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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이 포스팅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바움가트너 내부에서 뭔가가 변하기 시작한다. 연결이 끊긴 전화기의 벨이 울린 게 아니라는 것, 애나의 목소리가 들린 게 아니라는 것, 죽은 자가 의식적으로 비존재 상태로 계속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꿈의 내용이 아무리 비현실적이었다 해도 그는 그것을 현실적 경험으로서 체험했으며, 그가 그날 밤 잠에서 살아낸 것들은 대부분의 꿈과는 달리 그의 생각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79p /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의 생전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를 읽었습니다. 독일어로 Baum은 ‘나무’라는 뜻을, Gärtner는 정원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원사’라는 특이한 성을 가진 인물인 ‘바움가트너’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데요. 그는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노교수입니다. 보통 노교수라고 하면 별 일 없이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물론 바움가트너 역시 별다른 굴곡없는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는 합니다. 10년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바움가트너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상실을 일상 생활 속 곳곳에서 불현 듯 지속적으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바움가트너의 일상을 통해 기억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바움가트너의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 것 같아도 곧 과거로 돌아가버리고 맙니다. 누군가를 만나도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교하게 되고, 아내와 했던 일들이 자꾸만 머릿 속에서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부재를 매 순간 느끼고 외로움에 사무쳐 있는 바움가트너는 UPS 직원 몰리를 보면서도 아내를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는 이 여자에게 남몰래 빠져 있기도 합니다. 몰리는 흑인이고 아내는 흑인이 아니었지만, 몰리의 눈에는 죽은 애나를 떠올리게 하는 뭔가가 있다고 바움가트너는 생각합니다.

소설의 중반에 이르면 바움가트너의 연애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을 생각하는 등 평범한 사람들이 고민하고 겪는 일들이 바움가트너의 기억에서 마치 현재의 일처럼 하나씩 보여집니다. 아내의 부재에 대해 깊은 상실감을 느끼는, 점잖은 노교수는 어느덧 사랑과 열정이 넘쳤던 젊은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여 빛나던 시절의 기억을 누비고 있습니다. 저는 바움가트너의 기억, 꿈, 감정들을 보면서 한 사람의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맞았다가 노년이 되어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해도 끝내 살아가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움가트너>는 역시 폴 오스터다운 대작입니다.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실의 고통을 너무나 잘 그려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마음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차오르기도 했는데요.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일독할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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