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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芝巖 남덕우 회고록
남덕우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대체로 공부가 잘 되어 있고 자기 일에 제대로 몰두한 사람의 회고록은 밋밋하다거나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사실 잘 꾸며 보자면 대하장편소설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사건들을 겪어왔음에도, 그들에게 그 사건들은 열심히 살다 보니 지나치게 된 일일 뿐이고, 그들의 눈은 언제나 다음, 내일을 향해 있다. 자기의 일을 꾸미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일로 성공하기 힘든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남덕우의 회고록이 그렇다. 해방 후 격동의 반세기를 누구보다 많은 영향력을 갖는 자리에서 보내 왔음에도, 그의 필체는 담담하다. 대신 어려웠던 과제를 달성한 일을 소개할 때에는 반드시 자기와 함께 일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한다. 흔히 '人福'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힘임을 생각하면, 그러한 인복을 누린 사람 자신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남덕우를 일약 장관으로 발탁하고, 부총리로, 경제특보로 쓴 것이 박정희였다. 국제적으로 무명에 가까운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국제사회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전 정권에서 일했던 남덕우를 국무총리에 임명한다. 여기까지의 남덕우의 일생은 박정희와 오버랩되어 있다. 그의 공이 곧 박정희의 공이고, 박정희의 공이 곧 그의 공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이다. 국무총리에서 퇴임한 1982년 이후 2010년 현재까지 남덕우는 '활동'하고 있다. 박정희와 오버랩된 인생보다 그 이후의 인생이 더 길고, 그는 어디에선가 대한민국을 위해 여전히 일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일을 시작할 무렵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화폐경제를 다루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경험했으나 실물경제를 다루는 상공부를 경험하지 못했는데, 이제 통상 업무를 경험하게 되었으니 해볼 만한 자리라고 느껴졌다."(258쪽)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삶을 낭비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여기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공동체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살아온 사람의 삶이 있다.
인상적인 부분
출정식에 앞서 학생들에게 막걸리를 퍼 먹인 다음, 연사가 나와 피가 끓는 선동연설을 했다. 그날 연사로 나온 이가 정지용鄭芝溶 시인이었는데, 그는 왜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이 기회에 반드시 민족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듣기에도 명강의라고 느껴졌다. (27쪽) ; 정지용 시인은 남한에서 한동안 금지된 시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왜 금지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시간이 흘러 서정주를 시로만 이야기하듯, 정지용도 시로만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렇게 되어 있기를, 혹은 그 역도, 그렇게 현대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현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가야 하리라고, 생각해 본다.
군들이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것은 군들의 자유다. (중략) 나는 예정대로 강의를 할 터이니 출석하든 안 하든 그것은 군들 자신의 책임하에 선택할 문제이다. 나는 출석하지 않아서 시험에 패스하지 못한 학생에게 학점을 줄 생각도 없고 권한도 없다. (48쪽) ; 정답에 가깝다.
1962년의 화폐개혁이 아주 단순한 경제이론을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중략) 이 실패한 화폐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은 서울의 모 대학에서 후진국 종속론을 강의해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교수로 알려졌다. (52쪽-53쪽) ; 전체 회고록에서 아마 유일하게 인신을 공격한 예인 것 같다. 젊은 시절의 분노는 쉽게 잊혀지지 않으리니.
난생처음 청와대로 갔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우선 그 방의 검소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9쪽) ; 대통령에게 보고를 끝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청와대를 나오면서 앞으로 이런 지도자에게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73쪽) ; 박 대통령은 언제나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분이었다. (77쪽) ; 듣고 보니 박 대통령의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131쪽) ;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국제통화기금IMF이 이 조치를 문제 삼아 재정 안정 계획을 완전히 파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 끝에 사전에 IMF의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이용만 이재국장을 대동하고 워싱턴으로 건너가서 장관 체면의 손상을 무릅쓰고 IMF의 한국 담당관에게 이 비밀 계획을 털어놓았다. (90쪽) ;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자존심이나 체면쯤은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려는 것을 국가를 높이는 것으로 포장해서 결국에 국민을 해롭게 하는 이들이 많다.
경제기획원EPB은 이에 고무되어 1976년 '하반기 경제 전망 및 대책'을 수립해 경제성장률을 대폭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큰 실수였다. (170쪽) ; 실수가 실수인 것을 알아야 반복이 없다. 실수를 말할 때에는 치장하려 해서는 안 되고 그냥 실수였다고 말하고 그 실수를 범하게 된 원인을 밝히면 된다, 는 것을 가르쳐 준다.
당시 판사나 검사들은 대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등용문을 바라보고 열심히 법률 공부를 해서 고등고시에 합격한 준재俊材들이다. 그런데 사법부에는 외국에서 학위를 받거나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래서인지 경제 현상을 다루는 것을 보면 경제와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국제 감각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223쪽-224쪽) ; 요즘의 판사나 검사들은 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집에서 태어났으며 열심히 법률 공부를 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준재들이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 공부 또는 여행 목적으로 외국에 다녀온 사람도 꽤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제나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국제 감각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다면 판사나 검사들의 양성 내지는 재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것이 문제라는 것 자체를 그 구성원들 스스로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품을 표현하는 말로 白晳精桿이라는 말이 있는데, 김재익을 보자 나는 이 문구가 생각났다. 얼굴이 희고 몸매가 날씬한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정신과 사고가 매우 맑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52쪽) ; 사람이 사람에게 반한다는 것.
브레진스키 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는 "나는 한국의 방침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국은 북한의 핵화를 반대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화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방침에도 반대하고 있다. (중략) 한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냐? (364쪽) ; 일본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의 군사력 하에서 실질적으로 자국의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를 구가하고 있다.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미국을 상대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서 스스로 긴장하지 않는 나라는 스스로 긴장한 나라에게 당당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기꺼이 감수할 위험이 어느 수준까지인지, 그리고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지 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소한 시비
한국은행에 취직이 되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나는 1954년 9월에 대학에서 만난 여자친구 최혜숙과 결혼했다. (36쪽) ; 1951년 3월에 서울이 다시 수복되었고, 나는 아내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중략) 1953년 장남이 태어나기도 했다. (37쪽) ; 36쪽의 연도가 잘못 되었을 것이다. editor의 실수.
자조가自助 있어야(132쪽) ; "자조自助가 있어야"의 잘못. 역시 editor의 실수
호텔 경영을 말게(268쪽) ; "호텔 경영을 맡게"의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