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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키워드가 있다. 바로 ‘번 아웃 증후군’이다.
그 뜻을 찾아보면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마치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무력해지는 증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아직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는 29살, 30살을 앞두고 6년간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번 아웃 증후군’이었던 것 같다. 번듯한 4년제 유아교육학과를 나와 부푼 꿈을 안고 현장에 발을 들였을 땐 내가 기대한 현장과 달라 일하는 내내 굉장히 괴로웠다. 온전히 아이들만 보육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며 각종 서류에 시달려 보육시간이 끝나고 매일 야근하기가 일수였고, 사소한 문제들로 하루가 멀다 하게 컴플레인을 걸어오는 학부모들에게 시달리며 아이들의 거울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초임교사의 부품 꿈은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그렇게 그동안 벌어둔 돈을 까먹으며 백수생활의 허울 좋은 명분인 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지쳐있던 심신을 달래며 매일을 어영부영 보내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구로 디지털 단지’에서 it업계에 몸담은 주인공의 20대부터 40대까지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난 이 책의 주인공이 마치 내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직종은 너무나도 다른 양극이지만 주인공의 일대기가 나를 닮아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20살에 사회에서 성공한 번듯한 남자 친구를 만났다가 이별하게 되는 스토리나 회사 내의 정치에 밀리거나 혹은 그 가운데에 들어가 상처받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스토리, 30살에는 마음이 맞는 전 직장동료와 게임을 개발하여 짜릿한 성공을 맛보았지만 이마저도 불법을 일삼는 우두머리로 인하여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스토리 등이 그렇다. 사회의 쓴맛에 상처받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세상의 중심은 나였던 어릴 적 자아에서 벗어나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나는 티끌만 한 존재일 뿐이구나 깨닫고, 단순히 생활을 연명하기 위해서는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취미나 사회관계보다는 그저 돈이 최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을 보며 나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되도록 약자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it 종사자가, 여성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서사로 한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한 소설이 될뻔하였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나는 위로받았다. 주인공은 성공도 맛보았다가 실패도 하고 지금은 백수가 되었을지 언정 그렇게 끝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구디 얀다르크>, 잔다르크에서 온 주인공의 별명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미래와 닮아 있다. ‘구디 얀다르크’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노조의 중심에 서서 노조의 부흥에 앞장서지만 끝내는 그런 노조의 정치 희생양이 되고 연대감을 느끼던 그곳에서 팽 당하고 만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에 나온 잔다르크를 원망하며 본인은 얀다르크가 되지 못하였다고 말하지만 나는 구디 얀다르크라는 별명이 주인공의 정체성을 썩 괜찮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벌이며 그렇게 살다 보니 구디 얀다르크가 된 주인공이 지금 현재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회사원들의 모습과 닮아 있고 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백수가 되고 카드론으로 생활을 연명하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여도 끝내는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잔다르크가 전쟁에서 연승했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었던 승리자의 표정, 그 표정을 본 병사들은 자신 있게 전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일에 성공했을 때 다음 전투를 신경 쓰느라, 혹은 닥쳐올 위기를 미리 걱정하느라 전쟁에서 패배하고 늙은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의 꿈에 나온 잔다르크는 이렇게 속삭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를 지켜봐”. 주인공은 소설의 말미에 이 이야기를 이해하였고 나도 함께 동화되어 잔다르크의 말을 되새겼다.
“실패하면 어때? 다시 하면 되잖아. 지치면 어때 잠깐 쉬었다가 가면 되잖아.”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야지 내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책이다.
나와 너무 닮은 주인공 덕분에 울고 웃으며 본 이 책을 작가가 말한 대로 많은 여성들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이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