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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ㅣ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자주 악몽을 꾼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악몽. 가끔씩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고 싶지 않을때가 있다. 또 다시 나쁜 꿈을 꾸게 될까봐. 이전의 내가 혼자라는 것이 싫을때는 그때 뿐이었다. 과거에 얽매인채로 십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오이와 쥰세이는 기억을 간직한채 세월을 흘려보낸다. 아오이는 앤틱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에서 각기 소중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보석을 판매하고 있고, 쥰세이는 원화복원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얽매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 하겠다.
그들은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에 얽매이지만, 현재를 벗어날 수 없는게 삶의 규칙. 그런 그들 옆에는 현재의 연인이 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언젠가 이 사랑이 끝나고 나서 그들에게 다시 똑같은 과거와 미련으로 남을지 모르는 사람. 너무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 아오이는 언제나 말하려고 한다. 안아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말하지 못한다. 날아가버릴까봐, 과거가 사라지게 될까봐, 흔적이 사라질까봐. 과거에 얽매인채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말하지 못한 아쉬움은 발화된 후에 감당할 진실보다 크지 않다. 언젠가 지금의 현재가 또다른 과거가 될지 모른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나에게 <냉정과 열정 사이>는 과거를 추억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를 버리지 못한 사람의 곁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현재의 두 사람의 안타까운 이야기로 느껴진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해 사랑을 나눌때에도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른다던가, 추억하는 공유되지 못한 기억의 일부분 속에서 헤메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메미와 마빈.
이상한 동질감. 과거에 얽매이는 것도, 그런 사람을 지켜 보는 것도 낯설지만은 않은 풍경이다.
아오이와 쥰세이. 그들의 헤어짐은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나, 버림받은 것은 그녀였고, 버린 것은 그였다. 그들이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다시 만나 얽매였던 과거와 조우하고 변치않은 사랑을 나눌때에도 두 사람의 생각은 다르게 자리한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위해 떠나야 할 것을 아는 아오이와, 다른 사람의 자리로 인해 변한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쥰세이. 결국 그렇게 헤어지고. 또 다시 그녀를 잡기 위해 달려가는 그.
만남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전제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수많은 오해와 또다른 인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결국,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서로 용서하거나 이해를 바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해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아오이의 심리를 바탕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면 츠지 히토나리는 사건을 중심으로 소설을 전개해간다. 이런게 시각차라는 것이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생각되어졌다. 머, 그랬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