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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이문구의 소설은 삶에 대해 경건하다. 그의 얼굴이 미남형이 아니듯, 그의 소설도 도시적이거나 미사어구로 치장돼 있지 않다. 항상 헝클어져 있는 머리, 서글서글한 눈동자, 작가의 인상처럼 투박하고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국어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 토속어에다가 육두문자의 걸쭉함이 소설 속 인물들의 만만치 않은 삶 속에 녹아 흐르고 있다.

<관촌수필>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1편 일락서산은 반상 의식에 묻혀 있던 지방 토호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디 족보만은 잘 간수해야 허느니라…… 단 한마디뿐이었다. 족보, 그것은 완전히 망해버린 가문을 최후까지 지켜보다 떠난 할아버지에게는 논문서나 집문서보다도 소중한 가산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P.40

조부는 주인공의 유년 시절 교육을 책임지는 정신적 근원이 동시에, 남로당 지하 조직원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아버지의 정서적 빈자리를 채워주는 심정적 기능자였다. 하지만 이것이 반상의 의식에 사로잡혀 시대에 역행했던 할아버지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제2편 화무십일은 6.25전쟁의 발발과 함께 주인공 집안의 몰락, 거기에 덧붙여 피난민이었던 윤영감네 가족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펼쳐진다. 조부마저 타계하고 아버지의 행방마저 전쟁의 와중에 묘연해진 이후, 주인공의 집안은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처지로 몰락한다. 집안의 생계를 조부에 대한 전관예우란 명목으로 향교의 비축미에 의존해야만 하는 생활로 떨어지고 만다.

제3편 행운유수는 옹점이라는 주인공 집안의 식모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는 옹점이를 얘기하면서 계급과 같은 의식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역사의 변화와 함께 옹점이를 유년 시절부터 소년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벗이 되어준 지인(知人)으로서 바라본다.

제4편 녹수청산 또한 대복이라는 사내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시골 총각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5편 공산토월은 <관촌수필> 여덟 마당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다. 일락서산에서부터 출발한 봉건사회의 신분적 유습이 와해돼 어떻게 인간적으로 극복되어지는지를 극적인 드라마로 펼쳐진다.

제6편 관산추정은 복산이 아버지, 유천만의 이야기다. 마을에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사람, 흔히 소금 같은 존재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추석이나 음력설을 하루 이틀 앞두고 동네에서 소나 돼지를 잡아 밀매한다 하여 가보면 입술과 턱주가리에 붉은 칠을 한 채 칼잡이로 설치던 것도 유천만이었다
- P. 281

<관촌수필>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도시적인 삶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과연 우리가 잃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기쁨인 동시에 행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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