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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물 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제목은 제법 쓸쓸하게 세련된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원제는 'Asile de fous'로, '미친 사람들의 안식처' 정도 된다. 처음에는 제목과 강렬한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들어 책을 들었는데, 원제를 살펴보니 '미친 사람들의 안식처...정신병원?'이라...어째 좀 이상할 것 같았다. 그래도 샀다. 불문학을 전공한 불문학도로서, 페미나상 수상작으로서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어차피 에쿠니 가오리 식 담담함 또는 신경숙 식 가슴이 무너지는 이별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이건, 정말 너무 현실적이어서 엽기적이지 않은가. 화자가 쉴 새 없이 바뀌고 (chapter를 나누는 수고조차 기울이지 않아서, 처음엔 내가 잘못 이해했나 싶어서 그 문단의 앞 문단을 되읽기조차 했다), 시제도 물리적 시간 개념을 무시하고 막 넘나든다. 말 그대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대부분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뒤죽박죽이기 마련이다. 특히나 예기치 못한 일을 겪고 난 직후라면 더욱.)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죄다 글로 풀어냈다. 그게, 그냥 머리 속에 있으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데 글로 옮겨서 눈으로 보니까 아주 이상하게 느껴진다. 너무 이상해서 불편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책을 다 읽고보니 원제인 '미친 사람들의 안식처 (또는 정신병원)'가 잘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되었다. 뭐 '스물 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도 대충 말이 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는 이 소설의 화자는 예기치 못한 이별을 당한 여주인공 (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4명이기 때문이다) 지젤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잘못된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에 (이를 테면 산뜻한 일본 소설같은) 이 책의 제목으로는 그다지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나야 불어를 아니까 원제를 알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은 '스물 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제목으로만 communication 되지 않는가.
어쨌거나 나름 새롭고 신선한 접근의, 어찌보면 다소 프랑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