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
제니퍼 바게트.할리 C. 코빗.아만다 프레스너 지음, 이미선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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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이다.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흑과 백보다도 더 선명한 그 무엇. 이도저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차라리 죽어버리거나 그렇지 않을거라면 떠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 당돌한 아가씨들. 그녀들의 진짜 여행이야기. 부제(-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들 제니퍼와 할리, 아만다는 스물 여덟이고 뉴욕의 미디어 업계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승진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나이의 그녀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열심히 사는 만큼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다. 그런 그녀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짜 여행을 떠난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진짜 세상 속으로 들어간 그녀들의 이야기. 그 사실만으로도 일단은 탄성이 나온다. 대단하다, 라고.

 

나의 스물여덟도 그녀들과 다르지 않았다. 서른을 한국 땅에서 맞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호주에 있는 아는 오빠에게 찾아가겠다는 말도 했었고, 둘이 결혼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결혼 자금 받아서 호주로 도망가서 따로 살자는 허황된 약속도 했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다 생각되지만, 그 때는 정말로 절실했고 힘들다 생각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일을 놓을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누구나 하는 일이고, 누구나 하는 결혼이니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커다란 용기없이 내가 사는 세상의 행로를 바꿀 수는 없다는 걸 누구라도 알고 있지만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과연 백만분의 일이나 될까?

 

이미 마흔이 넘어버린 지금에도 살아가는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간혹 있지만 이미 삶이란 것에 내 인생을 저당잡혀버렸기에 그런 의문 자체가 의미없을 때가 많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공동의 목표가 생긴다. 집을 사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 각자의 벌이에서 일정부분을 떼어 적금을 붓고,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 아이를 키우느라 허리가 휜다. 요즘은 그저 아이를 낳아서 흙 장난을 하며 풀어 놓는다고 자라는게 아니다. 유치원에 보내고 학원에 보낸다. 그 돈도 무시못할 부분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내가 꾸었던 꿈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간지 오래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다음 달 월급날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우리 전 세대는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세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가족의 행복이 개인의 행복으로 변해가는 추세이다 보니 부모로써의 삶과 함께 여자 혹은 남자로써의 삶도 중요시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삶이란 그렇게 모든 것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법이다.

 

여튼, 가족이라는 삶에 매이기 전이었기에 가능했을 세 여자의 일탈은 그녀들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을 것이고, 세상엔 내가 출근하고 퇴근하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제 읽기 시작한 책의 제목이 <스물 아홉>이었다. 단 하루, 70이 넘어버린 한 여인의 소망, 단 하루만이라도 스물 아홉이 될 수만 있다면이라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판타지 소설이다. 나도 그녀처럼 생일 촛불 앞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스물 아홉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면, 그래서 정말 스물 아홉으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면 그녀들처럼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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