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 고인 침묵을 읽고
:타인들의 삶을 책으로 공유한다는 것
『입 안에 고인 침묵』....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입』을 떠올렸던 것은 단지 비슷한 어감 때문이었을까. 어쨌거나 내게는 그랬다. 기형도의 그것은 이제 내게 너무도 아스라한 무엇이라면, 최윤정의 이것은 궁금하고, 알고 싶고, 그래서 기대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가 읽게 될 책들도 조금씩 확장되어 왔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출판사가 바로 <바람의 아이들>이었다. 출판사 이름이 좋아서, 책 제목이 좋아서, 아이가 골라서 등등의 까닭으로 한 권, 두 권 모인 그 출판사의 책들이 우리 집에는 제법 여러 권 쌓여갔다. 어떤 책들은 도서관을 통해 단골로 우리 집을 드나들기도 했다.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여느 출판사라면 지나쳤을지 모를 원고들을 보란 듯 책으로 엮어 내고 있는 이 출판사의 안목이. 무슨무슨 상 수상경력이 없어도,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전작이 없는 빈약한 약력을 소유한 작가들의 첫 책도 더러 보았다. 그때 어렴풋 느꼈다. <바람의 아이들>은 많이 팔고 싶은 게 다양한 씨앗을 바람결에 퍼뜨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바람의 아이들>의 최윤정 대표의 산문들을 모아 엮은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현재형이 아닌 그 어떤 사랑 이야기’는 그녀의 책과 출판에 얽힌 이야기이다. 2부 ‘누군가의 슬픔’은 그녀의 문화적 안목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3부 ‘60억의 타인’들은 그녀의 프랑스 살이를 엿볼 수 있는 글들로 묶여졌다.
1부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책들이 나와 만나게 된 여정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 책에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무릎을 탁 치거나 잠시 숨을 고르곤 했다. 또한 우리나라에 2만 여개의 출판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많은 출판사들 중에서 <바람의 아이들> 펴낸 책들을 내가 읽어냈거나, 알고 있거나, 갖고 있게 된 사실에 놀랐다. 이것도 나름의 인연이 아닐까 싶다. 2부에서는 교묘하게 겹쳐지는 그녀와 나의 문화적 행로에서 공감대를 느끼며 더없이 반가웠고, 3부에서는 나 역시 프랑스 곳곳을 조용히 거닐며 다양한 군상들을 소리 없이 지켜보며 커피 잔을 기울였다. 그야말로 덕분이었다.
오래 전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여러 권의 책들을 빌려왔다. 더러는 대출권수를 채우려 별다른 고민 없이 휩쓸러 오게 되는 책들도 간혹 있었는데, 그 중의 한 권이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책을 쉽게 잊었다. 이 책에 수록된 표지이미지를 보고서야 ‘아 그 책!’하고 떠올렸다. 그리곤 이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그녀가 간디학교의 수목장을 다녀온 날은 마치 나 역시 그와 함께 동행 한 듯 아렸고 적막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정현종의 시가 떠올랐다. 사람 하나가 그러할진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책은 또한 어떠한가. 한 권의 책이 내게 온다는 것은 한 작가의 지난한 시간과 출판사의 고단한 노동이 함께 오는 것이리라. 한낱 종이 위에 새겨 놓는 숭고한 억 겹의 인연들이 오늘 따라 더욱 새삼스럽고 감사하다.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이제 여름도 다 간 듯하다.
휘이잉, 어린 영혼들의 지친 어깨를 토닥여주는 바람이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