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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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노동권과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구설에 오르내리는 한홍구 교수지만, 그가 쓴 '사법부'는 이래 저래 한국의 현재 사법부가 처한 불안한 지위를 역사적으로 확인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주로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의하여 어떻게 좌우되었는지를 사건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부당한 권력의 요구에 저항하는 개별 판사들의 소신과 용기, 그러한 개인들의 도전이 구조적으로 부서져 나가는 고통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특히 사회적으로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루어진 조작간첩사건들의 내막을 보게 되면, 사람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 전락시키는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반민주 정권의 폭력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그러나 악의 본진이었던 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살면서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누구보다 영달을 누리고 있고, 이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없던 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경주한다. 그럼으로써, 죄의 몫은 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저지른 자가 오히려 죄 없는 자들을 향해 깨끗하게 살 것을 호통치는 희한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한홍구는 책의 말미에서 주목할만한 경향을 확인하면서, 과거와 달라진 현실을 우려한다. 즉, "1970, 1980년대와 비교해 외압이 가해지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은밀한 공작정치를 통해 압력이 가해졌다면 이제는 노골적이고 원색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상황이다(396쪽)."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방안에 대해 한홍구는 "법관 개개인이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으면 지켜낼 방도가 없다"라고 한계를 긋는다는 것이다. 결국 구조의 왜곡을 혁파하는 건 개개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게 되는데, 이것은 현재 확인되고 있는 사법농단사태를 염두에 두면 도대체 답이 되질 않는 처방이다.


결국 사법부의 오랜 왜곡을 극복할 방법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하여 선출된 권력에 대한 그것 이상의 감시와 민주적 견제가 이루어지는 것밖에는 없지 않는가? 한홍구가 본 책에 스록된 일련의 글들을 언론지상에 낼 때, 그 특집의 제목이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였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말은 전두환 정권 초기 퇴임한 이영섭 대법원장의 퇴임사에서 나온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영섭 전 대법원장은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법농단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따위 사법부에게 법적 정의의 저울질을 맡기고 있었는가라는 '회한과 오욕'의 심정이지 않을까. 왜 여전히 부끄러움은 인민의 몫이며, 그저 자기 자리에서 사는데 바빴던 인민들이 회한과 오욕으로 점철된 감정을 느껴야만 하나?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이 책은 특정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고 싶을 때 특히 유용하겠다. 앞으로도 자료로서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언론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낸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조금은 난삽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일목요연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를 따질 일이 아니라면 그런 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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