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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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다 있지만, 어디에도 있으면 안 될 이야기.

사만타 슈웨블린의 '피버드림(Fever Dream)'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장소는 단순하다.

아만다, 니나, 카를라, 다비드 그리고 그들이 사는 농촌 마을과 병원.

소설은 다비드의 속삭임에서 시작된다.

- 벌레 같은 거예요.

- 무슨 벌레인데?

- 벌레 같은 거요, 어디에나 다 있는.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는 아만다와 카를라의 대화로, 자신의 딸 니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카를라는 6년 전 아들 다비드에게 있었던 일을 아만다에게 이야기한다.

남편 오마르가 데리고 온 종마, 개울 물 그리고 녹색 집.

아만다는 카를라의 대화를 듣고 이 모든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아만다가 이야기하는 동안 다비드의 '속삭임'은 들리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만다에게 다비드는

- 그건 아주머니의 생각이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 다비드가 생각하는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어지는 아만다와 니나의 ‘구조 거리’에서 다비드가 말하는 (혹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처럼 이어져 있다는 ‘구조 거리’는 원작의 제목이 스페인어로 ‘구조 거리(Distancia de rescate)'인 것을 감안하면,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중요함이 소설 속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기 쉽다. 작가는 '실'이라는 것을 통해 등장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독자로 하여금 노골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아만다는 '구조 거리'에 대해 다비드에게 설명한다.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 즉, 자신의 딸 니나에게 일어날 위험을 사전에 측정하고, 그 거리를 재서 ‘구조 거리’를 계산하며, 이 행동은 자신의 엄마로부터 이어져왔다. 아만다과 딸 니나는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 니나가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나도 ‘안전함’이 느껴지면 실은 매우 짧게 느껴지고, ‘위험’이 감지되면 그 실은 팽팽하게 당겨진다.

- 정확한 순간은 바로 세세한 점에 있어요. 그러니 자세히 살펴봐야 해요.

다비드는 아만다에게 말한다.

‘정확한 순간’이 다비드가 궁금해하는 그 벌레(병의 원인)의 시작인 것일까.

카를라의 6년 전 ‘아들이었던’ 다비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사라진 줄 알았던 종말이 전날 마신 우물 물로 인해 죽고, 카를라는 자신의 아들 다비드도 그 종말이 마신 물을 마셨다는 생각에 가망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카를라는 의사보다는 ‘녹색 집의 여인'에게 간다. 그리고 그 뒤 다비드는 카를라를 '엄마'라 부르지 않고, 카를라는 자신의 아들이 ‘괴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의 궁금점이 생긴다. 카를라와 다비드 사이에도 아만다가 이야기하는 '구조 거리'가 존재했을까.

카를라와 다비드의 ‘구조 거리’의 실은 남편 오마르가 데리고 온 말이 사라지고,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끊어졌다.

소설 속에서 다비드는 “중요한 거예요”라며 아만다가 말하는 ‘구조 거리’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온다. 소설의 시작에서 그들의 대화 주제인 ‘벌레’는 ‘구조 거리’의 실이 끊어지면서 생겼을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소설의 뒤로 가면 갈수록 ’구조 거리’는 더 먼 과거에 끊어져 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만다가 본 “속눈썹도, 눈썹도 없고 피부는 분홍색, 진한 분홍색에 비늘로 뒤덮여 있는” 이상한 아이들. 이미 이 농촌에 사는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는 태어나기 전부터 ‘구조 거리’는 없었다. 그들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중독'된 상태로 태어났고, ‘안전함’을 뜻하는 실은 이미 끊어진 채 태어난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아르헨티나로 작가 사만타 유웨블린이 태어난 곳이다. 아르헨티나는 밀가루와 대두유의 제1위 수출국이며, 가공되지 않은 대두는 전 세계 수출국 중 3위를 차지한다. (아르헨티나 식용유 위원회, 농축산부, 종자 생산자 연합, NOSIS, INTA, CEMA 대학교 및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자체 조사자료 종합)

아르헨티나의 살충제 살포량은 1990 년 9백만 갤런(3만 7천8백 리터)에서 2013년 기준 9배 증가했으며(http://archive.boston.com/bigpicture/2013/10/agrochemical_spraying_in_argen.html) 8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더 많은 살충제가 살포되고 있는지는 ‘agrochemicals in Argentina’로 구글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https://news.mongabay.com/2020/08/agrochemicals-and-industrial-waste-threaten-argentinas-gran-chaco)

사만타 유웨블린은 이러한 과도한 살충제로 인한 수질 오염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살충제로 인한 중독 현상을 말, 오리, 개 등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과 물(우물, 이슬)을 통해 ‘어디에나 다 있는’ 것으로 보여 준다. 작가는 소설에 대한 관련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는 농약과 관련된 제품 중 하나인 콩의 가장 크다. 우리는 이 콩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콩은) 우리 음식의 기초이다. 콩은 쿠키, 냉동 생선, 시리얼 바, 수프, 빵, 모든 종류의 밀가루,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모든 것에 있다"라고 유전자 조작이 되고, 살충제의 범벅이 된 콩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소설로 돌아오자.

마치 퍼즐 맞추기 같은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에서 다비드는 아만다의 이야기를 정확히 갈라 나누진 않지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는 일’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다비드의 대답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 소설의 주제는 좀 더 명확해진다.

작가는 이러한 구분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과 말할 가치가 없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비유(What an interesting kind of metaphor for what is worth saying and what is not worth saying)’라고 답했다.

'피버드림'은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화된다.

'버드박스', '다크', '더 레인' 등 이미 환경에 대한 공포를 다룬 넷플릭스 영화, 드라마는 많이 나왔다.

'피버드림'이 보여주는 '두려움'은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마치 아만다 옆에 다가와 앉에 있는 '다비드'의 목소리처럼 말이다.

두 명의 대화에서 세 명의 대화로 그리고 침묵으로 이어지는 '실'로 이어진 대화들.

이 대화들의 선명함은 소설을 읽고 난 후 영화를 볼 때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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