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적인 삶 - 제100회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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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적인 삶이라... 오래전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졌던, 지금은 마치 친정과도 같은 느낌의 프랑스라는 나라, 그 나라 사람들, 그 나라 문화가 그리워 제목만 보고 책을 골랐다.

처음엔 쉽게 읽히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듯, 완전히 동화되어 빠져들었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솔직담백한 문체, 시니컬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유머가 정말 좋았다. 분명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어를 전공했고 좋아해서 원서를 많이 읽어서 느껴지는데,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쉽지 않은, 지극히 불어적인 문체였을 것이다. 이번 책도 차라리 원서로 읽었으면 좀 더 가깝게 다가오지 않았을 까 싶다.

프랑스 정치와 문화를 잘 아는 나로서는 많이 공감하며 읽었지만, 프랑스하면 파리, 맛있는 음식 정도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글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꽤 있을 지도 모르겠다. 대체 그 놈의 사회주의가 뭐길래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며, 이 나라 사람들은 아주 독립적이라 20살만 되면 집에서 독립해 사니 늙은 부모들은 나몰라라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노모를 끝까지 돌보긴 하네? 라며.

한 프랑스 남자의 삶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인간이란 결국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거다. 정도의 차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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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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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하긴 하지만, 박완서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사실 최근 한국 문학 (20세기 초중반 문학과 비교해)을 접한 것 자체가 얼마 되지도 않기도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처음 느낀 점은, 이 작가는 정말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정말, 엄마와 밤을 새며 두런두런 거리다가 어느 집안사를 쭉 얘기해주는 것처럼.

속물스런 자본주의 세태,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 삶과 죽음이 축을 이뤄 진행되는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에 가족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던 장남이 결국은 그렇게 가족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결국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했구나 싶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굴레 또는 울타리.

누구는 죽음과 싸워보지조차 못하고 죽었는가 하면, 누구는 싸우기를 포기하고 죽는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물론 가족을 포함한- 한 사람의 끝은 그렇게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책 제목 "아주 오래된 농담"이란 뭘까.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넌 죽지 않을꺼야 라고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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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안경원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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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불란서 안경원>의 이름을 따서 출간된 소설집인데, 막상 <불란서 안경원>은 제일 마지막에 실려 있다. 첫 번째 실린 <내 사랑 클레멘타인>을 읽으며 이 소설집의 분위기가 어떨지 파악이 되었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은 거의가 여자이며, 견디기 힘든 인생들을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며 버텨내고 있다. 그러한 그녀들의 인생에 남자라는 존재는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바로 그 이유가 아니면, 그게 아니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충분한 희망이 있어서도, 가져서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버텨낸다. 어쩌면 현실의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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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
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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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스토리 자체도 재미가 있었고 문체도 아주 맛깔스러웠다. 이런 소설을 두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만한" 소설이라고 하지 않을까. 뭐,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조금 과장적인 부분이 없진 않으나, 또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도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믿기 어렵지만,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니까. 남자 주인공도 일상 생활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길을 가다가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다가 그 첫사랑이 정말 세상을 떠나고 나니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아가는 대다수의 남자들. 마지막 부분에서, 깊이 상처 받은 아내 미란도 현실로 돌아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주인공도 애인까지 두며 적당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구나...싶어서.

그러므로, 현대의 불특정 대다수를 그리려 했다는 작가의 의도는 이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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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 1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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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어후~ 어후~" 를 남발하고 한번 씩 잠깐 책을 덮고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읽은 책이다.  처음엔 도대체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구는 건지, 그렇게 바보같이 구니까 불행한거지 하고 생각했다. 제 무덤을 자기가 판다고, 불행이라는 것도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을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공지영은 친절하게도 이 바보같은 여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선 "거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착하게 굴어야" 했다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사랑해줘야만" 했다고.

어떤 상처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해낼 수 뛰어난 심리묘사... 내 예상대로 공지영 작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며 그 소설을 완성했다고 밝힌다. 상처 받은 사람, 고통스러워 봤던 사람만이 여주인공 오정인의 삶에 대한 초월을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중간에 작가 본인임을 암시하는, 여주인공과 인터뷰를 하는 작가에 대한 단락이 나오는 데, 작품 구성상 그 부분이 굳이 필요했을까 싶다. 작품 전체의 일관성을 깨뜨리는 불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나중에 "강한 여자" 변호사와 함께 애들을 키우며 살며 다른 불행한 여자들을 도와주며 살게 된다는 부분은, 오정인이 삶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 상처에서 회복되어 간다는 의미에서는 괜찮았으나 그동안의 오정인의 구질구질하고 불행한 삶의 모습에서 너무 큰 비약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어떤 남성작가가 이렇게 여자심리를 잘 그려낼까. 여성작가이기에 가능했던 소설이다. 여자로서 많은 공감이 갔다. 남성독자들은 어떻게 느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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