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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 김효정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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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는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스토리를 가진 에세이. 


3000m의 상공에서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무시무시한 비행기 추락사를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의 저자인 ‘율리아네’는 페루 다우림 위의 비행기 안에서 추락 사고를 겪었지만 전원 사망했을 것이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주 경미한 부상만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난 마치 일요일 아침에 티브이로 보던 ‘서프라이즈’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라 생각했다. 

 이런 어마 무시한 비행기 사고를 겪고도 현재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전 세계를 누비고 페루 밀림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는 동물학자가 된 ‘율리아네’. 

나라면 비행기 승객이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게 된 것과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는 트라우마로 인해 다시는 비행기를 못 타게 될 것 같은데 저자는 이를 극복하고 혼자 남게 된 자신을 품어준 밀림을 지키기 위해 밀림의 수호자가 되었다. 

 이러한 스토리를 접했을 땐 설마 이게 사실일까? 17살의 어린 소녀가 밀림에서 11일 동안이나 혼자서 살아남는 게 가능할까? 의문을 품었지만 책을 천천히 읽다 보면 그녀가 자라온 성장 스토리가 이러한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준다. 

 페루를 대표하는 조류학자인 엄마와 다양한 생물을 연구하는 동물학자인 아빠와 함께 어린 시절을 팡구아나의 밀림에서 보내온 율리아네의 경험은 의식을 잃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또한 다양한 생물을 연구하고자 하는 집념으로 전범국가인 독일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자신의 몸뚱어리 하나만으로 대륙을 건너고 페루에 도착하게 되는 아버지의 1년여간의 여정을 돌아보면 그것을 보고 자란 율리아네도 결코 살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밀림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율리아네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밀림 생존기를 보내게 된다. 처절하면서도 극적이고 투지와 역경이 함께 있는 스토리를 보고 있으면 그저 율리아네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혼자 살아남게 된 어린 소녀는 구조되고 난 후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한 생존기를 보내게 된다. 만약 이 스토리가 영화의 대본이라면 어린소녀가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고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겠지만 이 스토리는 실제 어린 소녀의 성장기이기에 굉장히 현실적인 후의 모습이 다루어진다. 

 끔찍한 사고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된 뒤 아빠를 만났을 때 왈칵 눈물을 쏟으며 그동안 두려웠던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 무심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아빠를 맞이한다. 그녀는 책 속에서 이러한 자신의 정신 상태를 밀림을 헤쳐나가는 동안 살고자 하는 자신의 방어기제였으며 이를테면 정신을 자동 조종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어린 소녀가 혼자서 밀림에서 살아남았다는 극적인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좋은 이야기 거리였고 언론 역시 율리아네를 가만둘 리 없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위로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밀림에서 살아남게 된 비결을 묻는 단순한 편지서부터 기분을 떨떠름하게 하는, 심지어 불쾌감을 주는 편지도 다수 도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저승에 있는 엄마와 영적인 만남을 했다는 등 엄마의 영혼이 자신과 함께 하고 있으며 율리아네가 살아남게 된 이유는 본인의 영혼이 길 안내를 해준 덕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편지들은 아마 율리아네의 유명세에 숟가락을 얹고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율리아네는 이렇게 힘들게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자신의 상처받은 정신이 치유되는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에세이로 담았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사고가 난 후 밀림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살아남아 인간세계로 돌아왔을 때의 생존기까지 재미난 영화를 본 것처럼 빠져들어 책을 읽었고 율리아네의 모든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평소 에세이라면 지루하고 평범한 이야기들뿐이라고 생각한 내가 재밌게 읽었을 정도이니 누군가가 에세이를 추천해 달라 하면 난 당분간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를 추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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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노래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배봉기 지음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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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을 보고 이렇게 멋진 스토리를 상상해 낼 수 있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다. 만약 내가 앞으로 모아이 석상을 볼일이 생긴다면 그저 관광객의 입장으로 즐겁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가슴 먹먹하고 몰입감이 있는 생생한 소설을 만났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는 땅이며 바다며 자연이 주는 생명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평화로운 한 부족의 노래이다. 지금은 언어로 존재하지도 않고 구전되지도 않은 그들의 노래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불리게 된 이야기를 가슴 먹먹하고 멋들어지게 써 내려간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모아이 석상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인 장이족과 단이족의 핏빛 역사와 그로 인해 펼쳐지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부족 간의 혈투로 수시로 주종 관계가 바뀌는 와중에 어느 부족에도 속하지 못하는 혼혈인이자 한 노예 청년에 의해 만들어진 사라지지 않는 노래는 이 소설의 대부분의 스토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는 마치 우리나라의 작자 미상 전래동화나 노래들이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읽다 보면 가슴 아리고 저항 정신이 투철한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허구인데도 실제로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를 처음 접한 건 영 어덜트 소설이란 소개 글이었지만 영 어덜트 소설에 국한시키지 않고 청소년, 어른, 아이 할거 없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말머리에 한 기록을 접한 후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이스트섬의 문화에 관련된 문헌들을 철저하게 조사한 느낌을 받았다. 난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전조사를 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 특히 책의 중간마다 각주에 쓰인 옛 서구 열강들의 노예 역사와 인간 사냥 등의 설명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스터 섬에선 롱고 롱고라는 독자적인 언어가 있었지만 지금은 보존되지 않고 그 언어가 사라져 역사기록을 찾아볼 수 없지만 작가가 쓴 [사라지지 않는 노래]가 실제 역사와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탄탄한 사전조사로 촘촘한 세계관을 구축한 덕분에 이 소설이 허구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어느 섬나라의 역사일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영 어덜트 장르를 넘어서 폭넓게 독자를 사로잡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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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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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키워드가 있다. 바로 ‘번 아웃 증후군’이다.

그 뜻을 찾아보면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마치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무력해지는 증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아직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는 29살, 30살을 앞두고 6년간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번 아웃 증후군’이었던 것 같다. 번듯한 4년제 유아교육학과를 나와 부푼 꿈을 안고 현장에 발을 들였을 땐 내가 기대한 현장과 달라 일하는 내내 굉장히 괴로웠다. 온전히 아이들만 보육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며 각종 서류에 시달려 보육시간이 끝나고 매일 야근하기가 일수였고, 사소한 문제들로 하루가 멀다 하게 컴플레인을 걸어오는 학부모들에게 시달리며 아이들의 거울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초임교사의 부품 꿈은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그렇게 그동안 벌어둔 돈을 까먹으며 백수생활의 허울 좋은 명분인 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지쳐있던 심신을 달래며 매일을 어영부영 보내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구로 디지털 단지’에서 it업계에 몸담은 주인공의 20대부터 40대까지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난 이 책의 주인공이 마치 내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직종은 너무나도 다른 양극이지만 주인공의 일대기가 나를 닮아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20살에 사회에서 성공한 번듯한 남자 친구를 만났다가 이별하게 되는 스토리나 회사 내의 정치에 밀리거나 혹은 그 가운데에 들어가 상처받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스토리, 30살에는 마음이 맞는 전 직장동료와 게임을 개발하여 짜릿한 성공을 맛보았지만 이마저도 불법을 일삼는 우두머리로 인하여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스토리 등이 그렇다. 사회의 쓴맛에 상처받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세상의 중심은 나였던 어릴 적 자아에서 벗어나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나는 티끌만 한 존재일 뿐이구나 깨닫고, 단순히 생활을 연명하기 위해서는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취미나 사회관계보다는 그저 돈이 최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을 보며 나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되도록 약자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it 종사자가, 여성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서사로 한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한 소설이 될뻔하였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나는 위로받았다. 주인공은 성공도 맛보았다가 실패도 하고 지금은 백수가 되었을지 언정 그렇게 끝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구디 얀다르크>, 잔다르크에서 온 주인공의 별명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미래와 닮아 있다. ‘구디 얀다르크’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노조의 중심에 서서 노조의 부흥에 앞장서지만 끝내는 그런 노조의 정치 희생양이 되고 연대감을 느끼던 그곳에서 팽 당하고 만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에 나온 잔다르크를 원망하며 본인은 얀다르크가 되지 못하였다고 말하지만 나는 구디 얀다르크라는 별명이 주인공의 정체성을 썩 괜찮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벌이며 그렇게 살다 보니 구디 얀다르크가 된 주인공이 지금 현재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회사원들의 모습과 닮아 있고 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백수가 되고 카드론으로 생활을 연명하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여도 끝내는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잔다르크가 전쟁에서 연승했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었던 승리자의 표정, 그 표정을 본 병사들은 자신 있게 전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일에 성공했을 때 다음 전투를 신경 쓰느라, 혹은 닥쳐올 위기를 미리 걱정하느라 전쟁에서 패배하고 늙은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의 꿈에 나온 잔다르크는 이렇게 속삭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를 지켜봐”. 주인공은 소설의 말미에 이 이야기를 이해하였고 나도 함께 동화되어 잔다르크의 말을 되새겼다.

“실패하면 어때? 다시 하면 되잖아. 지치면 어때 잠깐 쉬었다가 가면 되잖아.”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야지 내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책이다.

나와 너무 닮은 주인공 덕분에 울고 웃으며 본 이 책을 작가가 말한 대로 많은 여성들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이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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