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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자의 향기
왕안이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평점 :

작가가 만든 무대에 위에 뛰어들다
‘상하이는 코미디다’에서 작가 왕안이는 상하이를 무대 위에 디자인한다.
배경과 사람들의 복장 그리고 언어에 대해 작가는 ‘소설’처럼 흘려보낸다, ‘사소함’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그녀의 글에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숨 쉬고 있다.
작가는 감독이 되어 독자에게 멀리는 상하이 전체를 가깝게는 집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야기한다. 화면은 바다 위의 상하이에서, 거리 풍경으로 서양식 주택을 보여주고, 석양을 바라보거나 가로등 아래를 비춘다. ‘석양’에서 작가는 서서히 지는 태양의 빛을 거리에 흩뿌리고 다시 그 모습을 설명해준다.
“정오 이전의 격렬한 햇빛처럼 마구 가라앉았다가 일어서지도 않고 요란하게 들끓지도 않는다. 빛과 그림자 모두 강렬하지 않다. 이때가 되면 햇빛은 아주 조용하게 가라앉고 그 미세한 빛의 입자들이 공기 중에 넓게 흩어진다. 빛은 아주 얇은 층을 이루지만 마구 새어나가진 않는다” (67p)
이 ‘빛’은 유리창으로 번져가고, 지붕 위로 사람들의 얼굴로 번져나간다. 또 소리를 실어 멀리 전달되어 황혼이 내릴 때는 빛과 소리, 냄새가 전부 얼굴을 바꾼다. 이렇듯 작가가 감각적인 문장에서 상하이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거닐던 어느 골목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해가 지는 풍경은 어느 나라에서나 이뤄지기에, 이 모든 풍경들은 내가 거니는 골목을 비추는 것과 동일해 보인다. 작가가 옆집에서 들리는 코 고는 소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그녀보다 더 낮은 자세로 그 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찰나의 순간’은 잔상을 만들어 낸다.

“현실의 일상생활은 이처럼 면밀하고, 심지어 뒤얽힌 채로 우리의 감각기관을 뚫고 들어온다” (15p)
면밀하고, 뒤얽힌 삶의 끝은 감각기관인 걸까. 도시에 머무르며 느끼지 못한 냄새들을 그 도시를 떠나고 온 뒤에야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그 냄새를 우연히 맡았을 때 기억은 추억으로 변해 눈앞에 펼쳐진다.
나에게 그 냄새는 ‘마라샹궈(麻辣香锅)’였다. 알싸한 향의 산초와 고추기름이 든 마라 소스로 해산물, 채소 등을 볶아낸 요리로 매콤하면서, 밥반찬으로 손색없는 음식이다. 사실 상하이의 대표 음식은 아니지만, 상하이 도시 골목 구석구석을 거닐다 보면 이 냄새가 가득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4월의 어느 날, 쉬후이구의 골목길 어디선가 마라샹궈 냄새가 났다. 길을 걷던 지인과 나는 동시에 멈춰서 냄새가 나는 곳을 응시했다. 지인이 말했다.
마라샹궈를 먹어 본 사람은 맛있는 냄새로 맡아지지만,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중국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다고.
맞는 말이다. 감각기관은 찰나의 순간에 잔상이 되어 자리 잡는다. 오래도록 ‘추억’과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준 상하이의 잔상들은 아마 타국에 사는 나로서는 완전히 흡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공간은 시간 속을 흐른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 (245p) 그저 삶의 공간일 뿐 냉소적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피상적으로 지나칠 뿐이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4월의 어느 날, 이 책을 들고 상하이 여행을 떠났다. 작가가 느꼈던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싶어 다섯 번의 상하이 여행 중 처음으로 배를 타고 황푸강을 건넜다.
“황록색 강물은 너무 걸쭉해서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결도 흙덩이 모양인 데다 강한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물질과 사물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124p)
그녀가 이야기 했던 황푸강을 바라보았다. .
4월의 상하이는 벌써부터 여름 냄새가 났다. 와이탄의 빛나는 골목들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황푸강은 깊은 어둠으로 그 빛들을 더 밝게 빛내주고 있었다.
2원을 내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강의 비릿한 냄새와 사람들의 몸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 지려할 때 쯤 배에서 내렸다.
나에게 이 책은 가이드북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상하이의 ‘여자’와 ‘남자’의 부분을 포함해 모든 글들이 나에겐 내가 걷는 여행 공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해준 책이다.
이 책 덕분에 분주한 여행이 아닌 차분한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