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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시로 치면 수미쌍관이라고 할까? 이야기는 생후 7개월 정도 된 세사르 롬브로소가 물고 있던 제 어미의 젖꼭지를 놓고 잠시 멈추었다가 갑작스럽게 먹잇감을 낚아채듯 민첩한 동작으로 왼쪽 젖꼭지를 통째로 뜯어내고 심장마비로 숨진 어미의 살점을 삼키고 씹어가며 두어 번 트림을 해댄 뒤 치맛자락에서 잠이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장 원초적인 식인의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스페인, 이탈리아등 세계 정세와 맞물려 떠돌다가 이제 십대 후반이 된 세사르 롬브로소가 오감의 극한에서 오는 식인행위의 주체이자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저 맛있는 요리에서 조금이라도 독특한 메뉴, 남다른 향미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한 요리사들의 연구는 당연히 계속될 것이다. 누구보다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루치아노 카글리오스트로와 루도비코 카글리오스트 형제 요리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국적인 허브 향이 가미된 소스와 동양식 향신료로 맛을 낸 스테이크등으로 모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하여 일명 '알마센'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성공했다. 그들이 남긴 요리책은 그들의 유일한 혈육인 알레산드로 치앙카글리니에게 불려졌고, 다시 그 아들에게로 또 그 아들의 아들에게로 대대손손 대물림되었다. 그리고 그 책은 1989년 1월 25일, 세사르 롬브로소가 찾아내게 된다. 그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요리책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을 통해 오감의 만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상의 레시피를 접하게 된다.
어느 광고 중에 맛있는 떡볶이의 비밀을 묻는 이에게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라고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최고의 요리에는 그 요리사만이 가진 비밀 레시피가 있다.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독특한 향신료, 독특한 배합, 독특한 그 무언가가 있다. 맛보는 이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자신의 미각과 시각, 그리고 후각을 만족시킨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들이 모르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떠오르게도 하고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를 떠오르게도 하는 작품이다. 아주 비슷하지는 않지만 황신혜주연의 <301,302>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수많은 생선요리, 남부 해안지역을 떠오르게 하는 야채와 각종 소스등이 기본적으로 나오는 터라 <금단의 팬더>를 볼 때처럼 살짝 배가 고파지기도 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떠올랐던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요리'라는 하나의 직업, 혹은 누구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먹는 이에게 대접하고 싶었던 요리사들의 정열이라는 것 이외에도 이 모든 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것이 단순히 '요리'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전, 전쟁이라는 것에도 크게 영향 받았다. 제3국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의 역사가 얼마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