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트 피크닉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사실 젊은(게다가 예쁘기까지 한) 여성작가가 쓴 우리나라 소설이라 가볍고 말랑말랑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에어포트 피크닉이라는 제목에서도 한껏 멋을 부린 허영같은 냄새를 맛보았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소재만큼은 독특하고도 재미나다고 생각했다. 2010년 4월 14일. 불와 얼음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화산활동이 활발한 나라 아이슬랜드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산재들로 인해 유럽과 미국 공항들이 항공대란을 겪었다. 유럽과 미주대륙을 잇는 항공편들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돼 공항을 찾은 시민 수만 명의 발이 묶였고 일부 비행기는 공항을 이륙했다가 회항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하는 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소설은 생각보다 말랑하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 유럽으로 떠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그곳으로 떠나려던 사람들도 모두 발이 묶였다. 순식간에 공항은 인종과 국적, 나이와 성별을  무시한 거대한 캠핑장이 되어버렸다. 단지 유럽으로 가려던 것 빼고는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 되도록이면 빠르게 정보를 얻고자 혹은 여행경비를 줄이고자 그들은 공항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부딪혀간다. 모든 일상이 갑자기 멈춰져 버린 공항에서의 특별한 일주일. 시간이 멈춘 그 공간안에서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받게 된다.

 

여담이지만, 새롭고 신선한 스타일의 "나는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동안 월요일의 모든 검색어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슈가 되었던 그 프로그램에 출연할 가수는 십여년 이상의 경력을 가졌을 것, 그리고 폭발적 가창력과 매니아라 불릴 정도의 팬층을 거느렸을 것, 국민 대다수가 아는 대표곡이 있을 것, 정도의 조건이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아이돌 출신인 옥주현이 출연한다고 했을 때 반발이 더 거셌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가졌던 편견도 아마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다. '김민서'라는 세련된 요즘 이름의 작가, 1985년생이라는 어린 나이. 그 나이에 알면 뭘 얼마나 알겠어, 하는 나이 든 기성세대의 마음. 아마도 작가계의 아이돌쯤으로 치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어른은 나이를 먹는다고 꼭 어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니며,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떤 일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알고 있지만 나도 내가 어렸을 적 다른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이 어린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슴 따끔하게 놀랍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했다. 마음을 얼른 고쳐먹어야 하리라.

 

머무르는 곳은 아닌 곳. 누군가는 항상 떠나가고 돌아오지만 결코 머물러 있지는 않은 장소, 공항. 그 곳에서 예기치 않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정지하게 된 사람들. 누군가는 맞이하게 될 어려운 일들을 미룰 수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다가올 행운이 비켜갈까 조바심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 생각지 않게 벌어진 이 일주일이라는 틈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 틈새로 가만 들여다 볼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내가 잠시 잊었던 것,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소풍같은 일주일을 맞이하게 되면 아마도 다들 조금씩 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그리고 내 옆의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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