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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보이즈
미카엘 니에미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이토록 매혹적인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스웨덴 작가 미카엘 니에미의 책 한 권 속에서, 그가 그려낸 마법 같은 순간 속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가며 웃음과 눈물로 그려낸 이야기들 속에서 지나간 시간의 나와, 그리고 그 시간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동시에 만났다. 이 작은 책 속에서 수많은 생각의 물결들을 만났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 그리움과 상실감,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불안했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보냈던 방법들에 대해서. 그것은 따뜻했고, 또 한편 서늘했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다. 즐거웠고 슬펐다. 그 다채로운 감정의 물결들 속을 서성거렸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그래서일까. 나는 자꾸만 책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다시 피얄라로 들어가고 있다. 먼지가 폴폴 날릴 것 같은, 스웨덴의 깡촌이라 불리우는 피얄라는 곳. 1960년대의 피얄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스웨덴 사람이 되는 데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소수의 사람들이 사는 불모의 습지’인 그 곳, 세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기엔 너무 뒤쳐진 곳. 그 곳에는 불안한 사춘기를 경험하고 있는 소년들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게 되는 불안한 시간들 속에 비틀스를 연주하는 소년들. 여느 사춘기 소년들처럼 신체적 변화를 경험하고 성적인 관심에 눈떠가는, 그리고 점차 지옥과도 같은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가는 소년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지나간 과거 속으로 향하는 내가 있다. 마이크 대신 두루마리 휴지를 움켜쥐고서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엘비스를 따라해 보는 조그만 소년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노래를 꽥꽥 불러대었던 두 소년의 첫 무대를 상상해 보며 웃음 짓는 내가 있다.

자칫 평범해질 수도 있는 성장의 에피소드들이지만, 이 소설을 매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스웨덴의 외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생생한 묘사, 각기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사랑스러운 인물들,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가는 작가의 마법 같은 문장들일 것이다. 그 마법 같은 문장들 속에서 세상에 눈떠가는 소년의 모습 속에 오버랩 되는, 과거를 추억하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본다. 서글픈 일상 속에서 떠올려보는 지나간 시절의 행복한 삽화들 속에 또다시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오버랩 된다.

웃음과 눈물, 현실과 환상, 그리움과 상실감,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가며 성장의 시간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추억의 시선 속에서 미래를 기다리는 소년의 기다림이 매혹적으로 겹쳐진다. 언젠가 만나게 될 자신의 모습 속으로 들어가는 매혹적인 순간. 그 매혹적인 순간, 나는 어린 시절 미래의 나를 불안하게 상상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느끼는 그 모든 감정들에 당황하고 불안해했던 내 모습,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간을 불안하게 상상하고 있던 내 모습. 내 속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던 시간들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미 작가의 마법에 빠져든 것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느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저 읽는 것에서 넘어서서, 느끼게 하고 빠져들게 하는 마법 같은 힘 같은 것. 책장을 넘길수록 아쉬워졌다. 끝 페이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아쉬운 적이 있었을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바라보는 아련한 감정과도 닮아 있다.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던 시간을 바라보는 감정들. 행복하면서도 서글픈 그 엇갈린 감정들.

책 속의 소년, 마티는 비틀스의 음반을 처음으로 듣게 되면서 음악이 선사하는 황홀한 경험을 체험한다. 그 멈출 수 없는, 영원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 것 같은 아찔하게 행복한 느낌. 행복감으로 터져버릴 것만 같은 그 느낌. 이 책을 펼쳐든 당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것이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채색된 그 매혹적인 시간으로 당신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알싸한 기억의 달콤 씁쓸한 맛으로 당신을 물들일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달콤 씁쓸한 기억의 감정들 속으로 자꾸만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멈출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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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에 관해 생각하려고 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물음표가 되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네가 내 마음에 들어왔을까. 왜 사랑에 빠지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될까. 그리고 나를 들뜨게 했던 사랑이 어느 순간 식어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려고 할수록 더 복잡한 미로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았던 느낌들 속에 알랭 드 보통이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사랑에 관한 특별한 만찬에 우리를 초대한다.

사랑에 관한 소설 같기도 하고, 사랑에 관한 철학 사전 같기도 한 이 책은 소설과 철학적 사유 속을 아슬아슬하게 오고 간다. 철학적 사유 속에 녹아든 사랑이라 지루할 법도 하지만, ‘클로이와 나’의 연애이야기를 집어넣음으로써 달콤한 연애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친절한 알랭 드 보통씨는 달콤한 구름 속을 걷는 듯한 기분에 취해 보지 못했던 사랑에 관한 비밀들을 슬쩍 알려주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랑의 속성에 대해 넌지시 일러주기도 한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나는 내 어수선했던 사랑에 대한 감정들이 희미하게나마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사랑에 접근해나가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나를 늘 물음표에 빠뜨리곤 했던 사랑이, 사랑에 대한 감정들이, 그리고 사랑의 과정이 명확하진 않더라도, 조금은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알랭 드 보통은 첫 만남에서부터 이별까지 연애의 전 과정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 갈망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대상,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사랑하는 사람에서 사랑받는 존재로 이동해가는 과정, 그리고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사소한 불일치들, 사랑을 표현하는 과정, 사랑의 오차와 불협화음이 쌓여 사랑이 이탈해가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랑을 했던 사람이나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이 사람, 혹시 내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것 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클로이와 나’의 연애는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적당한 환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을 관찰하며 끊임없이 나와 그 대상간의 저울질을 계속한다. 내 불안한 자아와 사랑의 대상간의 탐색 끝에 사랑에 이른다 해도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나’는 클로이를 사랑하는 ‘나’를 생각하고 클로이 속에 있는 ‘나’를 생각하며 또한 클로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사랑에 따르는 소소한 엇박자와 그것들이 쌓여 맞이하는, 사랑으로부터의 자연스러운 미끄러짐. 그리고 또다시 시작되는 사랑까지 ‘나’의 사랑에 관한 사색은 이어진다.

사실, 그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에 관한 마주하기 싫은 사실들과 마주치게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맞추어 내 자아가 불안정하게 움직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에서 사랑받는 사람으로 이동되어갈수록 사랑의 욕망이 사라져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취향과의 불일치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좌절감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랑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안과 좌절 같은 것들이 사랑에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과정임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덧없어 보이고 어느 순간 우르르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칸트, 플라톤, 마르크스 등을 초대하고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는 다양한 메뉴로 이루어진 사랑의 만찬이 계속될수록 우리는 사랑에 감추어진 씁쓸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사랑에 관한 해박한 지식들을 사랑에 감추어진 질문들에 쏟아 부을 때,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랑을 보답 받을 때 나타나는 잔인한 역설, “이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나,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취향과 어긋나 버릴 때 생기는 “어떻게 이 여자는 이런 구두와 나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을까?”같은 질문, 그러한 사소한 불일치들이 쌓여 결국 “내가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저 여자일까?”같은 질문들 속에서 사랑에 관한 사유는 점점 더 복잡한 미로의 양상을 띤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를 질문들, 그리고 이야기들. 그렇지만 알게 되었을 때의 지적인 자극 또한 만만치 않다. 알게 되면 더 잘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알랭 드 보통식의 지적인 만찬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충분하다. 이 책의 빠뜨릴 수 없는 매력이 알랭 드 보통의 재치 있고 유쾌한 글발이 아닌가 말이다. 무거운 철학적 사유에서 일상적인 사랑의 단계로 가뿐히 넘어오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사랑의 달콤한 맛, 씁쓸한 맛, 매콤한 맛, 짜디짠 맛까지 골고루 버무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알랭 드 보통에게 점점 빠져들게 된다. 짜디짠 맛마저 남기기 싫은 느낌이 든다.

사랑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만남에서 이별까지 사랑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와 닿는 문장들로 담아낸 알랭 드 보통식 만찬은 맛나고 즐겁다. 단, 초대에 응하기 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알랭 드 보통의 재치가 넘치고 그의 지적인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해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한 요리사가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에 관한 우리의 입맛도 제각각이라는 점도 빠뜨릴 수 없겠다. 

알랭 드 보통에게 살짝 물어보고 싶어진다. 사랑을 반복해도, 사랑이 감추고 있는 것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해도 왜 여전히 똑같은 문제들에 아파하고 고민해야 하느냐고. 풍성하게 차려진 사랑의 철학적인 향연 속에서 노닐다 온다고 해도 여전히 사랑은 희미한 안개 같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명확한 지도가 없는 길을 반복해서 가는 것만 같은 느낌, 암호를 풀 수 없는 게임을 하는 것만 같은 느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고 할까.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사랑인 걸까.

그래서 책에서 벗어나 나에게로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사랑 속에서 길을 잃고 마는 길치가 되어버린다. 나의 얘기로 돌아오면 늘 새롭고 낯선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사랑, 사랑의 과정들. 사랑에 관한 풍성한 식사가 끝난 후에 알랭 드 보통이 건네주는 디저트는 역설적으로, 그 복잡한 미로 속에서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랑을 했거나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은 특별한 초대가 될 것이다. 그저 희미하게 느끼기만 했던 사랑을, 사랑의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사랑에 관한 지적인 허기에 시달린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약간의 운이 따른다면, 희멀건 거품 같았던 감정들 속에서 당신이 찾고 있었을지도 모를 사랑에 관한 생각들을 건져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알랭 드 보통의 글 어딘가에서 의외로 당신이 찾고 있던 사랑의 해법을 발견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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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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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테러가 이젠 익숙한 일상처럼 읽히는 곳,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작가는 그 끔찍한 현실 속에 한 소녀와 청년을 담는다. 유리병에 담은 편지를 통해 우연히 이메일을 주고받게 된 이스라엘 소녀 탈과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 소설은 뉴스를 통해 익숙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이라는 복수의 개념을 거둬들이고, 한 개인의 작은 삶에 주목한다. 정치적 혼란에 뒤엉킨 현실에서 한 개인의 삶에 렌즈를 갖다댄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를 죽이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고 고통 받는 작은 개인에 대해 말한다. 소설은 단순한 숫자로 말해지는 무기력한 몇 줄짜리 뉴스 속에서 아프고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을, 나와 닮은 한 개인을,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뉴스 속의 숨은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지겹게 싸우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닮아 있는 너무나 미약한 한 사람이다.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반짝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스라엘 사이트에 접속해봤어. 희생자 명단과 장례식 시간을 볼 수 있었지. 그걸 네 번이나 읽었어. 가족들이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던 39세의 여자, 캐나다 출신의 사회복지사, 컴퓨터를 전공한 프랑스 출신 남학생, “삶과 사람들을 좋아했다”던 38세의 러시아 출신 여자, 23세의 여학생, “착한 사람, 괜찮은 남자, 좋은 남편”이었다는 루마니아 출신의 42세 남자, 사람들이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던 53세의 러시아 출신 여자, 왕년에 유도 챔피언이었던 그루지야 출신의 남자, 결혼한 지 1년된 24세의 여자, 불법 노동자였던 에티오피아 출신 여자, 임신인지 확인하러 병원에 가는 아내를 바래다주었던 48세의 남자.” -책 속에서

이 소설은 일부러 눈물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적인 뉴스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돌연 눈물을 터뜨리게 만든다. 우리가 뉴스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담담하게 꺼내놓는다. 일상적인 편지 형식 속에 뜨거운 눈물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놓았다. 그 뜨거운 눈물은 아주 일상적인 행복을 짓누르는 현실의 무거움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에 존재하는 무거움. 그리고 그 무거움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는 개개인의 삶, 사랑, 꿈.

처음에 유리병에 담긴 희망은 무모해보였다. 나임도 처음에는 삐딱하게만 나왔으니까. 그렇지만 모니터 뒤에서 나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그 경계 뒤에는 그저 나와 비슷한, 내가 꿈꾸는 것처럼 꿈꾸고,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나와 닮은 친구가 있다. 경계의 밖으로 나와서, 그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나와 네가 ‘우리’가 되어간다.

누군가의 이메일과 일기를 들여다보듯 비밀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책을 읽고 나면 ‘소설이란, 그리고 문학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작가의 편지에 담겨 있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들을 분리하고 있는 경계선의 이쪽과 저쪽에서 생겨나는 증오와 원한, 그 한가운데에서 양쪽 모두에 자신을 동일시해보는 것,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누구한테도 허가를 받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보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는 작가는 문학의 역할이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어쩌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좋다’, ‘나쁘다’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내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 어떤 편견 없이 다가가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작은 시도 같은 것. 소설이란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벗어나 나의 바깥으로 가기 위한 작은 시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 이스라엘 소녀 탈이 유리병에 담은 편지도 ‘내 안의 너’에서 ‘나의 바깥에 서 있는 너’를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는 아니었을까.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정보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관해서 우리에게 많은 정보들을 준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전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보려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런 넘쳐나는 이미지들 속에서, 그렇지만 정작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에 관해서 우리가 느끼고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것들을 유리병에 담아 우리에게 건네준다. 작가의 말처럼, “그래서 이 책은 하나의 ‘유리병’이 되었다.”

나와 다른 곳에 있는 너를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가 유리병에 담겨져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나임처럼, 그 유리병을 발견하는 행운을 당신도 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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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한 초보 부부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의 가족 만들기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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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잘 알 것이다. 꼬박꼬박 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쉽게 시들어 버리는 건지. 그러고 보면 무언가에 정성을 쏟는다는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화분이 곁에 없으면 허전한 건 그것들이 주는 생활의 소소한 활력에 길들여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개를 기르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개를 기르는 일은 귀찮은 일이지만 개가 주는 보상은 그것을 거뜬히 뛰어넘는다. <말리와 나>는 개를 기르는, 그 끔찍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일상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라고 해도 될 만큼 말썽꾸러기 개에 관한 사랑 고백이기 때문이다. 보는 순간 반해버린 개, 말리. 그렇지만 말리는 그야말로 대책 없는 개다. 말리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폭풍이 지나간 자리 같았고, 말리를 두고 집을 나서면 항상 불안해해야 했다. 쓰레기통을 뒤집고 아이들의 음식까지 시시탐탐 노리고 심지어 천둥이 치는 날엔 집안을 엉망으로 부수어 놓는다. 게다가 그 유별난 성격으로 인해 조련사도 포기하고 훈련소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지나치게 쾌활한 말리의 성격과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행동들 때문에 말리는 한때 그로건씨 집에서 쫓겨날 뻔한 위기를 맞지만 그로건씨는 끝내 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훈련도 가까스로 마칠 수 있게 되고, 사람을 향해 뛰어오르는 나쁜 습관도 고칠 수 있게 된다.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라고 해도 좋을 말리는 그렇게 그로건씨 가족의 소중한 일원이 되어 간다. 

무엇이든 부수어버리는 말리로 인해 돈도 많이 들었고, 외출할 때면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그로건씨는 말리가 주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할 만큼 충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제니가 아이를 잃고 상심해 있을 때 그녀를 따뜻하게 위로해준 것은 듬직한 말리였다. 말리에게 기대어 울며 슬픔을 삭이는 장면은 인간과 개의 따뜻한 교감을 느끼게 했다. 말리는 그저 본능적으로 그녀의 슬픔을 느꼈으리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그저 아무 말 없이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존재. 말리는 그런 존재였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위로란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가식적인지.

아기 기저귀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말리, 항상 페르시아 카펫을 조준해서 먹은 것들을 토하는 말리,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게 해준 철제 감옥에서도 탈출하는 능력을 보여준 말리, 아기의 음식들을 가로채 먹는 것도 모자라 아내 제니의 금목걸이, 심지어 고양이의 배설물까지 먹는 말리. 그런 말리이지만 위험한 상황에선 단호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돌변하는 듬직한 친구가 된다. 말리는 그로건씨 집에서 그 존재 자체만으로 가족들에게 듬직한 존재였다. 이웃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해도, 불안해하지 않았던 건 말리 덕분이었다. 뒤숭숭한 마을 분위기 속에서도 말리가 있어 안심할 수 있었으니 말리는 그로건씨 가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존재였다. 말리가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을 땐 마치 왕족이라도 된 것 같았다는 그로건씨 가족의 뿌듯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리는 그렇게 멍청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개였다.   

책을 읽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말리와의 이별 장면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눈물이 난다. 개의 삶은 너무나 짧다.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기르고, 그 이별에 가슴아파한다. 그리고 그 이별은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그렇기에 이별은 더 슬퍼질 수밖에 없다.

그로건씨는 말리를 묻고 나서, 가슴 아프게 말리를 추억한다. 물론 말리가 죽었다고 해서, 말리에 관한 추억을 곱게 포장하지는 않는다. 골치 투성이에 사고도 여러 번 쳤고 명령과 복종이 무엇인지 끝내 몰랐지만,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개였다고. 말리는 그로건씨 가족들에게 말 잘 듣는 개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마음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로건씨는 말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음을, 그리고 멍청한 개로부터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말리는 단순하게,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삶의 즐거움, 여러 어려움 앞에서도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법, 우정과 헌신, 변함없는 충성심을 가르쳐 주었다고.

개를 기르는 삶은 평범한 일상에 편안한 색깔을 덧씌운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식물을 기르며 그 기분 좋은 향기와 신선한 활력에 행복해하는 것처럼, 개를 기르는 일상은 그보다 더 활기찬 생동감을 안겨다주는 것 같다. 다소 시끄럽고 분주해도 개가 주는 편안함, 듬직함은 우리의 메마른 일상을 더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우리는 개가 주는 그 듬직하고 편안한 느낌에 길들여져 버리면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 길들여진 편안함과 듬직함 때문에 우리는 개를 기르는 것이 아닐까.

개를 추억하는 글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 책이 사랑스러운 매력을 가지는 이유는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 유쾌하고 더 즐겁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마음 한 켠이 시큰거릴 정도로 감동적이다. 마치 말리를 직접 기른 것처럼, 말리의 일생을 만나고 나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 힘든 일상에서 그저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개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일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어쩌면 개를 기르는 것은 단순한 편안함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이 책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말썽꾸러기 개와 인간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가슴시린 여운을 안겨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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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평사리 클래식 2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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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라는 제목이 주는 묘한 느낌과 조나단 스위프트에 대한 문학적 호기심은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던 점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어린 기대가 조금은 무너졌던 것이 사실이다. 유쾌하면서도 문학적인 느낌의 책이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들이 지시조의 문장들로 계속된다.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에서부터 집사, 요리사, 정복 착용 하인, 마차꾼, 말구종, 재산관리 집사, 문지기, 침실 담당 하녀, 청소 담당 하녀 등 다양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들로 구성되어 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땐 뻔뻔하게 적반하장으로 나가라, 서너 차례 부름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타나지 마라, 당신에게 특별히 할당된 고유 업무 외에는 그 어떤 업무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마라, 동료 하인 누군가가 주인님께 못된 짓을 하는 걸 보더라도 못 본 체 하라, 같은 지침들은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면서 하인들의 실상에 대한 폭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어떻게 하면 주인을 잘 속이고 편하게 하인 노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면서, 바로 그와 같은 하인들의 실상을 독자에게 고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인들의 실상을 폭로한 데에는 스위프트 개인의 이력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못된 하인들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하인들의 실상을 세세하게 폭로하고 있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기보다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인간상과 인간관계를 2천 년대 지금 우리 모습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가 더 적합할 것 같다. 주인과 하인으로 대변되는 관계의 어긋남은 현재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 누구나가 느꼈을 법하니 말이다. 주인을 더 잘 속이기 위한 방법들, 동료들과의 바람직한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는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유용한 지침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하인들에 대한 조롱 섞인 풍자와 아울러 18세기 영국 사회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지시조의 문장들을 읽어내려 가는 것은 약간 지루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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