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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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자 이상하게도 왈칵 솟구쳤던 화가 사그라들고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 자리에 있으면 터져버릴 것 같아서, 터지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두려워서, 나는 농밀한 슬픔을 품은 채 아버지가 사라진 후 오랫동안 비어 있던 서재로 스며들었다.

 

 (…) 외할아버지가 쏟아냈던 사나운 말들 가운데 이런 말들이 기억난다. "물러터진 놈 같으니. 하청업자한테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는 게 말이 돼? 칭얼댄다고 다 들어주면 그자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하나를 달라고 해서 하나를 주면 고맙다고 하고 물러갈 것 같아? 세상을 어떻게 그렇게 몰라. 굽힐 때 굽히고 밟을 때 밟아야지. 그게 세상 이치인데. 굽힐 데서는 뻣뻣하게 머리 쳐들고 있고, 밟아야 할 데서는 굽신굽신, 무슨 바보짓이야. 발지 않으면 밟히는 건데, 그래서 밟는 건데,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인정하고 사죄하고, 각서 써주고, 원하는 대로 협상해주고, 그렇게 해서 돈을 어떻게 벌 건데. 회사 말아먹을 작정이야? 사업이 무슨 소꿉장난인 줄 알아? 내 밥 먹은 지 몇 년인데, 어떻게 나아지는 게 없어. 어떻게 맨날 그 모양이야. 발전이 없어, 발전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것이 그날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 아버지가 자기의 공간인 서재에서 밖으로 나왔다는 기억이 없다. 그 말을 들은 곳이 어디였는지도 선명하지 않다. 내가 서재로 들어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내가 들어가지 않았고 아버지가 나오지도 않았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 그 말을 들은 것일까. 아버지가 정말로 그 말을 하긴 한 것일까. 갑자기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날 밤 그 방의 고요와 어둠 속에서 내가 모멸감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이 방에서 견뎠을, 사는 일의 수치스러움에 대해서.

 

_이승우, 「모르는 사람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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