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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깊은 슬픔'이라는 소설이 유행했던 것은.
그 당시 나는 불문학도로서 프랑스 문학을 먼저 어느 정도 접하고 난 후에야 한국 소설을 읽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던 터였다. 나와 같이 다니던 친구는 한 동안 남색빛 커버의 '깊은 슬픔'을 가지고 다녔다. 나는 무심하게, "그거 재밌어? 요새 많이 팔리는 것 같던데..." 했다. 친구는 "이거 진짜 너무 슬퍼...A와 B라는 남자가 있는데 여자가 처음에는 A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B는 여자를 사랑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자기는 B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B는 떠났고 A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거야"했다. 12년 전인데도 그 말이 생생하다. 그 때는 그냥 "이런. 안 됐군" 하고 말았었다.
그 후로 11년 후, 우연히 도서관에서 '깊은 슬픔'을 발견했다. 왠지 반가운 마음에 이젠 읽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집어들었지만, 두 권 중 한 권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앞 부분이라도 읽기로 하고 빌려서 읽었지만 뒷 부분은 도저히 반납이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포기했다. 그러다가 올 초, 한 권으로 묶인 개정판이 나왔기에 얼른 샀다. 사기는 샀으나 이래저래 계속 못 읽고 있다가 이번 추석 연휴에 작정을 하고 읽었다.
얼마나 실감나게 표현했던지. 남자의 전화 한 통에 울고 웃는 여자의 마음. 마음을 주게 되면서 부터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된 여자. 늘 불안하고, 늘 부족한 여자의 마음. 사랑하는 남자에게 거절당하고, 그 분을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푸는 여자. 그녀가 늘 멀게만 느껴져 불안해하던 세는 결혼을 하고도 그녀가 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무서운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제서야 세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점점 어긋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급기야 세는 여자를 떠나고, 여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래도 마지막 부분에 '불 끄지마. 네 얼굴이 안 보여'라는 그녀의 말에 희망을 얻었었는데 그녀는 기어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2년 전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오늘만큼 마음이 아팠을까? 아니었을 거다. 그녀의 슬픔을, 완과 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만큼 아파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