 다 법을 알게 되니 법률가가 필요없고, 법률가가 필요 없으니 사법부도 필요 없고...


물론 어떻게 되든 '법'적 역할을 하는 규범은 있어야 하며, '사법적 판단'에 버금가는 판결구조는 있어야 한다. 다만 그것을 지금과 같이 정형적인 사법구조가 아닌 보다 열린 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에 대해 프레드 로델은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있는 거다. 이 책의 11장은 제목 자체가 아예 "단언컨대, 법을 버리자"이다.


이게 홧김에 내지르는 말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제안이라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1957년에 책을 다시 내면서, 프레드 로델은 39년에 했던 주장을 전혀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한다. 재판이 나온지 57년만에 한글 번역판으로 내 손에 쥐어진 지금, 프레드 로델의 주장을 나 역시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 아이디어가 전혀 빛바래 보이진 않는 것은 현실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땝문이리라.(이 책은 원래 영남대 박홍규 교수가 1985년에 번역을 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역자 후기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주술가가 되어버린 법률가들과, 주술로 변질된 법을 보는 건 저자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듯 하다. 그러나 1930년대에 제출되 아이디어, 즉 법을 폐하라는 그 발상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 생명력을 가져야 할 상상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