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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짓눌린 영혼에게 길은 남아있는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4월
평점 :

기차가 도착하여 멈췄다. 그들은 승차했고, 교장은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기차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보이는 계곡 너머로 도시와 강이 점점 멀어졌다. 이 여행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갑자기 활기를 되찾았다. (중략) 반면 한스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27 p /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랭브릿지 옮김 /리프레시

청춘의 우울과 방황을 그린 고전 중의 고전,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이미 많은 번역서들이 출간되었지만, 최근 랭브릿지 팀에서 번역하여 리프레시 출판사에서 출간된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 특유의 스타일을 헤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도 살아 있어서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인 한스 기벤라트에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입학성적 ‘차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음에도 그곳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숨막히는 학업,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어서 겪는 답답함이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되었는지, 저도 다시 오로지 ‘공부’만이 가장 중요했던 청소년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는 한스의 이야기가 아닌, 한스의 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명예욕을 가지고 있는 그에 대한 설명은, 읽다보면 소름끼치게 현대의 학부모들과 많이 닮았습니다. 요즘도 많은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기회를 박탈해버리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자녀를 키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었기에 청소년기 이후에 방황을 했고, 지금도 저의 소질을 밀고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인지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스를 보면서 제가 겪었던 청소년기 시절,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한스처럼 억압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많은 청소년들이 떠올라 무척 슬퍼졌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가 발표된 해는 무려 1906년인데, 2025년인 지금도 왜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한스는 신학교에서 자신과 다른 성향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친구인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고, 나중에 신학교를 나와서는 엠마라는 여자와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하일너와의 만남도, 엠마와의 사랑도 모두 짧게 끝나고 말지요. 신학교를 나와서 한스가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갔으면 좋았을텐데, 결국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되는 것 또한 너무나 슬펐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더욱 적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수 있는 조건이나 환경이 전무하니까요.
이 소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억압하는 어른들이 꼭 읽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스의 아버지, 신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보통의 어른들이지요. 이 소설은 비극적이고 슬프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회에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소설의 이야기가 1900년대 초반의 이야기로 멈추었을까요. 많은 어른들이 이 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길인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헤르만 헤세의 명작을 현대적인 번역으로 읽을 수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리프레시 출판사의 번역본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