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정부 - 경쟁과 협력의 관계
이준구 지음 / 다산출판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준구 교수는 "잘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로도 이름이 높다. 그 교과서들은 가급적 쉬운 설명틀을 유지하면서, 수학 공식보다는 직관을 강조하여, 상식으로부터 깊이 있는 이론의 분석까지 시도하는 점이 돋보인다. 학부 수준에서의 강의뿐 아니라 급변하는 경제현상들과 경제이론에 대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지라, 그 긴장과 특유의 설득력 있는 문장이 결합하여 경제학 문외한에게도 흥미로운 책을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새 열린 경제학"도 탁월한 책이다.

한편 이준구 교수의 "칼럼"에 대해서는 다소 불만이 있다. 조금 논리가 성기거나 거친 면이 있고, 단정적인 부분이 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기 어려운 칼럼이라는 장르의 성격 때문일 것인데, 간혹 파격적인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음에도 그만한 논거가 열거되어 있지 않아 아쉬울 때가 많다.

이 책은 "시장과 정부"라는 제목 그대로 시장 영역과 정부 영역이 경제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반론(제 I 부)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제언(제 II 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I 부는 그대로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해도 될 만큼 정돈되어 있고 이해하기 쉬우며 깊이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반면 제 II 부는 약간 산만하고 다소 듬성듬성하다. 한 chapter가 대여섯 페이지인데, 100페이지 정도로 늘렸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이다.


인상적인 부분 혹은 사소한 시비

시장은 지금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 중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3쪽) ; "시장"을 너무자 自然的인, 따라서 인간 본성에 기반을 둔 것이어서 더 이상 어찌 거역할 수 없는 것처럼 여기는 시각이 있고, 경제학에서 하나의 신화를 만들었다. 과거에는 역사학, 사회학이 이 신화에 도전하였다면, 최근에는 심리학적 연구 성과들이 바로 그 "본성"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이른바 "행동경제학"). 하지만 생각해 보면 시장은 "제도"이고 이는 헌법(constitution) 내지 법(law)의 영역이다. 모종의 가정을 더한다면 인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합의에 의해 어떠한 "제도"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격기구의 조정기능에 큰 신뢰를 갖고 있다. (63쪽) ; 그렇다면 이는 "믿음"의 문제인가? 놀랍게도 그렇다고 한다.

가격기구의 조정기능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에 대해 경제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견해의 차이는 '믿음'의 차원에 속하는 문제처럼 보인다. 왜냐 하면 양측 모두 자신의 견해가 분명히 맞는다는 명백한 증거를 갖지 못한 채 논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64쪽) ; 그렇다면 증거를 충분히 획득하고, 나아가 전제를 재검토해서 문제 자체의 문제를 점검하는 것이 현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공공재를 얼마만큼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결국 국민의 생각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종합해 어느 수준이 적합한지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이 이에 대해 정직한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78쪽) ; 경제학자들은 명백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이 부분 대의제의 필요성에 대한 입증이다.

관료들은 본질적으로 예산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106쪽) ; 기업의 CEO가 주주이익 극대화보다 회사규모 확대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현상도 비슷하다.

어떤 개인이 건전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부가 이를 모두 막아야 할 이유는 없다. (중략) 지금 당장 대마초 같은 마약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결코 아니다. (중략)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 그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136쪽-137쪽) ;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여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건전하지 못한 행위를 정부가 모두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건전하지 못한 행위는 법을 동원해서라도 정부가 막아야 한다는 것이 공동체의 의사(will)인 경우가 많다. 술/담배를 허용한다는 것이 마약 금지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규제가 시작되는 점에서 효과면에서는 양자간 질적 차이가 발생하게 되나, 양적 차이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는 해악의 경우 어느 선에서인가 결단을 통해 규제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띠를 매는 일에 대해 정부가 방관만 하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안전띠를 매야 하는 이유를 부단히 설득해 쓸모 없는 죽음을 맞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는 있다. (146쪽) ; 그 설득의 비용/편익보다 단속의 비용/편익이 우월하다면 후자가 합리적이지 않을까?

카지노 이용자를 부유층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일정 금액 이상의 돈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만 카지노 입장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152쪽) ; 빚을 내서라도 입장할 사람은 막지 못하고, 카지노의 배만 불려줄 수도 있다.


흡연자는 담배 소비를 줄임으로써 세금 부담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59쪽) ; 같은 논리라면 복권 구매자도 구입을 줄임으로써 역진적 세금부담(151쪽 참조)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다.

총제적 소득(161쪽) -> 총체적 소득

명백한 범법행위를 하는 데도 모른 체하는 것은 더 나쁜 일이다. (175쪽) ; 범법행위를 신고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을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가파라치는 계약직으로 고용된 교통경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177쪽) ; 바로 이 지점이 위험하다. 국민들에게 침익적 처분행위를 하는 공무원을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이 논리는 부유한 가정과 가난한 가정의 자제가 똑같은 확률로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는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199쪽) ;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 소위 비평준화 고교의 정원이 현재의 이른바 특목고 정원보다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평준화 제도를 유지하는 동안 한 지역에서 이른바 명문고등학교가 다수 생길 가능성도 늘 열려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지금 체제보다 가난한 가정의 자제가 이른바 수월성 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평준화 제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방에서의 학연을 중심으로 한 견제불가능한 권력 카르텔이 구축될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세히 논할 만한 것은 아니다.

물가안정, 서민생계 보호, 국제경쟁력 강화 등은 삶의 질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그것들 자체가 궁극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 (224쪽) ; 결국 가치를 형량/조정해야 할 문제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장의 버스요금이 장래의 건강보다 중요할 수 있다.

어느 정부라 하더라도 감히 이들의 저항에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둘 수 없으리라고 보는 것이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러나 개혁을 하려 해도 아이디어가 없어 할 수 없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65쪽) ; "저항"이 반드시 유형적/물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를 "무릅쓰는" 것이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사회적 저항의 원인을 연구하고 이를 극복할 합리적 방안모색까지 "아이디어"의 범주에 포함된다.

부동산은 누가 어느 것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소득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59쪽) ; 하나 더 남는 문제는 소유와 사용/수익의 주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변칙적인 상속증여 행위를 하는 사람들까지 선의의 납세자고 보기는 힘들다는 데 있다. (275쪽) ; 그러나 다른 문제는, 선의인지 악의인지를 판단하는 주체가 정부, 구체적으로는 공무원 개인이며, 그 판단에 자의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사실이다.

형식논리에 얽매여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나는 그 어떤 것도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275쪽) ; 이렇게 헌법적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조세법률주의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정도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반대논리가 좀더 큰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행의 상속증여세 운영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구제적인 (-> 구체적인) 증거를 대야 한다. (277쪽) ; 입증책임은 개혁을 주장하는 쪽이 부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일을 벌여좋고 보자"(230쪽 참조)는 식이 될 수 있다.

우선 누가 진정한 기업의 주인인지부터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282쪽) ;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쉽다. "주주"이다. 다음으로 밝혀여쟈 할 더 어려운 과제는 진정한 주인의 의사(will)와 이익(interest)간에 무엇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지이다. 주주의 경영참여, 배당금, 매도차익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상충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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