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다도'가 아닐까 한다. 뒤로 발을 모아 무릎을 굽힌 보기에도 불편한 자세이지만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길고 긴 다도의 역사에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 존경을 받았던 대단한 다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 책의 주요인물이기도 한 '센 리큐'이다. 그는 1.5평의 좁디 좁은 공간을 안락함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기는 한편 그 밖에 심미안으로 정평이 나 있었던 일본의 유명한 다인 중 하나이다. 다만 그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말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미움을 사 할복을 하게 되고 마는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리큐에게 물어라>라는 이 작품은 그가 어째서 할복을 해야만 했나,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비밀까지 파헤쳐 올라간다. 리큐의 할복 장면을 묘사하는 첫 부분에서부터 그가 매우 아끼는 수수께끼의 향합이 등장한다. 일본사에 대해 배우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 그가 어째서 할복을 해야만 하는가 그 연유도 궁금했지만 매우 아름답다는 이 향합에 얽힌 사정에 대한 궁금증은 읽어 나갈 수록 더욱 궁금해졌다. 리큐의 다도에 대한 정신과 관련이 있다고는 짐작되지만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는지 또 어렴풋한 실루엣만 비춰지는 조선 여인에 관한 사정은 과연 무엇인지 작가는 마지막의 명쾌함으로 남겨둔다. 또한 다도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리큐와 그것을 정치적인 도구로 여기는 히데요시의 대립도 이 작품에서 그냥 넘기기 힘든 여운을 남긴다. 시간의 흐름대로 서술되는 보통의 작품들과 달리 주인공의 마지막에서부터 점차 역행해 간다는 면에서도 이 책의 서술방식은 특별하다. 리큐 자신의 시점에서뿐만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제자들, 그를 시샘 했던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생애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시점으로 리큐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말해준다. 다인으로서의 리큐, 신하로서의 리큐, 스승이었던 그를 알아갈 수록, 지금껏 이름을 들어 본 적도 더군다나 만나본 적도 없는 한 역사 속 인물이 점점 친근하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정치와 역사 속에서 숨쉬는 그의 모습도 흥미로웠지만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리큐의 모습도 그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 일조했다.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에피소드에 대한 부분은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으로써 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조선 침략에 일조하는 왜인 리큐의 모습은 주인공이라도 개인적으로서는 역시 아니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책을 덮고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모두가 시대의 희생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승리하지 않으면 남는 건 죽음뿐이다"라는 히데요시의 말도 전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탐욕적인 이기주의로 인해 아군이건 적군이건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은 결코 자랑할 이야기가 아니다. 어찌보면 분통이 터지는 타국과 자국의 역사를 알아간다는 것은 같은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몸소 실감했다. 어지러운 세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일대기가 지금도 가슴 속에 아련히 남는다. 평소에 거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다도'란 문화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허구의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애잔해 오는 그의 인생을 함께 거슬러 올라왔다는 느낌이 드는 깊이있는 시간이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목표로 걸어가고자 했던 다인들의 모습이 앞으로도 한동안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