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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 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김진주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10월
평점 :
페이지2북스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라는 책제목은 냉소적인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인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핵가족화, 일인가구의 증가 등으로 우리나라만해도 '개인주의'가 확산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때로 사람들은 '군중'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내기도 한다.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말이다. 개인과, 군중 속에 있는 개인은 다르다. 나 역시 이런 점이 늘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저자인 귀스타브 르 봉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귀스타브 르 봉은 1841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2024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를 읽고 있는 나는, 꽤 저자와 거리감을 느낄 법도 한데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현대인들의 심리를 쓴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인간의 본성과 군중의 속성, 심리를 제대로 꿰뚫고 있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온 것 같아도, 사실 변한 게 크게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인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는 이 책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지만, 이 제목이 책내용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내용을 어림짐작해서 '아무 생각없이 무리에 섞이기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라는 게 아닐까?' 정도를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틀렸다.
이 책은 그렇게 뻔하고 시시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초반부 몇 장을 넘어가야 흡입력이 생긴다. 초반부에는 다른 책들에도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저자가 바라본 군중 심리가 과연 천재적이라고 감탄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에서 진정으로 저자가 공들인 것은 개별적인 인간보다는 개별적인 인간이 군중이라는 집단에 들어갔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그러한 군중이 역사적으로 무엇을 해왔으며 장단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어렵고 복잡한 심리학, 사회학 이론을 붙이지 않아도, 저자는 생생하게 당시 군중을 설명할 능력이 있다. 내용을 중언부언 어렵게 쓰지도 않고, 에세이같은 느낌이지만 쉬운 내용이 아니다. 이게 이 책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군중을 왜 알아야 할까? 전 세계의 수장들, 종교의 창시자들, 제국의 창건자들, 신앙의 전도자들, 뛰어난 정치가들은 인간 심리와 군중의 정신에 대해 잘 알았던 사람이니 이러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군중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군중심리는 언제든 선동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치인이 군중심리를 잘 알고 있을 경우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가 되지 않을 사람도 자신이 군중이라는 집단에 속하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즉, 지배자이든 피지배자이든 자신과 타인의 집단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바로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라는 놀라운 책이다.
가끔은 정말 똑똑한 사람인데도 왜 무리를 짓고 무리 안에서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까하는 의문을 들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를 읽어보면 왜 이러한 사람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가하고 돌이켜보게 만든다.
저자는 많이 배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가 결정을 내릴 경우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중죄 재판소의 배심원단이 이야기했던 '대학 교수들의 모임이 구두장이들의 모임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인용하는데, 나도 크게 동의한다.
그래서 군중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역사가 광기에 휩싸이게 된 극단적인 경우가 이 책에 여러 번 등장한다. 그 중의 하나가 악명높은 집단, 나치이다. 나치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유대인과 슬라브인,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등을 무차별 학살했다. 저자는 이들 유대인들이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인들의 정을 나누던 이웃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하는 것을 방관했다. 슬프고 소름끼치는 일이다. 저자는 군중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그런 군중에 권력이 차례로 굴복한다면 또 다른 유사 사례들을 적잖이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개인이 아닌, 군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군중의 속성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현대인들은 군중심리로 발생한 비극적인 역사를 보면서 현대에 발생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얼핏 읽으면 저자가 군중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트주의자는 아니다. 저자는 제한 선거든, 보통 선거든, 공화국이든 군주국이든 관계없이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어느 국가에서건 군중 투표는 대개 민족의 무의식에 잠재된 열망과 욕구를 발산하고 있다고 썼는데, 대단한 생각이다. 결국 어떤 선거 형태이든, 정치 형태이든 간에 국가의 체제란 군중이 지닌 무의식의 집합체인 것이다.
오랜만에 고전 중의 고전을 읽은 기분이다. 세르주 모스코비치가 귀스타브 르 봉을 '대중 사회의 마키아벨리'라고 칭한 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이런 책을 번역하고 소개한 페이지2북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런 지적인 도서가 앞으로도 많이 출간되기를 바란다.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를 읽고 한 층 더 똑똑해진 기분이다. 군중의 실체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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