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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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이 네 글자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단지 김숨작가의 신작이라기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단어의 뜻을 알고 난 뒤에는 머릿속에 네 글자가 하염없이 떠다녔다. 그 옷을 부르는 이름이 있었구나. 


간단후쿠는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입고 생활했던 간단한 원피스형 옷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에 의해 위안소로 끌려간 모든 여성들은 이 옷을 입고 생활했다. 위안부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기록물을 찾아보면 늘 보이는 바로 그 옷이다. 언제든 일본군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그 옷. 군인에게 제공된 하사품으로써 본분을 다 하기 위해 입게되는 그 옷. 간단후쿠도 위안소도 쉽게 떠날 수 있을것만 같지만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곳이었다. 죽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으며 죽더라도 이제까지의 생을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방식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곳.


만주의 그리고 그 밖에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들의 위안소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까지 수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기록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너무나도 잔인해서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용기가 차마 나지 않는 그런 곳이다. 그곳을 김숨 작가는 아주아주 깊게 들여다봤다. 소녀 하나하나를 자세히 바라보고 기록했다. 가명의 이름으로 이름지어진 소설속의 인물들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생존자는 증언으로 그 기록을 남겼으나 살아남지 못한 자는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삶을 새롭게 조명받는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내용을 다룬 책을 읽었다. 매리 린 브락트의 『하얀 국화』라는 소설이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엄마의 고향을 방문하고 엄마의 나라에 있었던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접한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와 4·3 사건을 주목하여 제주의 한 자매를 둘러싼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그려냈다. 언니인 하나가 동생 아미를 구하기 위해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가 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간단후쿠』속 요코와 다른 방의 여러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읽다보면 어느새 숨이 턱 막히고 잠시 숨을 돌려야만 하는 그런 여성들의 삶.


그렇다면 우리는 이토록 고통스러운 여성의 삶을 왜 읽어야만 하는가. 과거는 순간이 아니라 길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길. 과거를 자각하지 않거나 지워버리면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길도 사라진다.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만 하는, 다소 거칠고 위험할지라도 꼭 지나쳐 가야만 하는 길이다. 여성의 길은 언제나 가시밭길이었다. 여성의 길은 언제나 피투성이었다. 이 길을 외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길은 조금은 다듬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거친 산도 여러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 길을 만들어가면 어느새 완만하게 다듬어진 길이 된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우리에게 처한 문제를 직면함으로써 길을 다듬는 과정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오래 전 김숨 작가의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인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김복동 증언집)』,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길원옥 증언집)』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와 비슷한 호흡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혹시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안부의 삶에 관심이 생긴다면 위의 두 책 또한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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