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끝없이 자신을 혁신할 수밖에 없다. 자기를 상투적 코드 안에 가두려는 문화의 추적을 피해 끝없이 탈주하며,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이성의 타자로 남으려 한다.
_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3』 中
☞ 문(文)으로 화(化)하고 마는 숙명에 함몰되길 거부하며 자신을 에워싸는 격(格)의 바깥을 사유, 탈주를 거듭하는 행위. 이름이 제게 이르기까지 멈춰 서서 기다림, 명명(命名)의 그물에 사로잡히어 붙들림, 이런 일체의 함락을 거부하는 몸짓, 미끄러지길 지속하는 것. 예술이라 이름 지음은 이러한 행위들에 뒤따르는 것 아닐지. 드러나 목격한 이후, 어림하게 된 이후에야 겨우, 이러한 어림을 가능케 하여준 것들과 행위들에 ‘예술’이라 이름하여 주는 것. 이름이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이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나아가는, 이 모두를 포괄하여 ‘예술’이라 이르는 것이라면!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안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 사이드
_귄터 그라스, 「밤의 경기장」 전문(‘2002 한일월드컵’ 축시)
☞ 예술인이야말로 항시 ‘off-side’일 테고 또 그래야만 진정 ‘예술인’이라 이를 수 있을 것.
미지(未知)인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을, 여지(餘地)로 드러내 보이는 것, 존재케 하는 것. 이를 먼저 보고[見] 드러내어 밝히기까지[明] 고독한 플레이를 그치지 않는 것. 만리(萬里) 밖, 그러니까 기실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여기는 상태를 흔들어 깨워 비로소 지각/ 마침내 인식하도록 돕는 이 행위야말로 예술이라면. 호오(好惡)로 가늠하고 찬반(贊反)으로 가르는 데에 얽매이지 않은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이러한 논란의 여지(餘地)를 끊임없이 생성, 불러일으키는 이. 자신을 에워싸려는 갖가지 그물을 벗어던지고 외려 둘러씌우는 그러한 윤곽들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며 그것을 풀어헤치는 작업을 그치지 않는 이. 그이야말로 ‘예술인’이라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루키야말로 이 예술인의 정의에 잘 들어맞는, 부합하는 이 아닐지.
분투(奮鬪)를 그치지 않는 고군(孤軍), 외로운 싸움이지만 피하지 않고 즐겨 감당하는 그.
가만히 그이가 낸 길을 따라가보는 것.
지금 당면한 일 가운데 할 수 있는 걸 감당해가며 묵묵히 따라가보는 것.
내가 그를 응원하는 방편이겠고, 그에 응답하는 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